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장가계(張家界)
2015.12.26~12.31 (5박 6일) 온라인투어
Day-1 12월 27일 (일)
(인천~장사~황룡동굴)
-5박 6일 일정- 제1일(토)-인천-장사 (투숙) 제2일(일)-장사-황룡동굴-장가계 (투숙) 제3일(월)-대협곡-황석채-양가계-원가계-장가계 (투숙) 제4일(화)-보봉호-십리화랑-장가계 (투숙) 제5일(수)-천문산-장사-임시정부 제6일(목)-장사-인천 (기내박) |
[張家界] "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人生不到張家界, 白歲豈能稱老翁?)" 라는 말이 있다. 그야말로 장가계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단적으로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장가계의 풍경은 세계자연유산인 무릉원(武陵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무릉원은 장가계시에서 30㎞ 떨어진 곳에 있으며, 1992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의 자연유산'으로 등록된 중국의 독특한 자연 풍경구이다. 무릉원은 장가계 풍경구인 국가삼림공원, 삭계욕(索溪峪) 자연보호구역, 천자산(天子山) 자연보호구역, 양가채(楊家寨) 풍경구역 등 4대 풍경구역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무릉원 밖의 옥황동(玉黃洞), 구천동(九天洞), 팔대공산(八大公山), 오뢰산(五雷山), 천문산(天門山), 모암하(茅巖河) 등 주변 풍경구역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또한 하용고거(賀龍故居)와 장가계 시내 풍경 등 경관 지역까지 포함하면 장가계시의 풍경명승지 전체 면적은 500㎢에 달하게 된다. 하늘이 조화를 이룬 자연풍경지라는 명칭에 손색이 없는 곳이다. 장가계의 모습은 신선들이 노닐던 선경을 방불케 한다. 중국 사람들도 "장가계의 새로운 자연의 모습은 오악(五岳)의 황산(黃山)과는 또 다른 것이다" 라는 찬사를 보낸다. [張家界市] 호남성(湖南省)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신흥 국제 관광도시이며, 성도(省都)인 장사(長沙)로부터는 400㎞거리에 있다. 중국의 첫 번째 국가삼림공원인 장가계가 있어서 시 이름이 되었다. 면적 9,563㎢, 인구 155만 명으로, 그중 소수민족인 토가족(土家族), 백족(白族)과 묘족(苗族)이 60%를 차지한다.장가계시의 원래 이름은 대용(大庸)이였으나 1988년 5월 지급시(地級市)로 승격하였고, 1994년 4월 4일 장자제시로 명칭을 바꾸었다. 현재는 영정(永定)과 무릉원(武陵源) 두 구역과 자리(慈利)와 상식(桑植)의 이현(二縣)으로 분할되어 있다. 장가계시의 역사는 유구하여 일찍이 "순임금이 자유롭게 숭산(崇山) 돌아보기를 좋아했다"라는 말이 있다.서주(西周)시대는 형주(荊州)에, 춘추(春秋)시대는 검중(黔中)에, 진(秦)나라가 통일할 시기에는(기원전 221년) 자고현(慈姑縣)에 각각 속했다. 명(明)대에는 대용위(大庸衛)를 설치했고, 민국(民國) 11년에 대용현(大庸縣)으로 개명했다. 유구한 역사와 수려한 산수는 소박하고도 다양한 민속 문화를 배양했으니 이곳은 양희(陽戱)의 발원지이며 산가(山歌)의 고향이기도 하다. |
중국 지도와 호남성(湖南省) 위치
성도(省都)는 장사(長沙) 이며 장가계는
장사에서 서북쪽으로 398km 떨어진 곳에 있다.
장가계는 중국 최대의 호수인 동정호의 남쪽에 있는 호남성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호남성의 성도는 장사(長沙)로서 인구 700만에 이르고 이곳으로부터 398km 북서쪽에 있는
고속도로로 4시간 거리에 있는 장가계시는 인구 약 160만으로 10여년 전만 해도 볼품없는 소도시였는데
1982년 장가계가 중국 최초로 국가삼림공원(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92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후
끊임없이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장사→장가계 이동궤적]
첫날 장사황화공항에 도착하여 화시호텔에 묵은 후
다음날 아침 8시 화시호텔을 출발하여 장가계로 향하던 중
9시 10분경에 갑자기 리무진버스가 고속도로 한복판에 멈춰 섰다. (이양시 못 미친 지점)
그 까닭인즉, 전방에 7중 추돌사고가 발생하였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20대가 넘을 듯)
그 바람에 근 4시간이나 옴짝달싹 못하고 고속도로에 붙잡히게 되고
자연히 우리의 일정도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으니..
우리가 타고 갈 중국 동방항공기 MU 2024기 (26일 21시 32분.)
