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公州) 계룡산 산행기▷
계룡의 주봉인 천황봉과 우측의 쌀개봉, 관음봉을 잇는 능선의 모습이 닭의 벼슬처럼 생겼고 삼불봉에서 신선봉을 거쳐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봉우리가 마치 꿈틀거리는 용의 몸통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 이름 하여 계룡산! 꼬리격인 장군봉에서 용의 몸통과 머리를 지나 황적봉까지 세칭 ㄷ字 종주를 하였습니다. 처음 계획은 관음봉에서 동학사로 하산하려고 하였지만 천왕봉에서 쌀개봉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능선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래! 여기까지 와서 3루타에 만족할 순 없지 홈런을 치는 거야! 그것도 만루홈런을..
☞ 일시: 2004.10.03 (일요일)
☞ 날씨: 맑고 적당한 온도였으나 땀은 많이 흘림.
☞ 산행자: 김태영님 그리고 나
☞ 車의 길: 경남 통영시-사천IC-통영대전고속국도-산내JC-대전남부순환고속국도-서대전JC-호남고속국도-유성IC-동학사 입구
☞산행코스: 제1학봉교-병사골매표소-장군봉-갓바위-신선봉(우회)-큰배재-남매탑-삼불봉-자연성릉-관음봉-쌀개봉-암릉-천왕봉-황적봉-학봉초등학교-제2학봉교-제1학봉교
☞ 산행시각
05:30 통영출발
07:26-07:54 인삼랜드-(맛 없는 아침식사)
08:15 유성IC
08:32 제1학봉교(박정자 삼거리)
08:35<산행시작>
08:42 병사골 매표소 (1인당 1,600원)
09:18 지능선에 도달 (안부)
09:25 장군봉 (510M)
10:25 갓바위 (585M)--우회
11:21 신선봉 (645M)--우회
11:28 큰배재 (남매탑0.5k 장군봉3.6k 동학사주차장2.7k)
11:43 남매탑
12:48-12:14 상원암 (점심식사)
12:35 삼불봉 (775.1M)
13:05 자연성릉
14:01 관음봉 (816M)
14:41 쌀개봉 (827.8M)
15:52 암릉
16:14 천왕봉 아래 안부 사거리 (김태영님 하산)
16:44 忠州 池氏墓 (천왕봉 정상?) 605M
17:02 폐헬기장
17:06 무명묘지 (황적봉 정상) 664M
18:02 철망을 월담(날머리)
18:25 제1학봉교 <산행끝>
18:43-19:23 일송정 (석갈비-저녁식사)
20:34-20:41 함양휴게소 (커피 카푸치노)
20:41-22:00 통영 도착
■ 산행 거리 약 18km
■ 산행 시간 약 9시간 50분
■ 나의 만보계 35,634步--중간에 만보계가 열려 실제는 이보다 더 될 것임..
■ 車의 거리 왕복 498km
☞ 산의내력
계룡산은 백두대간상의 장수 영취산에서 갈라진 금남정맥(錦南正脈)의 끝 부분에서 수려하게 솟은 명산이라 1968년 12월 31일 우리나라 20개의 국립공원 중 지리산 다음으로 두 번째로 지정된 명산이다. 조선조 개국 초에는 태조가 계룡산 기슭으로 천도할 계획을 세웠던 명당일 뿐만 아니라, 정감록비결의 십승지지설(十勝之地說)이 가세하여 더욱 알려진 산이다.
산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1.천황봉 2.쌀개봉 3.관음봉 4.삼불봉 5.수정봉 6.연천봉 등 6대 기암절벽이 잇따라 솟아오르고, 매혹적인 자연성릉과 쌀개릉이 관음봉을 중심으로 현수교같이 연결되어 계룡산의 백미(白眉)를 이루고 있다.
오늘은 너무나도 유명한 충남 공주의 계룡산으로 가려고 한다. 늘 그랬듯이 계룡산도 이전에 두 번 정도 왔었지만 한번도 산위에는 오른 기억이 없다. 늘 산책수준의 수박 겉핥기식 이었기에 산꾼의 입장에서 계룡산에 오르려는 오늘의 산행이 처음 산행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원래 계획은 양산 천성산의 억새산행을 하려고 했으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새 한솔산악회 회장이신 이두영님께서 계룡산을 추천 하시는 지라, 두 말 할 필요 없이 오늘의 산행지가 결정되었다.
