[지리] 수없는 좌절과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 (124번째 산행기)
ㅇ일시: 2006년 01월 08일 일요일
ㅇ날씨: 맑음
ㅇ산행자: 영원한 산친구 그리고 나
ㅇ산있는곳: 경남 산청군(山淸郡) 시천면(矢川面)
ㅇ산행코스: 중산리-칼바위-홈바위교-유암폭포-장터목산장-일출봉-와룡폭포-윗용소-아랫용소-길상암
ㅇ산행시간
ㅇ07:44-중산리에서 산행시작
ㅇ08:15-칼바위
ㅇ09:21-홈바위교
ㅇ09:31-유암폭포
ㅇ10:20-장터목 오름길에서 빵과 메치니코프로 간단히 얼요기
ㅇ10:57~11:08-장터목산장
ㅇ11:26~11:55-일출봉
ㅇ12:17-너덜지대
ㅇ13:00-Back을 할까? 말까? 망설인 지점 (고도계 1,462m)
ㅇ13:20-괴발자국 최초 발견
ㅇ13:30~13:40-살기 위해 억지로 컵라면을 먹다.
ㅇ13:43-꽃무늬 괴발자국이 선명히 찍힌 곳
ㅇ15:26-구명줄인 고로쇠 줄 발견
ㅇ16:05-하산 후 4시간만에 도착한 와룡폭포
ㅇ16:39-천신만고 끝에 발견한 족적과 정상등로
ㅇ17:16-마지막으로 계곡 건넘
ㅇ17:21-처음으로 본 유일무일한 이정표
ㅇ17:40-길상암에서 산행마침
ㅇ산행시간 9시간 56분
ㅇ산행거리 약 14km
ㅇ나의만보계 27,525步
ㅇ일정시간표
ㅇ06:06 통영출발
ㅇ06:50 단성IC
ㅇ07:30 중산리 주차장
ㅇ07:44~17:40 산행
ㅇ17:43~18:06 중산리 주차장으로 돌아오다. (서울 00 너 6431 검정 카렌스 승합차 타다.)
ㅇ18:10~18:37 저녁식사 (용궁산장식당)
ㅇ19:10 단성IC
ㅇ19:52 통영도착
도장골 |
산행에 앞서..
지리의 품에 안긴지도 어언 2개월이 흘렀다.
이번주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지리에 들고 싶어
산행지를 연구하니 미답지인 지리 도장골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지리 도장골이 얼마나 험한 원시계곡임을 모르는 무식한 이몸은
그저 미답지 산행을 할 요량으로 밀어 부치는 것이다.
산행을 마치고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딴에는 안전을 위하여 [지리99] 사이트에 들어가
도장골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아무도 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예감이 좀 이상했음.)
보통 질문을 하면 신속하고 성실하게 가르쳐 주시는데
이날만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던 것이다. (40여명이나 읽었는데..)
질문을 해도 응답이 없기에 금요일 밤에 자진 삭제해 버렸다.
지금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다만 짐작컨대 질문에 대한
답글을 쓰기에는 애매모호했기 때문일 것이다. 답글을 써주면
눈덮힌 도장골을 가라고 방조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 (순전히 나의 추측)
토요일 밤 10시가 넘은 시각..
지리산 남부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지리산의 상황을 엿보니
눈이 허리까지 쌓였지만 지리 주등산로는 산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물어보고 싶은 곳은 주등산로가 아닌 도장골이 아닌가..
우회적으로 질문을 하니 직원께서 하시는 말씀이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며
비 지정등산로에 대해서는 말할 입장이 못된다는 것이다. (우문현답)
결국 도장골을 포기하고 일출봉만 구경하고
다시 원점회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미련을 버림.)
5시 기상나팔이 울리고 어제 준비한 설렁탕 한그릇을 얼릉 먹고
집을 나서니 6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다. 통영~대전 고속도로 완전 개통 덕분에
단성IC에 도착하니 6시 50분, 중산리 주차장에 하이트를 주차하니 겨우 7시 30분이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 무수한 갈등이 있었다. 예치터널을 통과해 거림으로 갈까? 하는..