창가 2열, 복도 4열, 창가 2열 (총 8열로 우리는 복도에 앉았다)
예정했던 21시 50분 출발을 한 시간 정도 딜레이 한 끝에 중국 동방항공기는
23시에 중국 호남성 장사시로 날았고 우리를 중국시간 1시(한국시간 2시)에
비 내린 장사 황화(黃花)공항에 내려 주었다. 캐리어는 비교적 일찍 찾았으나
온누리투어에서 합류한 세 분 찾느라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리무진
버스에 올라타니 어느덧 중국시간 2시 5분을 가리켰다. (한국시간 3시 5분)
우리를 인솔할 가이드는 '정용해' 라는 조선족 3세 젊은 청년(27세)이었고
우리(합계 13명)는 공항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화시호텔로 이동했다.
화시호텔 9188호 (중국 시간 2시 28분)
시설이 좋아 3시간만 자고 떠나기엔 다소 아쉬운 호텔이었다.
이번 여행은 온라인투어를 이용했는데 제일 싼 패키지를 선택했다.
그래서 숙소도 형편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 보다 좋아 황송한 마음이 들 정도다.
애당초 계약은 혜초와 했었다. 황석채트레킹, 금편계곡트레킹, 천문산트레킹, 보봉호
발마사지를 포함하여 108만원(대한항공은 136만원)이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취소되어
포기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보게 된 너무나 싼 가격의 온라인 투어에 낚여(?)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 호남성은 난방이 안 된다고 들었는데 호텔은 예외인지 히터가 가동되어 따뜻했고
방도 넓고 요리를 할 수 있는 간이 싱크대도 있다.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지만
양치질과 얼굴만 대충 씻은 후 3시경에 잠이 들어 5시 55분에 일어났다.
27일 7시 41분. 매너팁 1달러 올려놓고 화시호텔 9188호실을 떠나며..
7시 아침을 호텔 뷔페식당에서 먹은 후 창밖을 보니 흐리고 뿌연 것이 날씨가 요상했다.
호텔 옆에는 한창 건물 공사가 진행 중이라 매우 소란스러웠다. 거대한 크레인 돌아가고
많은 작업자들이 골조작업을 하고 있고 여러 가지 자재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전방에는 고층 건물들 쭉쭉 뻗어 있는 것이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 화시호텔
화시호텔은 4성급으로 공항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주로 이용되는 듯
중국에 오면 한자 읽기가 참 어렵다. (약자를 쓰기 때문이다.)
만약 아래의 영명이 없었다면 호텔 이름도 몰랐을 것이다.
화시호텔 주변 고층아파트
장사시는 호남성의 성도로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며
모택동의 고향이기도 하며 김구 선생의 임시정부가 있었던 곳이다. 인구는 700만명
7시 54분. 리무진 버스에 오르다.
우리 부부는 중간에 자리를 잡았는데 버스의 차고가 높아
중간 문으로 올라가면 계단이 무척 가팔랐다. (좌측 2열 우측 1열 형태)
8시 40분. 장사 고속도로 톨게이트
장사에서 장가계로 가는 길은 주로 고속도로를 이용하는데 약 4시간 정도 걸린다.
옛날 고속도로가 없던 때는 7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어느 재벌의 딸 덕분에 고속도로가
건립되었다고 용해가 믿기 어려운 말을 했는데 중국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지 않는 차량들
장사 톨게이트를 통과하여 30분 쯤 달렸을까?
9시 10분. 갑자기 리무진 버스가 급정거하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러다가 곧 출발하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ㅠㅠ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고~ 3시간이 지나고~
무려 3시간 43분이 지나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고속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고
일부 사람들은 과일 껍질을 고속도로 상에 버리기도 했고
일부는 중앙선을 넘어 건너편에 용무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급기야 유턴을 하여 갓길로 되돌아가는 소형차량들도 많이 보였다.
자칭 중국 여행가 윤상섭씨 말로는 기차를 이용하면 장사에서 장가계까지
6시간쯤 걸린다고 하는데 우리 차는 너무 커서 유턴을 할 수 없었고 또 할 형편도 아니었다.
우리의 해외여행 일정상 초유의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ㅠㅠ
추돌 사고로 고속도로상에 어지러이 널부러져 있는 합판들
무려 3시간 43분 이라는 엄청난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달리는 리무진 버스 안에서 본
차창 밖의 사고 현장은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7중 추돌사고라고 가이드 용해가 말했지만 실제는 20대는 족히 넘어 보였고
대형차량들이 마치 기차가 탈선한 것처럼 찌그러져 도로를 막고 있었다.
가이드 용해가 알려준 중국의 4대 운전요령은 아래와 같다.
1.빵빵대 2.들이대 3.둘러서대 4.요리조리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 금륭산장
장사에서 장가계까지는 딱 두 군데 휴게소가 있다고
이곳에 오니 장가계로 가는 차량들이 속속 도착하는데
모두 우리 한국여행객들이다. 하나투어, 모두투어 등등
가이드 용해가 쏜 점심 반주 고량주 (52도)
일행 중 연천석님 부인께서 갓김치와 무우말랭이를 가져와 맛있게 먹음.