나의 저번 산행기(남원 문덕봉/고리봉)에 댓글을 올리신 통영사시는 김태영님께서 “가까운 곳에 산행을 하게 되면 같이 한 번 하자”고 해 언제든지 같이 가자고 말씀드리고 차기 산행지가 공주 계룡산이라 답글을 올려드렸더니 “따라 갑니다.” 하고 쪽지가 들어왔다. 김태영님과는 작년 7월 27일 영남알프스(간월~신불~취서~양산통도사) 극락(?)산행을 한 적이 있다. 극락산행이란 극락암에서 통도사 매표소까지 걸어서 갔었는데 얼마나 멀었던지 그 때 산행기 제목이 ‘우리는 下山하고서 극락으로 갔다’..였다. 그때 얼마나 보약을 자셨던지 여태까지 (1년 2개월) 한번도 산행을 하시지 않았다 한다. 크..
오늘은 그동안 늘 같이 산행을 했던 영원한 산친구가 배신을 때린다. 그동안 내장산종주, 문덕봉~고리봉 종주가 힘들어서 그런지 이번 계룡산 종주산행은 마침 파트너도 있으니 남자끼리 갔다 오라고 한다. 내심 섭섭하였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랜만에 남자끼리 화끈한 산행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 아닌 꿩 대신 독수리'를 모시고 오늘의 산행에 나선다.
늘 아내랑 산행길에 나섰는데 오늘은 아내의 배웅을 받으니 기분이 묘하다. 내심 같이 가 주기를 바랬는데 무정한 아내는 아는지 모르는지.. 충무김밥 2인분을 사서 김회장(김태영님) 집 앞으로 화이트를 몰고 가니 5시 30분, 화이트 엉덩이를 때려 같이 달리는 차를 모조리 추월하여 인삼랜드에 도착하니 7시 26분이다. 아침을 휴게소에서 먹기로 작정하였으므로 오늘 아침은 여기서 먹어야한다. 쇠고기국밥과 된장을 주문했는데 내가 시킨 된장은 너무 짜고 맛도 형편없다. 김회장이 자시고 있는 쇠고기국밥도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곳에서 산내JC로 빠져 다시 서대전JC를 거쳐 유성IC에 도착하니 8시 15분이다. (서대전IC가 먼저 나오는데 그리로 빠지면 안되고 잠시 후 서대전JC가 나오니 주의!)
유성IC에서 다시 32번 국도를 따라 계룡산국립공원 표지판을 좌표 삼아 진입하니 어느 듯 1번국도로 바뀌고 삼거리가 나타난다. ('박정자' 삼거리) 자세히 보니 '제1학봉교'라 더 이상 진입을 하지 않고 주위를 휘 둘러보니 낯에 익은 봉우리가 보인다. (미리 예습을 한 덕분에 단박에 장군봉을 알아봄.) 제1학봉교를 진입하지 않고 그 옆으로 비포장길이 있는데 벌써 산객 몇 분이 이곳에서 산행을 하시고 계시므로 이곳에 화이트를 쉬게 한다. 평소와 달리 파트너가 바뀌어서 그런지 한참을 올라가는데 산행지도를 깜박하고 가져오지 않아 다시 돌아가는 촌극을 벌인 끝에 병사골 매표소에 도착하니 8시 42분이다.
병사골 매표소에서 장군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된비알이라 초장부터 소금땀을 내게 만든다. 오늘은 남자끼리 오르니 진행속도가 좀 빠른 것 같다. 매표소에서 한 30여분 올라오니 지 능선에 도달한다. 초장부터 진을 뺀다며 몇 말씀하시는 김회장, 곁눈질로 보니 조금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아니다. 김회장은 나처럼 X국을 하시는 분으로 나이도 나와 동갑이며 비록 죽마고우는 아니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다. 성격은 나는 다혈질 陽(양)의 사람이라면 김회장은 차분한 陰(음)의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질이 급한 나도 딱 두 가지를 할 때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한데, 한 가지는 바둑을 둘 때와 또 한가지는 산행기를 쓰는 일을 할 때다. 성격은 분명 급한데 내가 생각해도 꼼꼼하기가 짝이 없으니..
