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여행
2025.1.6~1.13 (6박 8일) 하나투어 (스리랑카 가이드 요셉) 우리 부부 포함 투어 인원 20명
Day3-1월 8일 (수)
(하바라나~시기리야~하바라나~담불라~캔디)
-6박 8일 일정- *제1일(월) 인천-콜롬보 (1박) Cinnamon Lakeside Colombo 5성급 *제2일(화) 콜롬보-담불라-하바라나 (2박) Habarana Village By Cinnamon 4성급 *제3일(수) 하바라나-시기리야-하바라나-담불라~캔디 (3박) Radisson Hotel Candy 4성급 *제4일(목) 캔디-누와라엘리야 (4박) Araliya Red Nuwara Eliya 4성급 *제5일(금) 누와라엘리야-호튼 플레인즈-누와라엘리야-나인아치브릿지-우다왈라웨 (5박) Grand Udawalawe Safari Resort 4성급 *제6일(토) 우다왈라웨-아항가마-갈레-와서카두와 (6박) Citrus Waskaduwa 4.5 성급 *제7일(일) 와서카두와-발라티피아-콜롬보-공항 (기내박) *제8일(월) 콜롬보-인천 |
이번 스리랑카 여행 전체코스
Day-3 이동궤적
오늘은 아침 일찍 시기리야로 이동 시기리야 등정하고 다시 하바라나로 빽하여 조식 후 하바라나~담불라~캔디로 이동, 캔디의 보타닉 가든, 불치사, 민속공연을 관람하는 일정이다. 5시 모닝콜이 울리고 5시 28분 버스출발이다. 30분쯤 달려 5시 58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기리야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시기리야' 라는 말은 사자(Sinha) 와 목구멍(Giriya)의 합성어로 사자바위를 뜻하는 천연 요새 왕국을 일컫는 말이며 시기리야 요새는 예술가이자 정신이상자이기도 했던 카샤파가 부왕을 죽이고 왕좌에 오른 후 후환이 두려워 바위 꼭대기에 세웠다는 궁전터다. 하지만 난공불락이라 믿었던 바위요새는 거꾸로 도망칠 수 없는 거대한 감옥이었을 것이다.
버스에서 내린 후 요셉은 티켓 끊으러 가고 우리는 화장실로 향한다. 455년 부터 스리랑카를 지배했던 아누라다푸라 왕조의 시조인 다투세나왕(429~473)에게는 장남 카샤파(449~495)와 차남 목갈라나(450~515) 라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장남인 카샤파의 어머니는 평민 출신이었고 차남 목갈라나의 어머니는 왕가의 출신이었다. 그래서 비록 카샤파가 장남이지만 왕위를 계승하기에는 불리했다.
검표소 Sigiriya enterance 외국인은 왼쪽 라인을 이용한다.
원형 수로와 옛 건축물의 터
결국 473년에 카샤파는 다투세나의 조카이자 군 지휘관인 미가라의 도움을 받아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 다투세나를 투옥시킨 후 스스로 왕위에 올라 카샤파 1세가 되었다. 이 계단을 올라 조금 걸어가니
좌우에 물로 채워진 해자가 보이고 웅장한 시기리야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자 일행들은 일제히 시기리야를 배경으로 인증사진 찍느라 분주하다. 좌측 멀뚱하게 서 있는 젊은이는 요셉이 임시로 고용한 이곳 가이드이다.
위 사진 속 이곳의 젊은 가이드가 찍어 주었다.
왕이 된 카샤파1세에게 미가라는 다투세나가 숨겨둔 보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고 카샤파1세는 다투세나에게 보물의 장소를 캐물었다.
그런데 그 보물이라는 것이 다투세나가 재임 중일때 만들었던 관개 시설용 저수지라 이에 화가 난 카샤파1세는 아버지를 죽이고 말았다. 그로 인해 민심은 크게 떨어지고 (촬영:요셉)
이 계단길 부터 본격 오름길이다. 이렇게 아침 식전에 오르는 이유는 밀려드는 인파를 피함이요, 해가 뜨면 무척 덥기 때문이다.