배만 안 아팠다면 아마 그리로 갔을 지도 모른다.
중산리 화장실에서 한 똥 누고나니 또 맘이 달라진다.
시쳇말로 똥누기 전 마음과 똥누고 나서 마음이 틀리다더니 바로 그 짝이다.
하지만 다시 거림으로 가기도 그렇고 순순히 포기하고 칼바위로 향한다.
칼바위 계곡을 바라보니 공단직원 말씀과는 달리 별로 눈이 보이지 않아
순간 "속았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도장골로의 산행욕심이 슬슬 생겨난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깨닭게 되는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죽어봐야 저승을 안다고 안 가보고는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지난 오대산 산행때 얼마나 떨었던지 이번 산행에는 아랫도리에
내복을 입고 오버트라우저까지 입고 오르니 몇 분 안가서 더워진다.
결국 오버트라우저는 짐만 되었다. 아내는 내복까지 벗어라고 했지만
벗기가 귀찮아서 그대로 입고 산행했는데 이것 때문에 나중에 무척 고전했다.
유암폭포..
3년 전, 처음 보았을 때는 매우 웅장했었는데
오늘은 그런 느낌은 들지 않고 친밀감 마저 든다.
자세히 보니 얼음사이로 물이 떨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땀에 절은 손수건을 씻는다. 손이 무척 시리다.
유암폭포를 지나자 기온은 뚝 떨어지고
비알은 점점 심해진다. 허기가 져 장터목 오름길에서
잠시 빵과 메치니코프로 얼요기를 한다.
잠시 후 아이젠을 착용한다.
3년 전, 몇 천원에 구입한 우리 아이젠은 우리가 봐도 너무 촌스러워
다음엔 아이젠을 꼭 새로 사야 겠다고 느낀다.
장터목 오름길에서 줌으로 당긴 남해바다 풍경이다.
자세히 보면 좌측으로 삼천포 화력발전소 연기가 올라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맨좌측에 와룡산(799M)이 있을 것이고 보이는 펑퍼짐한 산이 각산(398.2M)이다.
각산 우측으로 창선연륙교가 보이고
맨 위쪽 뱀처럼 길게 늘어진 섬이 사량도다. (사량도 지리산 397.8M)
그리고 맨 우측이 남해도의 관문격인 남해 창선도 이다.
서풍이 세차게 불어오는 장터목이다.
지리주능에서 반야봉을 지나 서북능선까지의 황홀한 조망이 펼쳐진다.
특히 만복대는 허연 눈을 뒤집어 쓰고 있어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파노라마사진을 찍은 후 일출봉으로 향한다.
좌측으로 여성의 젖가슴처럼 볼록한 남덕유산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삿갓봉 무룡산 백암봉이 허연 눈으로 덮혀 있고
그 아래 라인의 산이 괘관산이고 그 우측이 월봉 황석 기백산 라인이다.
장터목에서 연하봉을 향한 고스락 삼거리에 서면
일출봉은 지근거리에 있고 연하봉 암릉도 불과 500m거리에 있다.
일출봉 들머리는 처음부터 산길이 희미한데,
고사목 두그루 앙상하게 버티고서 잡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어머니처럼 푸근하다는 육산의 대명사 지리산에서 일출봉으로 들어가면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흡사 가야산의 만물상코스를 연상케하는 석화성이 즐비하고,
강진 덕룡산의 암릉코스처럼 온갖 형태의 기암괴석이 수석전시장을 방불케한다.
남근석, 곰바위, 해태바위, 이스트섬의 모아이 석상, 연꽃, 독수리... 등등
뿐이랴~, 코앞의 천왕봉과 저멀리 하늘금의 삼신봉 능선,
그리고 시천면과 하동쪽의 산야, 발치아래로 깔리는 칼바위골과 청래골, 도장골..
돌아보면 연하봉 지나 삼신봉과 촛대봉이 겹쳐서 단산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문종수님의 산행기 속에서..)
