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기

중국 북경 여행 Day-3

통영사람 이수영 2024. 5. 9. 11:11

중국 북경 여행

2024.5.1~5.5 (4박 5일) 숙박(아들 아파트) 투어(홍투어 이용)
 

Day3-5월 3일(금)
(북경 시내 관광)
 

-4박 5일 일정-
*제1일(수) 김포-북경 (1박) 아들 아파트
*제2일(목) 북경 고북수진 관광 (2박) 아들 아파트
*제3일(금) 북경 시내 관광 (3박) 아들 아파트
*제4일(토) 북경 외곽 관광 (4박) 아들 아파트
*제5일(일) 북경-김포-통영

 
DAY-3 오늘은 [북경] 시내 1일 버스 투어로 어졔와 같은 장소인 왕징역 H출구앞에서 출발하여 천안문광장~자금성~경산공원 관광하고 중식 후 천단공원 관광을 한 후 중국 3대 뮤지컬 중 하나인 금면왕조쇼 관람 후 왕징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며느리가 해준 아침밥을 먹은 후 7시 15분 아들과 셋이서 걸어서 왕징역으로 가니 함께할 일행들과 50대 초~중반 쯤 되어 보이는 가이드 김금화씨가 기다리고 있어 투어 인원을 물어보니 13명이라 한다.
 
아들과 작별하고 7시 40분 소형 버스를 타고 천안문 광장으로 향한다. 8시 22분 소형 버스에서 내려 천안문 광장으로 향하는데 관광객들의 줄이 엄청나다. 가이드 말로는 어제는 더 많았다고한다. 코로나를 겪다 보니 이제는 중국 사람들도 언제 죽을지 몰라 죽기 전에 자금성을 꼭 보고 죽겠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 온다는 것이다.
 

빨간 홍투어 깃발을 든 김금화 가이드를 따라 천안문 광장으로 향한다. 
 

이 건물은 인민대회당(人民大会堂)으로 천안문 광장 서쪽에 위치한다.
 

천안문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대에 와서 만든 것이 아니라 명. 청나라를 거쳐 현재까지 이르게 된 광장이라 한다. 또한 모택동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된 장소이기도 해 현재의 중국이 바로 천안문 광장에서 시작된 것이다. 수용 인원 100만 명으로 이는 바닥에 깔린 화강암을 기준한 수치다. (화강암 한 칸에 3명이 설 수 있다)
 

저 앞으로 보이는 모택동의 초상이 걸린 커다란 문이 바로 천안문(天安門)이다. 천안문 광장을 둘러본 후 천안문을 지나 자금성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인민대회당 맞은 편의 건물은 중국역사박물관(中囯歷史博物館 Museum of Chinese History) 이다.
 

신해혁명의 주역인 손문(孫文 .쑨원) 선생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이 탑은 인민영웅기념비(人民英雄紀念碑 Monument to the People's Heroes)다.
 

천안문 (톈안먼 天安門)

간혹 자금성의 정문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자금성의 정문은 오문(午門)이며, 천안문은 베이징 황성의 남문이다. 자금성의 남쪽, 천안문 광장의 북쪽에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장에 들어가 있을 정도로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며,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천안문은 1420년에 명나라의 영락제가 처음으로 지었으며, 이후 명나라, 청나라, 중화민국 시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1925년에 중화민국의 국민당 정부가 들어섰을 때에는 천안문에 쑨원의 초상화가 걸렸으며, 1945년에는 일본에 맞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당시 총통이었던 장제스의 초상화가 걸렸다. 1949년 7월 7일에는 2차 중일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주더와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렸으며
 
1949년 10월 1일 이후는 오직 마오쩌둥의 초상화만 걸렸다. 마오쩌둥 초상화는 매년 교체되며, 지금까지 마오쩌둥 이외 인물의 초상화가 천안문에 걸린 경우는 드물다. 1953년에 소련의 스탈린이 사망했을 때 그를 기리기 위하여 잠시 스탈린의 초상화를 걸어놓은 적이 있다고 한다.
 

천안문은
 
5개의 통로를 뚫은 성벽 위에 목조 누각을 지은 중국의 대표적인 성문 건축이다. 이전에는 성벽 5개의 통로 가운데, 중앙의 큰 통로는 황제용이었다. 지붕은 다른 황성 건축물들과 같이 황금색 기와로 덮여 있으며, 잡상들이 위에 올라가 있다. 잡상(雜像)은 궁궐 건물 등의 귀마루에 올려 놓은 여러 모양의 형상이다. 상와(像瓦)라고도 한다.
 