한편 동생 목갈라나는 반란을 피해 인도로 도망쳤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카샤파1세는 477년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를 떠나 시리기야로 천도하게 된다. (촬영:요셉)
이곳 원숭이들
나선형 계단길은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져 있는 동굴로 가는 통로다.
실제 모습
이 계단길을 오르면 사자발톱으로 올라선다.
사자발톱으로 올라왔다. 지금은 사자발톱만 남아 있지만 그 옛날에는 사자의 머리까지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475년 높이 200m에 이르는 이 거대하고 웅장한 바위 위에 카샤파 1세가 요새 겸 성채를 건축했고 바위 위 정상에는 카샤파 왕의 연회장, 목욕탕 왕궁의 유적이 남아 있다.
시기리야 일대는 기원전 3세기 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으로 원래는 불교 승려들의 거주지였다고 한다.(촬영: 요셉)
하지만 천도 이후 시기리야 일대는 왕의 요새로 변했다. (촬영:이곳 젊은 가이드)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철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 넓지 않은 철계단의 좌측은 오르는 사람들로, 우측은 내려오는 사람들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촬영:이곳 젊은 가이드)
드디어 정상으로 올라왔다. (올라올 때 힘들기 보다 고공 공포증으로 조금 떨렸다.)
정상부에서 바라본 피두랑갈라다. 피두랑갈라는 일출의 명소이자 시기리야를 볼 수 있는 특급 전망대다. 시기리야 입장료는 35달러로 매우 비싼 편이지만 피두랑갈라는 1,000루피, 즉 우리돈 5,000원 정도라고 한다. 대신 오르려면 세미 릿지로 올라야 하니 시기리야 보다 빡셀 것이다.
시리기야에서 바라보는 해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촬영: 이곳 젊은 가이드)
(촬영: 이곳 젊은 가이드)
사진은 역시 역광 사진이다. 태양과 나무 그리고 아내의 모습이 참 잘 어울린다.
바위 정상에는 바위를 파서 만든 거대한 수조가 만들어 졌으며 정원과 해자 그리고 성벽이 만들어 졌다.
우리 두 사람 사이로 걸어 왔던 길이 보이게 좀 떨어지라고 이곳 젊은 가이드가 가르쳐 준다. ^^
위 줌으로 당긴 사진은 내가, 아래 사진은 이곳 젊은 가이드가 찍었다. (위험한 경사진 곳인데 젊어서 그런지 겁없이 잘도 찍는다)
젊은 가이드 시키는 대로 하트 마크 그렸는데 높이가 안 맞는지 직접 다가와서 높이 수정까지 해준다. ^^
여기는 뭐가 있었다는 곳인데 까먹었다.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성벽과 연결부위에는 홈이 파져 있다. (촬영:요셉)
정확한 모습은 이런 모습이다. 이 사진을 끝으로
다시 내려간다.
사자발톱까지 내려왔다. (내려오는 것은 금방 내려오는 느낌이다.)
하지만 시기리야의 영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약 20년 후인 495년 인도에서 세력을 키운 목갈라나가 돌아오고 난공불락이라고 믿었던 바위산도 그를 지켜주지 못해 동생과의 전투에서 패한 카샤파1세가 자결하고 만 것이다. 이후 왕이 된 목갈라나1세는 이곳을 승려들에게 돌려주면서 왕도의 위상은 사라졌다. 이후 시기리야는 1831년 영국인 조나단 포브스에 의해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될때까지 잊혀지게 된다.
사자발톱에서 바로 내려가지 않고 프레스코화 그려져 있는 동굴 가는 좌측 길로 향한다.