처음 계획은 중산리로 원점 회귀하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이 아무런 꺼리김 없이 도장골로 내려 가기 시작한다.
우리가 死地나 다름 없는 도장골로 쉽게 내려 갈 수 있었던 것은
이곳 일출봉 꼭대기는 비교적 따뜻하고 눈이 많이 쌓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림길을 쏟아져 내려가는데 점점 눈이 많아진다.
너덜이 없는 내림길이라 마치 발에 스프링을 단것처럼
스르르륵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이 일면 재미도 있다.
아내에게 발 뒤축을 세우며 내려가라며 금새 익힌 노하우까지 전수한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하고 겁없는 행동이었다.
만약 이 길을 거꾸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실로 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이곳에 오니 너덜지역이 나타난다. (아이젠 벗음.)
이곳은 날씨가 따뜻해 눈이 녹아 아주 편한 너덜길이다.
날씨가 따뜻해 목이 다 마를지경이고
아내는 런닝 바람에 내려와도 되겠다며 기염을 토한다.
나역시 아내에게 말한다.
"산행하는 맛이 난다. 진짜 이기 산행이지 정규 등산로 그 빤질빤질한 그 길은 산행이 아이다.
이기 진짜 산행이다. 일단 계곡으로 향하는 길은 두렷한 것 같고
너덜길 을 따라 쭉 내려가면 되겠다. 그치."
30분 후면 전세가 역전될 것을 까맣게 모른채..
우리가 몰랐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겨울철 계곡에서는 바람에 의해서
눈이 몰리는 구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간과한 또 하나의 복병이 있었다.
그것은 '허당'이었다.
허당은 바위와 바위사이 틈새에 눈이 쌓인 것이다.
눈이 샇이면 그 상층부는 깜쪽같이 평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부위를 밟는 순간 푸욱 하고 들어간다. 허벅지까지
그것은 바로 지뢰나 다름 없었다.
12시 50분경..
깊은 허당에 빠졌다. 다리를 빼려고 하는데 다리가 빠지지 않는다.
아무리 용을 쓰도 빠지지 않는다.
순간 공포가 밀려온다. 이럴때 일수록 침착해야 하는데..
한 손으로 눈을 살살 파내어 공간을 넓힌 후 스패치를 잡아 힘껏 당기니
간신히 다리가 빠져 나온다. 휴~~ (십년감수)
한번 용을 쓰고 나니 온몸에서 힘이 쑥 빠져 나간다.
실제로 이곳은 보통 등로를 걷는 것 보다
서너배 정도는 족히 에너지를 소비할 것이다. (빨리 허기가 옴.)
길이 (길도 아니지만) 너무 험해 다른 방향으로 틀어본다.
하지만 이쪽도 저쪽도 사정은 마찬가지 오히려 첩첩산중, 설상가상이다.
아~~안되겠다.
여기서 중대결정을 내려야 한다.
내려온 길을 도로 올라가야 하느냐? 그대로 가야 하느냐?
고도계를 보니 이미 고도는 300m나 떨어져 있다. (이미 하산한 지 1시간이 흘렀다.)
되돌아 가기로 한다. (하지만 족적을 따라 도로 올라가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까 발이 빠진 허당자리에 내 손수건을 흘렸는데
도로 가지러 가기 힘들어 포기했던 손수건을 다시 회수한다.
하지만 다시 올라가야 할 것을 생각하니 이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아내 역시 올라가기를 주저하는 눈치고
결국 조금 가다가 다시 왼쪽 길로 접어든다.
하지만 여전히 길은 없다. 계곡의 좌측편으로 계곡으로 계곡의 우측편으로
왔다 갔다가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차라리 우측으로 계속 올라가 촛대봉 능선을 탈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것 역시 우리의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괴발자국이 보인다.
발자국을 보니 산돼지는 아니고 (산돼지는 앞에 두개 뒤에 하나로 세 개다.)