지 능선에서 약7분 올라오니 장군봉정상이다. 순수산행 시간만 따지면 이곳까지 오는데 45분정도 소요된 셈이다. 장군봉 정상에서 맞쳐다보는 남쪽에 있는 봉우리가 황적봉이다. 사진은 이름모를 산객이신데 모델을 부탁하자 흔쾌히 승낙하신다. (자연적이지 못하고 연출한 것이지만 검은 옷을 입은 산객의 모습이 멋스럽다. 여기서 황적봉을 바라볼 때만 하더라도 황적봉에 오르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는데..)
지금부터 큰배재까지는 표고의 차가 크지 않아 산행하기가 수월해진다. 저번 주 문덕봉 고리봉은 능선도 험했지만 표고의 차가 커서 무척 힘들었었다. 장군봉정상을 지난 어느 능선지점에서 천안의 산님 조종현님을 만나게 된다. 오늘 산행을 크게 1부와 2부로 나눈다면 1부에 등장하는 훌륭한 가이드님이 바로 이분이다. 처음에 어떻게 말을 붙였는지 기억에 나지 않지만, 우리가 통영에서 왔으며 여기까지 오는데 2시간 30분 (식사까지 3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했더니 본인은 천안에서 왔으며 이곳까지 오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몇 일 후 사량도 지리산을 산행하실 계획인지 사량도 지리산에 대해 물어오기에 한번 오른 경험이 전부인 일천한 지식으로 아는 척 지껄인다. “사량도에 가시려면 통영으로 들어오시지 말고 사천(구.삼천포)으로 들어오시는 편이 가깝고 능선에 물이 없으므로 1인당 물 2L는 필수고, 쨍쨍 내리쬐는 햇볕은 피할 데가 없으니 모자도 필수입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조종현님의 산행 경력은 나하곤 비교가 되지 않았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쓴 격.. ^^‘;;
성격도 차분하시면서 사교성이 있어 이것, 저것 설명을 하시는 것이 영판 가이드님이시라 옳거니! 오늘 이분의 뒤만 따라다니면 이것, 저것에 대해 알 수가 있겠고 알바도 하지 않겠구나 싶어 “어디까지 가십니까?” 하고 물으니 관음봉까지 가서 갑사로 내려가신다 한다. 그래서 졸지에 남자 셋이서 한조가 되어 산행을 시작하는데 천황봉쪽에서 굉음이 들려 하늘을 바라보니 전투기들이 편대를 이루며 곡예비행을 하고 있다. 마치 멀리서 온 우리를 환영하는 축하쇼 같다는 느낌이 든다. ^^
장군봉을 지나니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나고 약 1시간 후인 10시 25분 갓바위를 우회한다. 갓바위는 직접 오르지 않고 우회하므로 갓바위의 진면목을 볼 수가 없어 좀 섭섭하지만 병아리 어미닭 따라가듯 조종현님의 뒤를 놓칠세라 쫄쫄 따라가고 있다. 몇 주 전만해도 로프가 설치되어 있었다던 어느 봉우리를 할 수없이 우회한 후, 다시 반대편에서 올라가 조망을 한다. (두 사람은 오르지 않고 나 혼자만 오름. 산행기가 뭐 길래..크크..)
갓바위를 지나 약 1시간 산행을 하니 신선봉이다. (남매탑1.1k 장군봉3.1k 지점) 조종현님의 조언대로 신선봉의 정상은 오르지 않고 우회를 한다. (우리끼리 산행했으면 십중팔구 이곳을 올라갔을 것이다. 신선봉 정상은 아무런 조망이 없는 봉우리이며 정상석이나 표시기도 없다고 하니 시쳇말로 헛심만 뺀다고 한다. 또한 하산하는 길도 등로가 불분명하여 헤맨다고 하니 올라갈 이유가 없었다.)