그 길에서 줌으로 당긴 지나왔던 길
나선형 계단으로 빙빙 돌아 올라가면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는 동굴이다. 그러나 이곳은 사진 촬영금지라 보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한다. (두 사람이 지키고 있어 사진 촬영 못함)
그래서 훔쳐온 프레스코화
이 벽화는 길이 140미터 높이 40미터 정도의 크기에 18명의 반라의 여인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천상의 여인들 (Maidens of the Clouds)이라고 한다. 원래는 500명 정도의 그림이 있었지만 대부분 훼손되고 남은 18명의 여인들이 프레스코 (Prescoes)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이는 두꺼운 회(灰)를 바르고 채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기에 물감이 깊숙이 배겨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퍼온 글-
이 사진도 훔쳐온 사진, 거울 벽 The Mirror Wall
거울 벽은 일종의 회랑(回廊)이다. 이 회랑의 벽면을 거울 벽이라고 하는 것은 이 벽면이 거울 구실을 하여 멀리서도 오고 가는 이를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벽면의 높이는 3m 정도나 되며 벽돌을 쌓고 여기에 계란 흰자와 꿀 석회 등을 바른 뒤 표면을 문질러 사물이 비치도록 거울 구실을 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그리고 벽면에는 싱할라 문자들로 기록된 시들이 무수히 적혀 있기도 하다. 이 시는 스리랑카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685개의 시가 해독되기도 했다. -퍼온 글-
내려온 후
코브라 바위 라고 젊은 가이드가 말했는데..
진짜 코브라를 만난다. 사진속의 남자는 사진을 찍으면 돈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옆에 큰 상자에는 사진에서는 안 보이지만 큰 보아뱀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욕망이 부질없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지 가운데 하나로 남은 시기리야 탐방을 모두 마치고 8시 30분 버스를 타고 하바라나 숙소로 향한다.
9시 6분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호텔 뷔페를 먹고 9시 35분 호실로 돌아와 더러워진 신발 씻고 샤워하고 양치질, 캐리어 정리하니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10시 30분 캔디를 향해 버스출발이다. 이때 사만타가 또 생수 한 병씩을 돌린다. 11시 45분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었다 가는데 휴게소에서 샀는지 사만타가 잭플룻을 나누어 주어 맛있게 먹었다.
12시 24분 흰두사원인데 요셉왈' 무척 아름다운 사원이라 해서 달리는 버스에서 전투샷으로 담고 13시 10분 캔디 시내로 진입한다. 캔디는 스리랑카 중부의 해발고도 600m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14세기에는 스리랑카 수도였으며 수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는 스리랑카 제 2의 도시이자 가이드 요셉 가족들이 살고 있는 도시다.
식당까지는 더 가야 한다고 한다. 20분 후 13시 30분 식당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는데 또 뷔페다. 헐~~ 이제는 질려서 요셉에게 물어보니 계속 뷔페식이고 마지막날에만 한국식당에 간다고 한다. 이럴 수가! "..." 뷔페 음식도 질리지만 아침 먹은지 얼마되지 않아 간단하게 먹고 14시 15분 로얄 보타닉 가든으로 향한다.
스리랑카 중부 캔디의 서쪽에 위치한 로얄 보타닉 가든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식물원으로 스리랑카에서 가장 긴 강인 마하웰리 강 근처에 위치하며 다양한 난초류가 수집되어 있고 4,000종 이상의 식물 (난초, 향신료, 약초 및 열대식물)을 볼 수 있다.
티켓 끊고
잭플룻 나무
코코넛 나무
분수가 보이는 아름다운 정원 (촬영: 요셉)
두리안 나무 (파노라마 기법으로 담은 사진)
이 열매는 먹을 수 없는 열매인데 들어보면 납덩이 처럼 무겁다. 요셉과 함께 걸어가면서 나무 설명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사람은 이곳에 놀러온 스리랑카 젊은이다.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왼쪽 아래에는 젊은 여자 아이들 서너명이 둘러 앉아 있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환한 미소를 짓는다.
드넓은 잔디밭을 가로지른다. (잔디 밟아도 됨)
이 나무도 키가 너무 커서 그냥은 담을 수 없고 파노라마 기법으로 담은 '카우리파인'이라는 고무나무다.