곰이거나 고양이과 동물이다. (꽃무늬 발자국)
지리산에 호랑이나 표범이 있다는 말은 없으므로
틀림 없이 곰 발자국이다. (나의 추측)
하지만 곰은 겨울잠을 자는데..
간혹 겨울잠을 자지 않는 곰도 있다고 들었다. (겨울잠을 자지 않는 곰은 무척 사납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 눈속에 마땅한 먹이도 없을테고..
우리가 먹이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끼친다.
오늘따라 하필히면 평소 가지고 다니던 칼도 집에 놓고 왔지 않았는가..
13시 30분.. 살기위해 에너지를 보충해야 한다.
죽지 않으려고 억지로 컵라면들을 먹는다.
그리고 부끄럼을 잊은채 그 장소에서 서로 오줌도 누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순간엔 신사와 숙녀는 존재하지 않았다.
컵라면을 먹고 있지만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한시가 급하기 때문이다. 단 일초라도 아껴 어둡기 전에
길을 찾아야 한다. 아~~ 떨린다.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콩닥콩닥..
괴발자국은 이곳에서 사라졌다.
괴발자국과 내 발을 비교해 보았다.
내 신발보다 더 넓고 길었다. 그렇다면 최소 200kg 이상은 나가는 동물이다.
이미 곰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이니까..
오히려 발자국을 따라가니 길이 좋았다.
곰에 물려 죽어도 우선 길이 좋으니
죽으나 사나 이 발자국을 따라 온 것이다.
산행을 마치고 집에 와서 도장골 사진을 보니
비교적 편한 곳에서 찍은 사진 뿐이었다.
우리가 힘들게 헤쳐간 산죽길, 험한 너덜길, 빽빽한 잡목길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사진도 여유가 있어야 찍는 법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순간이 닥치면 사진을 찍을 여유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쉬은 것은 어쩔 수 없다. "....."
손목에 찬 고도계를 바라본다.
가도 가도 고도계가 내려가지 않는다.
하긴 이런 진행속도로 고도가 빨리 떨어 지기를 기대하는 자체가 무리일지 모른다.
이런 진행 속도라면 깜깜한 밤중까지 길을 찾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아~~ 낮에도 거북이 걸음으로 내려오는 이 지뢰밭을 깜깜한 밤중에 무슨 수로 내려온단 말인가!
119를 부를까? 전화는 통하는 지역일까? 50만원 벌금은..
수없이 좌절과 공포를 느끼며 내려간다.
탈진으로 몇 번이나 앞으로 꾸꼬라 진다.
일어나기가 싫다. 이대로 자면 끝이겠지..
부귀영화도 돈도 사랑도 친구도 다 필요 없구나..
지금 이 순간만은 아내는 더이상 아내가 아니었다.
어떤 때는 아내가 앞장서 러셀을 한다.
건너편에 있는 리본도 아내가 잘 발견한다.
아내가 아닌 동지였다.
리본을 찾았다. 그러나 길은 없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쓸데없는 곳에 리본을 달아 놓았을까?
길도 아닌 곳에 걸린 리본들..
그래도 잠시나마 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던 그 리본들..
차라리 악몽이었으면..
하지만 불행하게도 꿈이 아닌 현실이다.
눈덮힌 지리 도장골!
이곳은 인간이 가야할 길이 아니다.
아니, 동물도 가지 못하는 길이다.
이미 산행의 낭만은 사라졌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만이 존재하는 곳
너덜지대를 벗어 나면 잡목과 산죽이 다시 나타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는곳
이곳이 정녕 지옥이란 말인가!
리본이 나타난다.
다시 희망이 생긴다.
그러나 잠시 후 길은 사라지고
다시 깊은 절망속에 빠져든다.
서서히 공포가 몰려온다.
조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죽음을 맞이했던가!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쑥 빠져 나간다.
바보! 바보 멍청이!
뻔히 알면서 이렇게 위험한 곳에 들어오다니..
하지만 후회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살아야 한다!
살기위해선 한시가 급하다.
갑자기 가슴이 다시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아~~ 아~~
이제는 다시 올라가엔 너무 많이 내려와 버렸다.