잠시 후, 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이 바로 큰배재이다. 왼편(동학사 쪽)에서 많은 산객들이 올라오신다. 직진은 ‘등산로 아님’ 이란 팻말이 서있고 우리가 가야 할 남매탑은 0.5k 로 지척이다. 비록 오늘 처음만난 사이지만 몇 년을 알았던 지기처럼 가까워진 천안의 산님 조종현님의 얼굴이 우리에겐 부처의 모습처럼 인자해 보인다. ^^
♣ 청량사지5층석탑 (淸凉寺址五層石塔) [보물 제1284]
청량사지는 ‘청량사(淸凉寺)’라는 글이 새겨진 막새기와가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의 절터이다. 청량사의 터에있는 석탑으로 ‘남매탑’ 또는 ‘오뉘탑’으로 불리운다. 5층석탑은 낮은 단층기단 위에 4층까지 안전하나 5층은 몸돌과 지붕돌 일부만 있으며, 상륜부(相輪部)의 일부도 남아있다.1층의 몸돌에 비해 상층부가 훨씬 작아져 균형이 맞지 않으나 우주(隅柱)와 면석(面石)은 각각 별개의 돌로 된 지붕돌은 긴 처마 끝에서 약간 치켜 올라갔다. 백제계통 양식의 영향을 받은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1950년에 무너진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 청량사지7층석탑 (淸凉寺址七層石塔) [1285호]
7층석탑의 기단부(基壇部)는 2개의 돌로 되어있고, 우주(隅柱)는 다른 돌로 만들어졌다. 7층 중에서 1층의 몸돌이 다른 층보다 길며 직사각형의 감실(龕室)이 있고 2,3,4층은 중건 할 때 보수된 것으로 보인다. 지붕돌의 끝은 약간 치켜 올라갔는데, 지붕의 윗부분은 비교적 가파르게 경사져 있다. 7층의 지붕돌 층급 받침을 제외하면 모두 2단의 층급받침을 하고 있다. 백제식 석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1950년에 무너진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 남매탑(男妹塔)의 전설
통일신라시대의 한 스님이 토굴을 파고 수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울부짖으며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호랑이의 목에 뼈가 걸려있어 그것을 뽑아주었더니 며칠 뒤에 호랑이는 한 아리따운 처녀를 업고와 놓고 갔습니다. 은공을 보답하는 뜻을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처녀는 상주사람으로 혼인을 치른 첫날밤에 호랑이에게 물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스님에게 말했습니다. 그 때는 눈이 쌓인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자 스님은 수도승으로 남녀의 연을 맺을 수 없기에 처녀를 집으로 돌려보냈으나, 그 처녀의 부모는 이미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낼 수도 없고 인연이 그러하니 부부의 예를 갖추어 주기를 원하였습니다. 이에 스님은 고심 끝에 그 처녀와 남매의 의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서 불도에 힘쓰다가 한날, 한시에 열반에 들게 되자, 이 두 남매의 정을 기리기 위해 탑을 건립하여 두 스님의 사리를 모시게 되어 ‘남매탑’ 이란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 남매탑 명월
일명 남매탑으로 부르며 학명은 청량사지 쌍탑이다. 큰탑은 화장석조의 7층탑으로 상륜부는 결실되었고, 작은탑은 원래 5층 탑이 었으나 4층까지만 남아있고, 부여 정림사지 석탑을 충실히 모방하고 있다. 이 탑은 멸망한 백제의 왕족과 호랑이가 업고온 경상도 상주 여인간의 애뜻한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울창한 나무들에 감쌓여 석탑가에서 나무사이로 쏟아지는 밝은 달빛은, 옷깃을 여미며 우리들의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계룡산의 제8경으로 손꼽는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삼불고개를 올라간다. 조종현님 말씀은 장군봉에서 오버페이스를 하여 이곳으로 오게 되면 이곳이 무척 힘이 드는 코스라 한다. 잠시 후 이정표 (갑사2.7k 금잔디고개0.4k 삼불봉 0.2k)가 나타난다. 곳곳에 ‘등산로 아님’이란 팻말이 서있고 위반시 과태료 50만원이란 엄포성 경고판이 그 아래에 설치되어있다.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등산로 아님’ 팻말인가! 조망도 없는 산길만 걸으라는 이야긴가? 이렇게 국민의 가야할 자유권을 제한해도 되는 것인지? 대한민국 국민에게 대한민국 땅을 마음대로 들어가지 말라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이미 대통령의 휴가 별장인 청남대도 공개한 마당에 이 무슨 이상한 경우인가? 슬슬 부아가 생기려고 한다. 이 경고판 안으로 들어가면 50만원이라..참 웃긴다.
투덜거리며 철계단을 오르니 어느듯 삼불봉이다.
♣ 삼불봉 설화 (三佛峰 雪花)
천황봉이나 동학사에서 멀리 올려다 보면 세 부처님의 모습을 닮아 삼불봉(해발 775.1m)이라 부른다. 삼불봉의 정상에 서면 동학사와 더불어 동학사계곡, 갑사계곡이 친근하게 내려다 보이며 관음봉, 문필봉, 연천봉, 쌀개봉, 천황봉이 솟아 올라 위용을 자랑한다. 특히 실록이 피어나는 동학사 계곡과 단풍이 붉게 타오르는 갑사계곡이 천진보탑, 수정봉 등과 더불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란하게 한다. 삼불봉의 사계조망은 언제나 아름다우나 흰눈으로 장식한 계룡산의 풍광이 백미로써 이를 계룡산의 제2경으로 꼽는다.