천안문 앞 양 옆으로는 꼭대기에 동물상이 올라가 있는 2개의 돌기둥이 서있는데, 이를 화표라고 한다. 본디 화표는 평민들이 이 돌기둥에 탄원서를 써붙이거나 글을 붙여 황제에게 건의하는 용도로 세워졌으나, 천안문 앞의 화표는 순전히 장식적인 용도라 한다.
 

 

자금성 (紫禁城)

자금성은 명대부터 청대까지 (1420~1912) 24명의 황제가 살았던 궁전이다. 중국 베이징의 중심에 자리해 있고, 지금은 궁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거의 500년 동안 상징적이면서 정치적으로도 중국 정부의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황제와 그 식솔들의 집이기도 하였다. 1406년부터 1420년까지 지어졌고, 전체엔 980여 채의 건물이 있으며 72 헥타르에 이르는 넓이를 갖고 있다.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을 통과하려면 금속탐지기를 통과한 후 신분증(여권)을 보여 주어야 한다.
 

오문을 지나면 태화문이 나온다. 태화문(太和門)은 태화전으로 통하는 전문으로 1886년에 등불에서 번진 불길로 인해 한번 전소되었던 바 있으며, 현존하는 유적은 1894년에 다시 복구한 것이라 한다.
 

태화문
 

태화전(太和殿)은
 
자금성의 정전으로, 높이 8.13m 나 되는 3층 백색 대리석 기단 위에 세워졌고, 총 높이는 35.05m이며 청동 화로들이 그 주위에 세워져 있다. 자금성 내부에서 규모가 가장 큰 건축물이며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목조 건축물이기도 하다. 
 

태화전 앞에서 (촬영: 김금화 가이드)
 
1933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함에 따라, 자금성에 있던 대부분의 보물들은 전쟁의 약탈을 피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져 보관되었다. 후에 일본이 패망하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남에 따라 이 보물들은 대거 난징으로 옮겨져 임시 보관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에게 승리함에 따라, 당시 난징을 거점으로 하고 있던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국부천대할 것을 결심하며 이 때 난징에 있던 자금성의 보물들도 함께 가져가게 된다.
 
이 때 난징에는 유물들이 담긴 약 13,491개의 상자들이 있었는데, 국민당 정부는 이들 중 가장 가치있고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은 것들을 골라 약 2,972개의 상자들을 배에 실어 대만으로 보냈고, 현재는 대만의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편 약 8,000여개의 상자들은 공산당에 의해 다시 베이징으로 돌려보내졌으나, 2,221개의 상자들은 아직도 난징 박물관의 지하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중화전(中和殿)은
 
태화전에서 행사가 있을 때, 이를 준비하기 위해 내조에서 나온 황제가 잠시 쉬던 곳이며, 황제가 예복을 갈아입던 의상실이라고 한다.특히 청나라의 황제들은 의상 감각이 유난히 뛰어났다고 하며, 법도에 따라 특정 달, 특정 날에 입는 예복이 정해져 있었지만 평상복도 오늘 입었던 것은 그 다음 날 입지 않을 정도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보화전에서 바라본 건청문(乾淸門)
 

건청문(乾淸門)은
 
건청궁과 외조를 연결짓는 문으로, 앞에는 보화전, 뒤에는 건청궁으로 통한다. 1420년에 처음으로 지어져 1655년에 다시 중수되었다. 자금성의 상징으로 유명한, 금도금을 한 청동 사자상이 바로 이 건청문의 양 옆에 세워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청동 사자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눈과 귀가 막혀있고 입속에 있어야 할 여의주를 발로 밟고 있다. 이는 이곳에서 보았던 것 들었던 것을 발설하면 곧 죽음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이곳 부터는 황제가 기거했던 은밀한 곳이기 때문이다.
 

건청궁(乾淸宮)은
 
2층 누각을 지녔으며, 1개의 백색 대리석 단 위에 올라가 있다. 내조의 3개 중심 전각들 중 가장 거대한 전각이기도 하다. 건청문을 통해 출입이 가능하며, 명나라 시대 당시 황제의 침소였다. 하지만 청나라 시기에 옹정제부터 선대의 황제를 추모한다는 뜻으로 침소의 위치를 바꾸면서 이후의 청나라의 천자들은 서쪽에 있는 양심전에 거주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건청궁은 편전의 기능만 가지게 되었다. 
 

교태전(交泰殿)은
 
건청궁과 곤녕궁 사이에 있는 정방형 모양의 전각으로, 피라미드 형식의 황색 기와지붕으로 덮여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이다. 황후의 탄신일인 천추절을 축하하는 행사를 바로 이 곳에서 치루었다. 주로 내시와 궁녀들이 기거한 곳이라 한다.
 