15시 26분..
한가닥의 서광이 비친다.
인간이 만든 인공물인 고로쇠 줄을 발견한 것이다.
살았다! 이제 이 줄만 따라가면 된다!
갑자기 없던 힘이 불근 솟아난다. 고로쇠 줄을 따라간다.
그러나 고로쇠 줄을 따라가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고로쇠 줄은 믿을 수 없는 길이다.
오히려 도저히 갈 수 없는 길도 고로쇠줄은 잘도 간다.
아~~ 도저히 안되겠구나.
고로쇠 줄도 꼭 구명줄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몸에서 힘이 쑥 빠져 나간다.
혹 사정을 모르는 독자께서는 계곡으로 내려 오면 안돼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계곡으로 내려 오는 길은 더 위험하다.
눈 때문에 바위와 바위 沼등을 건너기가 산죽터널을 뚫는 것 보다 힘들기 때문이다.
우린들 어찌 계곡으로 내려오지 않았겠는가!
수없이 계곡 종단을 시도했으나 단 1분을 버티지 못했다.
눈이 쌓인 계곡길은 걸어 내려 올 수가 없었다.
결국 계곡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왔다리 갔다리를
수십번 반복할 수 밖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지리산신이여! 제발 우리를 도와 주소서..
16시 05분.. 와룡폭포다!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와룡폭포 임을 느낀다.
일출봉에서 와룡폭포까지 4시간 만에 도착한 것이다.
벌써 오후 4시가 넘었는데 이제 겨우 와룡폭포라니..
더 깊은 절망감에 빠져든다.
도대체 어디까지 내려가야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평소 같았으면 이 폭포를 찍느라고 폭포 아래로 내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내려 갈 수 없었다.
와룡폭포를 지나면 우측으로 계곡을 건너야 한다고 했다.
다시 계곡을 건넌다.
계곡을 건너 고로쇠줄을 따라 다시 내려간다.
고로쇠줄이 땅속에 묻혀 보이지 않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제 자포자기 심정으로 터덜터덜 내려간다.
잠시 후 어느 등로에서 갑자기 안경이 달아난다.
바로 옆에 떨어진 것 같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아내가 찾아준다. (제법 멀리 아래로 떨어져 있다.)
안경은 찾았지만 언제까지 이 상태로 가야 할 것인가!
죽지못해 가는 길이다. 아무 생각없이 어느 턱을 넘는데..
갑자기 족적이 보인다. 헉!!!!
"족적이닷!!!"
나의 외침에 아내는 무슨 뜻인줄 몰라 잠시 어리둥절 한다.
드디어 정상 등로를 찾은 것이다.
족적(足跡)..
그것은 우리에겐 100캐럿 짜리 다이야몬드 보다 더 소중한 것이었다.
오! 지리산신이시여!!!
족적은 하산 방향으로 찍혀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여럿 명으로 추정) 올라 오다가
포기하고 되돌아 간 족적으로 추정된다.
족적을 따라가니 거북이 걸음에서
토끼 걸음으로 갑자기 세상이 바뀐다.
17시 10분.. 편안한 산죽길을 걸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니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이제는 눈 감고도 내려 갈 수 있는 비단길인데
아내는 불안한지 앞으로 달린다.
말은 안했지만 얼마나 겁이 났으면..
아내여 정말 미안하오! 그리고 당신 참으로 장하오!
산행기를 마치며..
이 산행기는 산행기가 아닌 반성기 입니다.
뻔히 알면서도 死地나 나름 없는 눈덮힌 도장골로
하산한 점 깊히 반성하고 있습니다.
더이상 저 같은 무모한 산객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도장골은 눈이 녹기전에는
당분간 올라가기도 내려오기도 힘들 것입니다.
아무도 내려가지 않았고
아무도 올라 오지도 않았던 길을
아무런 비박장비도 없이 부부가 다녀온 무모한 산행이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산행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노래의 가사처럼
행여 견딜만 하다면 지리를 찾아 가지 않겠습니다.
산행지도
[장터목 산장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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