♣ 연천봉 낙조 (連天峰 落照)
계룡산의 주 능선으로 문필봉에 이어져 내려 봉긋하게 솟아 오른 연천봉은 해발 738.7m이다. 갑사계곡과 신원사계곡을 좌우로 하여 천황봉과 쌀개봉, 삼불봉 등이 수목에 가리운 옷깃을 제치며 우뚝 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눈아래 저 멀리서 상원들과 계룡지, 경천지 등이 펼쳐지고 맑은 날씨에는 저 멀리 아득하게 백마강이 은빛으로 번쩍이고 저녁놀을 물들이며 해지는 모습은 가히 절경으로서 계룡산의 제3경으로 자랑한다.
삼불봉의 어느 전망봉우리에서 파노라마사진을 찍는다. 예전에는 삼각대를 가지고 다녔지만 요즘은 대충 파노라마사진을 찍으니 아무래도 예전처럼 선명하고 바르지 못하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수평 맞추고 각도 잡고 정식으로 찍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아예 요즘은 내 感으로 파노라마 사진을 찍어 형편없는 파노라마사진을 올리기 되는데, 너그러이 봐 주시기 바랍니다. ^^ 한 30분 후, 자연성릉이 나타난다. 자연성릉(自然城稜)이란 자연히 성곽 능선을 이룬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계속되는 능선 길이 협소하고 아기자기하고 변화무쌍하여 성곽 위를 거니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계룡산 산행에서의 백미(白眉)로는 모두들 관음봉에서 삼불봉에 이르는 1.8㎞의 자연성릉 구간을 말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과히 절경이다. 그런데 슬슬 이상한 흑심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오전.. 김회장과 오늘의 산행코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계룡산 디귿자 종주 운을 떼었었다. 즉, 관음봉에서 바로 동학사로 하산 할 것이 아니라 쌀개봉을 거쳐 황적봉까지 가서 원점회귀 하는 디귿자 종주 운을 한번 떼었던 것인데 여기서 반대편 능선을 바라보니 너무나 아름답고 또한 반대편에서 이 자연성릉과 삼불봉을 조망하면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참으로 궁금해진다. 흐흐.. (오전에 한번 운을 떼니 독실한 카톨릭신자인 김회장, 난색을 표했는데..)
♣ 동학사계곡 신록 (東鶴寺溪谷 新綠)
학바위 앞에서 관음봉 고개까지 약3.5Km의 동학계곡은 언제나 푸른 숲에 감싸여 맑은 물소리, 새소리가 청량하다. 동학사 앞에서 쌀개능선과 서북능선이 보이며 계곡을 1.5Km쯤 거슬러 오르면 산수의 조화미를 자랑하는 은선폭포에 이른다. 은선폭포에서 관음봉 고개까지 다소 가파르나 우거진 숲 속의 삼림욕이 상쾌하다. 동학계곡은 항상 아름다우나 신록이 피어난는 봄의 계곡이 으뜸으로 계룡산의 제5경으로 일컫는다.
♣ 산 이름을 왜 계룡산(鷄龍山)이라 하였을까?
주봉인 천황봉(天皇峰:845.1m)에서 연천봉(連天峰:739 m)·삼불봉(三佛峰:776m) 등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닭의 벼슬을 닮은 뿔을 가진 용과 같고 그 밑 부분은 용 비늘처럼 보이는 산이라 하여 닭 鷄(계), 용 龍(용), 鷄龍山(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조선 초기 신도안(新都內)에 도읍을 정하려고 이 태조와 동행한 무학대사가 이 산의 형국에 대하여 말했다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鷄'(계)에다가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에서 '龍'(용)을 따서 '鷄龍山'(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통일신라 때 '西岳 계룡산’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계룡산이란 이름은 1천년 전부터 쓰인 유서 깊은 이름이었음을 알게 하여 준다.