신녕궁(神寧宮)은 황제와 황후가 결혼 후 3일 동안 기거한 곳이라 한다.
 

왼쪽이 乾淸宮 가운데 交泰殿 오른쪽이 神寧宮
 

고수 일급이라 적힌 나무의 나이는 400살이다.
 

이 바위는 퇴수산이라 하는데 바위의 모든 구멍이 연결되어 있어 위에서 물을 부으면 마치 폭포수 처럼 물이 쏟아진다고 한다.
 

자금성의 후문 신무문(神武門)을 빠져 나오니 경산공원이 보인다. 자금성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저곳에 올라 자금성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잠시 후 우리가 갈 곳이다.
 

신무문(神武門)은
 
자금성의 북문이자 후문이다. 1420년에 영락제가 자금성을 지을 때 함께 처음으로 지어졌고, 그 당시의 이름은 현무문(玄武門)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강희제가 즉위하며, 황제의 이름에 玄자가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문의 명칭에서 이 한자를 빼버리고 대신 神자로 하였다. 신무문을 나서면 먼저 자금성의 해자가 나오고, 이를 지나서 경산공원으로 올라갈 수 있다.
 
정면 5칸, 측면 1칸의 전루가 위에 올라가 있으며, 총 3개의 문이 뚫려 있어 그 곳으로 출입할 수 있다. '고궁박물원'이라는 뜻의 편액이 입구 위에 걸려있다. 특히 선통제가 퇴위하며 자금성을 떠날 때 이 문을 이용하여 떠난 것으로 유명하다.
 

경산공원(景)은
 
베이징 중심 축 자금성 북쪽 바로 위에 위치한다. 남쪽으로는 자금성의 신무문(神武门)을 면하고, 서쪽으로는 북해(北海)에 임한다. 원래는 황실 정원으로 사용되었으나, 근래에 와서 일반인에게 공개된 공원이 되었다. 공원에 오니 모란이 피어 있고 송백(松栢)이 울창하다. (모란은 시기가 좀 지났다) 아래 건물은 기망루이며 꼭대기는 망춘정으로남쪽으로 휘황찬란한 자금성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오름길의 구름 관광객 (중국 사람들 조차도 자금성 한 번 본다는 것이 큰 일인 모양이다.)
 

망춘정에서 본 북쪽 북경중축선(中轴线)의 종고루(钟鼓楼)
 

망춘정에서 본 서쪽 라마탑이 보이는 북해공원(北海公园) 탑의 이름은 북해백탑(北海白塔)
 

망춘정에서 본 남쪽 자금성 (이것을 보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라온 것이란 말인가!) 망춘정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내려오다가 사먹은 18원 짜리 아이스케키 (컬리티가 장난이 아님)
 

왕징역~천안문광장~자금성~경산공원 궤적
 

왕징역~천안문광장~자금성~경산공원~식당 궤적 (식당이 천단공원 입구에 있음)
 

12시 47분~13시 13분 중화참을 먹었던 식당 (중국 현지 식당인데 전혀 거부감 없이 맛있게 잘 먹었다.)
 

중식 후 천단공원 관광에 들어간다. 천단공원은 그 규모가 자금성의 4배로 다 볼 수 없으므로 기년전(祈年殿)과 환구단(阛邱坛)을 본다고 한다. 
 

 

천단(天壇)은

중국 베이징시 충원구에 있는 사적으로, 명.청시대 중국에서 군주가 제천 의식을 행하던 도교 제단이다. 매년 풍년을 기원하는 것은 황제의 연례행사였고,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다. 고대 규모로는 가장 큰 제단 규모로 만들어졌으며, 대지면적은 약 273만 m2로 황궁인 자금성의 4배이다.

 

기년전(祈年殿)은
 
기곡단의 본 제단으로 9단 중 하나이다. 천단은 아니지만 천단공원의 상징 역활을 하는 전각으로 형태는 천단과 같은 원형의 제단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전단 위에 건축물을 올려 놓았다는 것. 1420년에 건축되었으며 당시에는 대기전(大祈殿) 대형전(大亨殿) 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었다. 이후 1751년에 기년전으로 개정되었으며 현모습은 1889년에 중건한 모습이다. 제례일은 1월 15일이다.  
 

뒤돌아본 기년전(祈年殿)
 

황궁우(皇穹宇)는
 
환구단 북쪽에 있는 원형 건축물로 환구단의 제사 용품 및 신주를 보관하는 전각이다. 환구단과 같이 1530년에 건축되었으며 당시 명칭은 태신전(太神殿) 이었다. 이후 1538년 황궁우로 개칭되었다. 현재 전각은 1752년에 건축한 형태다.
 