실제 몸통은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반시계방향으로 보타닉 가든을 돌았는데 족히 1시간 넘게 걸리고 기온 때문인지 땀이 많이 났다. 15시 30분 보타닉 가든 구경을 끝내고 불치사로 향한다. 보타닉 가든에서 불치사까지는 버스로 약 12분 거리다.
15시 57분 버스에서 내려 불치사에 오니 비둘기 떼들이 지붕에 새까맣게 앉아 있다.
불치사는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모셔져 있는 사원이다. 금속탐지기를 통과한 후 조금 걸어가니 8각형 건물이 보이는데 1815년에 건립된 '파띠리푸와' 라는 8각형 탑이라 한다.
이곳에서 신발을 맡기고 양말만 신은 채 불치사로 들어간다.
이곳에 오니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모자도 벗으라고 해서 모자를 옆구리에 끼고 들어간다. (나중에 극장에서 흘린 코오롱 운동모)
이 종이 리본 안에는 돈이 들어 있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여기에 묶고 쾌차를 빈다고 한다.
이곳이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모신 곳이라고 한다. (내 눈에는 부처님 치아는 안 보이고 상아만 보이네) 요셉이 뭐라고 설명은 하는데 주위 소음과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알아 듣기 힘들다. 이곳 불치사 안은 에어컨 시설이 없고 선풍기만 돌아 간다. (덥다 더워)
그래도 불자들은 열심히 기도하고 헌화 및 헌금도 한다. 우리는 한낱 구경꾼에 불과하다.
이렇게 불치사 구경을 마치고 다시 신발을 신는데 일행 중 한 분이 신발을 신고 걸으시더니 신발 신고 걷는 것이 이렇게 편할줄 몰랐다고 감탄 하신다. 이번 여행 오신 분들을 보니 우리 부부 보다 젊은 부부는 세 팀이고 나머지 다섯 팀은 연배가 높은 부부들 같다. 불치사에서 걸어서 민속공연장으로 이동한다.
민속공연장 가는 길에서 본 캔디호수 (1807년에 만든 인공호수로 오리 등 여러 조류가 서식하고 있고 어떤 오리는 누워서 자고 있다. 신기하다.)
캔디안 댄스 공연장으로 입장한다.
▼캔디안 댄스 동영상 (13분 짜리 영상만 게재한다)
17시 공연장에 입장 10분 후 17시 10분에 공연 시작하여 18시 10분 공연을 끝마쳤으니 정확하게 1시간 동안 공연을 한 셈이다. 그 1시간 동안 동영상 촬영했으니 고생도 이런 생고생이 없다. 그 바람에 오늘 내내 썼던 코오롱 운동모 흘린 줄도 모르고 극장을 빠져 나왔다. ㅠㅠ
18시 10분 공연이 끝나고 18시 18분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한다. (호텔 진입로가 너무 좁아 대형 버스는 진입할 수 없기 때문) 18시 23분 캔디 래디슨 호텔에 도착하고
래디슨 호텔 425호실 내부
18시 34분 래디슨 호텔 425호실에 입실하여 캐리어 옮겨 놓고 잠시 앉았다가 19시~19시 30분 호텔 뷔페로 저녁을 먹었는데 이제는 뷔페 음식이 질려 아주 간단하게 먹었다. 이때 서울에서 오신 키 작은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하며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가 못 간 아프리카와 남미까지 다녀오셨고 이번에도 남미 볼리비아에 갈 예정이었는데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내리는 바람에 볼리비아 입국이 거절 당해 대타로 온 것이 스리랑카라 한다. 이번 비상계엄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 처음 본다.
19시 50분 호실로 돌아와 믹스커피 한 잔 타 마신다. 그런데 아내가 목이 아프다며 호소를 해서 항생제와 소염진통제 그리고 위장약을 주었다. 내일은 좀 늦게 출발 예정인 모양이다. (9시 출발 예정) 23시 30분 꿈나라로 들어간다.
스리랑카 여행 Day-3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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