자연성릉의 암릉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있는데 젊은 남자 산객 두 사람이 쉬고있다.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장군봉 운운을 하기에 어디서부터 올랐습니까? 하고 물어보니 황적봉에서부터 올랐다 한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두 젊은 산객에게 이곳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을 물어보니 5시간 걸렸다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김회장에게 디귿자 종주 할 것을 제의하니 아까와는 달리 조금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다. "김회장, 여기 오기가 어디 쉬운 일이가? 이제 왔으니 앞으로 10년 후에 오더라도 우리나이가 60인데 그 나이에 디귿자 종주를 하것나. 기름 값도 아낄 겸, 온 김에 종주를 합시다. 책임은 내가 질께." 하고 꼬신다. 사람 좋은 김회장 안 간다고는 하지 않는 걸로 봐서 일단 성공이다. ^^
♣ 관음봉 한운 (觀音峰 閒雲)
천황봉, 쌀개봉으로 이어지는 계룡산은 주봉의 하나로서 관음봉이라고 부르며 해발 755.5m로서 한운은 계룡산을 대표한 공주십경의 하나이기도 하다.동학사계곡과 신원사계곡을 앞뒤로하고 쌀개봉,관음봉,문필봉,연천봉 등이 지척에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특히 분홍 빛으로 물드는 쌀개봉 능선과 5월 신록 속에서 줄지어 피어나는 서북능선의 철쭉꽃길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구에게나 선물한다. 관음정에 편하게 누워 하늘의 한가로운 구름을 보노라면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느끼게 해주어 이를 계룡산 제4경으로 꼽고 있다.
관음봉 팔각정에는 많은 산객들이 앉아 계신다. 계룡산에서 유일하게 건립되어있는 정상석은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오늘도 정상석만 한 컷 찍고 돌아서려다가 그래도 오랜만에 김회장과 함께 산행한 것인데 기념촬영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팔각정에서 쉬고있는 김회장을 부른다. 그리고 장군봉에서 이곳 관음봉까지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하신 천안의 산님 조종현님과 아쉬운 작별을 한다.--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천황봉 일출 (天皇峰 日出)
천황봉은 계룡산의 주봉으로 상봉이라고도 불리우며 해발 845.1m이다. 기암절벽의 정상에 서면 계룡산의 전구역을 볼 수 있다. 백암동 계곡아래 크고 작은 평야가 이어지고, 계룡산의 이름을 낳게 한 닭벼슬 모양을 한 머리능선, 쌀개능선이 지척에 이어지고, 삼악의 하나로 나라에서 산신제를 지내던 중악단과 신원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절경과 더불어 천황봉의 일출모습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어 이를 계룡산의 제1경으로 삼았다.
관음봉에서 한 5~10분 내려왔을까? 왼쪽으로 동학사로 내려가는 길이 나타나고 전방 쌀개봉으로 향하는 길은 ‘등산로아님’ 팻말과 동시에 나무 울타리가 설치 되어있다.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라 성큼 나무울타리를 넘는다. 물론 이글을 읽으면 금지구역에 들어갔다고 비난을 하실 분도 계실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나 나름대로 변명은 있었다. 첫째 김회장이나 나나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둘째 이미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 했기에 취사를 하지 않는다. 셋째 무엇보다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쌀개봉과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능선을 보여주고 싶은 나의 산행기자(?)적 정신이다. ^^ (좋게 해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약한 김회장은 나의 강권에 못 이겨 따라온다. 잠시 후, 여태까지 사람들로 혼잡했던 등로는 우리 두 사람만의 호젓한 등로로 변하고 부드러운 오솔길에 김회장도 얼굴에 화색이 피어난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전방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한 무리의 산님들이 내려오시는데, 맨 앞장선 그분 말씀이 걸작이다. “여긴 금지구역인데, 저기가면 지키는 사람이 있으니 돌아가시지요.” 그런 공갈에 겁먹을 내가 아니다. 동병상린으로 서로 도와주지 못할지언정 못 가게 방해공작을 한다. "콱" 그냥..ㅋㅋ
그런데 조금 올라가니 웬 남자 산님이 웅크리고 앉아계신다. 좌초지종을 물어보니 이분 역시 장군봉에서 이곳까지 오게 된 대전의 산님인데 어찌 할 바를 몰라 망설이고 계시는 중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래도 끝까지 황적봉까지 갑니다.” 하니 나의 말에 용기를 얻은 듯 뒤를 따라 오신다. 잠시 후, 또 다른 여성 산님 두 분 역시 서계셨는데, 마찬가지로 나의 행동에 용기를 얻었는지 뒤 따라오신다. 이 여성 산님들도 대전에 사시는 산님들인데 아까 남자 산님과는 일행이 아니고 역시 장군봉에서 이곳까지 오신 맹렬 여성 산님들이었다. (대전에 살아도 이 코스는 처음이며 꼭 가고 싶은 코스라 말씀들 하셨다.)