환구단 마당에서 점프하기 (가이드 김금화씨 시키는 대로 하기)
 

환구단(阛邱坛)은
 
일명 천단이라 불리는 3층의 원형의 제단으로 9단 중 하나이다. 황제가 하늘에 제를 올리기 위한 의식을 거행한 장소이다. 명나라 가정(嘉靖) 9년인 1530년에 만들어졌으며, 건륭 14년, 1749년에 층축되었다. 매년 동지에 풍작을 감사하는 의식을 행하고, 가뭄이 든 해에는 기우제를 지냈다. 형태는 중국의 우주관인 천원지방(天圓地方)에 따라 원형이다. 제례일은 동지이다.
 

이렇게 13시 35분~15시까지 약 1시간 25분 동안의 천단공원 관람을 마치고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금면왕조 공연장으로 향한다. 공연장은 천단공원에서 버스로 25분 거리에 있었다.
 

왕징역~천안문광장~자금성~경산공원~천단공원~금면왕조 극장 궤적
 

금면왕조 전용 극장 (화교성 대극원)
 
금면왕조는 중국 고대 신화 속 두 남녀의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한 뮤지컬로 화교성에서 직접 창작하고 3억 위안이라는 거금을 들인 중국 전통공연 작품으로 2008년 IAAPA 미국 전시에서 최고 연출상과 초대 제작상을 받았으며 DVD로도 제작되어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금면왕조는 전쟁, 상전, 축제, 홍수 등 여덟 장면으로 구분되어 전개되는 과정에서 금면여왕의 지혜, 관용, 믿음, 큰 사랑의 품격을 보여 주고 있다. 도한 무용과 기예를 조화시켜 만든 중국 전통 공연극으로 약 200여 명의 배우들이 웅장한 분위기 속에서 펼치는 춤과 연기, 화려한 의상, 입체적인 무대 장치가 압권이라는 평가를 받는 예술작품으로 송성가무쇼, 심천 민속 쇼와 함께 중국 3대 공연으로 꼽힌다.
 

공연의 내용은 한 소녀가 책을 보다가 잠이 들면서 꿈속 여행이 시작되는데 여자들만 살고 있는 금면왕국에 남자들만 살고 있는 남면왕국 병사들이 쳐들어오면서 전쟁이 시작되는데 금면왕국이 승리하여 남면왕국의 왕과 병사들이 포로로 잡힌다.

상전에서는 전쟁 후 평화를 되찾은 금면왕조는 뽕잎따는 처녀들의 아름다운 춤자세를 보고 통천신수를 제조할 생각을 한다.

단조에서는 금면왕조 여왕은 통천신수 제조를 지시하고 남면왕으로 하여금 포로들을 이끌고 공을 세워 죄를 씻는 것을 명한다.

축제에서는 여왕이 성대한 축제를 지시하고 환락의 금빛새 상서러운 공작새 불에 타는 듯한 붉은 깃을 단 병사들의 웅장한 모습을 연출한다.

달빛 아래에서는 구름속에서 나온 꽃송이가 여왕의 모습을 담고 달빛 아래 빛나는 땅에서 금면여왕과 남면왕이 서로 사랑의 마음을 속삭이는 장면을 연출한다.

홍수에서는 우뢰 번개와 함께 큰 홍수가 몰아쳐 금면왕조가 멸망하는 재해가 닥치자 남면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던져 나라를 지키는 내용을 연출한다,

제천에서는 금면여왕이 백성을 구하기 위해 신수가 이끄는 대로 자신의 몸으로 제사를 지내고 백생들은 여왕에 대한 그리움으로 추억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연출한다.

환희에서는 노래소리와 함께 여왕은 아름다운 태양조로 변하여 푸른 하늘 속에서 나는 장면과 함께 꿈속에서 깨어난 소녀가 책을 읽는 장면을 연출한다.

공연 종료 후 출연자들이 관중에게 예를 표하는 장면이다.
 
이렇게 약 1시간 동안의 금면왕조 관람을 마치고 17시 36분 왕징역이 아닌 아들이 사는 BSHT아파트 앞으로 소형버스는 우리를 내려 놓았다. (이때,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내렸다.)
 

아들 가족과 함께 저녁 먹으러 간 만두집 (만저교자)

석식 후 바라본 야경
 
이번 중국여행 DAY-3 는 가방끈이 짧아 많은 것을 위키백과에서 퍼 왔음을 고백한다. 그리 했더니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중국여행 DAY-3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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