16시 48분. 황룡동굴로 향한다.
황룡동굴은 지각운동으로 이루어진
석회암 용암동굴로서 중국 10대 용암동 중 하나이다.
"중화 최대의 아름다운 저택" "중국의 국실" "종유동 중의 최고" 라고 불린다.
원래는 천문산으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사고로 황룡동굴로 바뀌었다.
동굴관광은 해가 져도 상관이 없으니 이리로 온 것 같았다.
황룡동굴 가는 길
눈길을 끄는 대형 물레방아가 보이고, 사람들은 물레방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동굴입구에 매표소가 보이고
황룡동 입구에서
안쪽으로 1200미터 가량 나아가면
20만평미터나 되는 거대한 석회동굴이 있다.
이 종유동굴은 장가계에 살고 있는
토가족 청년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금거은창을 설명하는 용해
생긴 모습이 창을 닮았다고 해서 금거은창(金戈銀槍) 이란다.
1983년 2월 리드인 모금초씨와 7명의 동료들은
함께 이 동굴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 당시 모금초씨의 나이는 29살
보트 타는 곳
보트는 전기모터를 이용하는 연기가 나지 않는 발동선이었다.
배를 타는 거리는 800미터 정도
어찌나 천정이 높던지 (천정까지는 60미터)
대자연이 만들어낸 동굴의 규모(위력)에 전률감 마저 일어난다.
보트가 종착지에 도착했다. 3명씩 다섯줄이고 뒤에 선장을 포함 두 명이 탄다.
1983년 당시 모금초씨 일행들은 동굴속에서 길을 잃어 3일을 헤맸는데
탈출수단이 바로 물길을 따라 나왔다고 한다. 그 당시는 수심이 이렇게
깊지 않았는데 보트를 띄우기 위해 물을 막아 수심을 높였다고
다시 잘 닦아놓은 길을 따라 동굴 관람에 나선다.
위에서 떨어지는 물과 함께 위로 자라는 것은 석순(石筍)
위에서 떨어지는 물과 아래로 자라는 것은 종유석(鐘乳石)
이 석순의 이름은 와송기관(卧松奇观)
연간 0.2mm의 속도로 자라는 석순이 1미터 자라는데는 무려 5,000년이 걸린다고
바위가 황색으로 용의 비늘처럼 보인다 하여 이곳을 황룡동이라 부르고 있다.
석순은 1만 2천 평방미터 넓이에 1,705개의 석순이 있으며
1,700개의 계단이 있어
제법 땀나게 걸어야 한다. 실제로 동굴안이 무척 더워 상의를 탈의했는데도
모두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계단길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잔도를 만들어낸 중국인들의 기술력이 이곳에서도 발휘되는 듯
종유석과 석순의 거리는 20센티미터
두 개가 만나려면 400년이 흘러야 한다.
이곳은 황동굴에서 가장 넓은 곳으로 용궁(龍宮)이라 불린다.
이것은 가장 높이 솟은 석순으로 정해신침(定海神針)이라 부른다.
19.2미터의 높이로부터 추측하자면 이미 20만년이상 자라고 있다.
천정까지 닿는데는 앞으로 6만년이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용궁을 클라이맥스로 본 후 동굴을 빠져 나왔는데
나오는 출구는 입구와 다른 곳이다. 18시 23분. 나오니 이미 어둠이 깔렸다.
황용동의 원숭이동상
원숭이가 들고 있는 것은 뭘까?
어느 분은 해골이라고 하는데 해골이 아니라.
바로 이 과일이다. 이 과일이 뭘까?
한라봉도 아닌 이 과일은 바로 유자란다. 헉!
저녁 식사 전에 과일가게에 들러 과일을 사면서 본 유자다.
한국의 유자와는 달리 무지하게 크다. 너무 징그러워 사지 않았다.
저녁 식사 반주로 마신 청도맥주
저녁은 '백두산맥주옥'(長白山啤酒屋)에서 삼겹살
3일 동안 묵어야 하는 개천호텔 533호실
황룡동 관람을 마치고 발마지를 받았다. (연천석씨 내외만 빠짐)
발마사지는 옵숀이 아니라 여행경비에 포함되어 있어 팁만 주면 되는데
팁도 이제는 일인당 3,000원으로 올랐다. (그전에는 중국 돈 10위안이었는데)
저녁을 먹고 나서 호텔로 들어오니 소문과는 딴판이다. 소문에는 난방이 안 되어
무척 춥다고 했는데 이곳 호텔은 히터가 빵빵 들어와 전혀 춥지 않고 너무나 따뜻하다.
아내는 티비 시청을 원했지만 너무 피곤해 10시 30분 (한국시간 11시 30분) 불을 껐다.
5박 6일 동안의
중국 장가계 여행
첫날을 정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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