쌀개봉은 쌀을 찧는 디딜방아 모양으로 V字형으로 되어있어 쌀개봉이라 한다고 천안의 산님 조종현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과연 오르내려야 하는 암릉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한쪽에서 또 한 무리의 산님들이 내려오시는 지라 그분들이 다 내려오신 후, 약한 로프줄에 의지해 90도에 가까운 암릉을 오르는데 장난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90도에 가까운 경사도 겁나지만 어설프게 이어놓은 약한 로프 때문에 더 떨렸다. 로프가 끊기기라도 하면.. 헉.. 오늘 아내가 따라오지 않은 것이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의외로 모두들 씩씩하게 첫 관문을 가뿐이 통과한다. 과연 아내가 왔더라면 저 대전의 여성 산님들처럼 씩씩하게 오를 수 있었을까??
♣ 갑사계곡 단풍 (甲寺溪谷 丹楓)
갑사입구 5리숲에서 금잔디 고개 이르는 약 3Km위 계곡은 푸른 숲과 가을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5리 숲에서 용문폭포까지 길가에 피는 4-5월의 황매화는 계룡산의 특미이다. 연천봉의 산자락에 명찰 갑사가 자리잡고 있고 갑사의 경내(境內)에는 많은 보물과 지방문화재가 있고 영규,사명,서산대사의 영정을 모신 표충사가 있다. 오묘한 자연의 조화로 빚어내는 갑사계곡의 불타는 단풍은 예로부터 인구에 널리 회자되어 왔으며 이를 계룡산의 제6경으로 삼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있다.
쌀개봉을 지나 마치 통천문 같이 생긴 돌이 보이는 곳에서 좌측 내리막 너덜길로 내려가는 길이 천왕봉으로 내려가는 올바른 능선 길이다. 싫든 좋든 어느 듯 동지가 되어버린 다섯 사람, 즉 독수리 5형제의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제1부가 천안의 산님 조종현님과의 산행이라면 제2부 격이다.)
♣ 동학사 (東鶴寺)
계룡산의 대전 유성쪽 입구로부터 숲과 계류를 따라 약1킬로 정도를 오르면 조촐하면서도 품위있는 고찰 동학사에 이르는데 이절은 신라중엽 때 사원선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때 회의 화상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이 절은 마곡사의 말사이자 비구니들의 전문 강원이나 고려조에 와서 도선국사가 중수했으며 태조의 원찰로 삼아 국태민안을 빌었고, 그 뒤 순조대와 고종 원년(1864년)에 크게 중건 개수되었다. 이절의 법등은 주로 비구니들에 의해서 지켜져 왔으며 지금도 전국 비구니들의 불법가원으로 경내에는 대웅전 숙모전 삼은각 동학사등 청아한 불각과 3층석탑 부도등이 있으며 가까이에 있는 오뉘탑(남매탑)에는 불사다운 전설이 얽혀 있다.
♣ 은선폭포 운무 (隱仙瀑布 雲霧)
쌀개봉과 관음봉으로 감쌓이니 동학사 계곡상류의 옥처럼 맑은 물을 받아 20m의 암벽을 흘러내리는 은선폭포는 동학사 계곡의 유일한 폭포이다. 폭포앞의 기암절벽은 아름다움의 극치이고 절벽가에로 멀리 보이는 쌀개봉의 위용이 경이로우며 이토록 아름다운 경치속에 신선이 숨어 살던 곳이라 하여 은선폭포하 불리운다. 은선폭포 산수의 조화미가 유난히 빼어나 계룡산의 제7경으로 느끼며 배운다.
쌀개봉에서 약 1시간 10여분 내려오니 아름다운 슬랩지대가 나타난다. 아까 쌀개봉 조금 지난 지점에서 만보계를 보았을 때, 20,000보가 넘었던데 지금 보니 22,300여보다 1시간 넘게 내려왔는데 2,300보라니! 방금 보니 만보계 뚜껑이 열려 있는데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다. 26,000보는 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데..그래도 할 수 없지 뭐. 나 나름대로 계산을 해보니 오늘 우리가 걸었던 거리는 18km는 족히 될 성 싶어 그렇게 적는다. 그런데 여태까지 잘 따라오던 김회장이 자꾸만 뒤로 쳐진다. 신발도 새 신발이라 발에 익숙지 않다던데..
전방에 천왕봉의 멋진 암릉이 보이는 어느 지점에서 한 컷 담았더니, 아니다 다를까 내려간 안부 사거리에서는 나무로 덮여 이 멋진 암릉이 보이지 않는다. 독수리5형제 중 한 독수리를 하산하게 만든 지점이 이 사거리다. 앞에 보이는 표고 差 약 150m의 천왕봉을 보자 도저히 오를 자신이 없었든지 아니면 민폐를 의식해서인지 김회장이 하산의사를 밝힌다.
의당 나도 김회장과 함께 하산하는 것이 도리였으나 하산 길도 뚜렷한 것 같고 황적봉까지 가고 싶은 나의 욕망이 김회장과 이별을 하게 만든다. 못된 나의 욕망을 스스로 책하며 다시 헐레벌떡 독수리들에게 합류하기 위해 잰걸음을 옮긴다. 일년 동안 한번도 산행을 하지 않았다는 사람에게 오늘 산행은 좀 무리인가 보다. 작년 ‘극락산행’때도 보약을 너무 드려 미안한 마음을 금하지 못했는데 오늘도 보약을 너무 안겨 드린 것 같다. 왜 이렇게 힘든 산행 때만 걸리시는 거유..미안하우 김회장..
잠시 후 천왕봉 암릉을 또다시 로프를 타고 오른다. 대전에서 오신 여성 산님 두 분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보통 내공이 아니십니다. 하니 조금 산을 탔다며 겸손해 하신다. 오늘은 아내 대신 이 두 여성 산님과 산행을 하니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대전의 여성 산님들은 배도 깎아주시고 사탕, 제리(홍삼)도 주시고 오히려 내가 신세를 입는 격이다. 처음에는 나의 돈키호테식 행동으로 힘을 얻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지만, 점점 전세가 역전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 한 20분 후인 16시 44분 ‘충주 지씨’묘가 나타난다. 여기가 천왕봉 정상인가??
이제 독수리4형제는 마지막 황적봉을 향하여 약간의 비알을 오르는데 앞장서시는 여성 산님의 속력이 보통이 아니다. 남자 체면에 좀 천천히 가자고 할 수도 없고..대전에서 오신 남자 산님(김씨)도 말씀 하시기를 다른 사람이 본인 앞에 가는 것을 보통 허락하지 않는데 오늘은 허락하지 않을 수 없다 한다. (그만큼 속력이 빠르다는 이야기) 대전 산님들의 존함은 모른다. 한번 여쭈어보니 가르쳐 주기 곤란한 모양이라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김씨라고 함.
충주 지씨묘에서 18분 정도 올라오니 폐헬기장이 나오고 곧이어 4분 후 무덤이 나타나는데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는 바로 황적봉 정상이었다. 아무런 표식도 정상석도 없는 이곳을 오르기 위해 이 고생을 했단 말인가! 잠시 허탈감에 빠졌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김회장에게 전화를 하니 잘 하산하고 계셨다. 황적봉은 전망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사방팔방을 볼 수가 있는 육산이었다. 이 묘 대신에 자그마한 정상석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하산길이다. 내려가는 데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는 이몸이라 맨 앞장서 내려온다. 같이 동행한 여성 산님과 약간의 대화도 나누며 약 1시간 내려오니 날머리에 도착한다. 날머리에 도착하니 어느 밭두렁 인데 전방에 철망이 쳐져있다.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나가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철망을 넘으면 되겠네. 하니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자 산님(김씨)이 시범을 보인다. 여성 산님 두 분을 올려드린 후 마지막으로 월담을 하게 된다.--금지 구역을 산행한 죄의 댓가 치고는 할만 했다.
김회장에게 전화를 하니 김회장은 우리보다 더 아래에 있었다.
아름다운 네온 빛이 하나 둘씩 켜 있는 식당가를 건너
잠시 후, 김회장과 반가운 해후를 하게 되고..
아름다운 대전 산님들과도 이별을 하며..
어두워지는 제1학봉교에서
장군봉에서 황적봉으로 이어지는
디귿자 능선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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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3 충남 공주의 진산 계룡산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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