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무등산 산행기▷
☞ 일시: 2003.09.21 일요일
☞ 날씨: 맑음
☞ 산행자: 나와 아내
☞ 車의 길: 통영-사천IC-동광주IC-원효사주차장
☞ 산행코스
증심사입구-증심사-약사사-새인봉삼거리-새인봉-새인봉삼거리-중머리재
-장불재-입석대-서석대-장불대-석불암-규봉암-꼬막재-원효사주차장
☞ 산행시각
11:25 원효사주차장
12:00 증심사입구
12:30 증심사
13:05 약사사 (305m)
13:25 새인봉삼거리 (415m)
13:35 새인봉 (490m)
13:50 새인봉삼거리 (back)
14:40 중머리재 (586m)
15:25 장불재 (900m)
15:45 입석대 (1,017m)
16:05 서석대 (1,100m)
16:50 장불대 (back)
17:15 석불암
17:25 규봉암 (850m)
18:25 꼬막재 (640m)
19:15 원효사주차장
< 산행거리 약16km 산행시간 7시간15분 >
☞ 산의내력
위치 : 광주광역시 북구, 화순군 이서면, 담양군 남면과의 경계
높이 : 1,187m
주봉우리 : 천왕봉
백제 때 무진악(武珍岳), 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하였으며 높이 1,187m이다.
북쪽은 나주평야, 남쪽은 남령산지의 경계에 있으며 산세가 웅대하다.
북부는 중생대에 관입(貫入)한 화강암이 분포하고 남부는 퇴적암지대이다.
대부분 완만한 흙산이며 중턱에는 커다란 조약돌들이 약 2km에 걸쳐 깔려 있는데
이것을 지공너덜이라고 한다.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였으며 공원 면적은 30.23㎢이다.
유적으로는 증심사(證心寺)·원효사(元曉寺) 등의 사찰과
석조여래좌상(보물 600)을 소장하고 있는 약사사(藥師寺)·
천문사(天門寺)·미력사(彌力寺) 등의 암자가 있다.
정상 가까이에는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가 발달하여 기암괴석의 경치가 뛰어나다.
동쪽 경사면에서 정상을 향하여
입석대(立石臺)·서석대(瑞石臺)·삼존석(三尊石)·규봉암(圭峰庵) 등이 있고
정상 부근에는 수신대(隨身臺)가 있다.
▲ 산행기 ▲
내가 심한 기침감기 때문에 몇일째 고생 하였으므로,
장거리 산행은 하지않기로 작심하고 둔덕같이 생겨 험하지 않다는 무등산을 택하게 되었다.
무등산은 말로만 들었지, 한번도 가보지 않아 그동안 궁금했던 것은 사실이다.
부담이 없어서 일까,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니 6시30분 이다.(좀 늦음)
부지런을 떨어 7시20분에 통영을 출발하여 사천IC를 경유하여 남해안고속국도를 달린다.
8시40분, 섬진강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車를 주차시키는데,
車뒷바퀴를 자세히보니 뭉턱한 쇠붙이(큰볼트 나사못)가 박혀있는지라 처음에는 車열쇠로 빼려고했으나
어림도 없어서 뺀찌를 빌려 빼니, 피이익~하면서 바람이 빠지면서 바퀴가 내려 앉는다.
황당해 하고 있는데, 마침 휴게소 옆에 경 정비소가 있어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하니
기술자가 나타나 우리를 구해준다.(펑크 때우는데 10,000원 )
여기서 간단히 우동으로 아침요기를 하고,--- (50분 소모함)
오는도중에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동광주IC를 빠져나와 원효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11시25분이다.
(근 4시간 소요, 나중에 산행을 마치고 귀가시 걸린 시간은 2시간 45분 걸림)
원효사 주차장에서 車를 주차시키고, 원효사를 향하여 올라가는데, 택시가 내려온다.
사실, 증심사로부터 등반하여 원효사로 내려오는 코스가 정코스 일 것 같지만,
우리는 먼저 원효사로 진입한 것 이다.---(통영에서 이곳으로 진입하기가 편하게 느껴져서)
어느쪽으로 등반해도 마찬가지 겠지만, 아무래도 증심사에서 시작하는 것이 구미가 당긴다.
순간적으로 택시를 세우며 증심사까지의 요금을 물어보니,택시미터기 요금 이란다.
어차피 산행이 끝나면 다시 車를 회수하러 되돌아와야 하기에,---이때는 콜택시를 불러야 함.
아예, 오늘은 먼저 택시를 타고 車반대편에서 등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등반을 마치고 생각하니, 탁월한 선택 이었음. 무등산은 거미줄 같이
길이 여러갈래라, 코스 선택에따라 등반이 달라질 수 있었음.)
택시 기사님은 경상도에서 온 우리에게 무척이나 친절하셨고 택시비도 10,400원이 나왔는데,
10,000원으로 깍아주신다. 광주토박이 분인데, 첫인상부터 우리를 즐겁게 한다.
12:00 증심사 입구
증심사 입구에 도착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탁월한 선택을 한지 알았다.
증심사 입구는 원효사 입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車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특히 車는 일렬로 늘어서 있는데, 주차 하는시간만 해도 한시간은 걸릴듯 하다.
택시도 도저히 끝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내려야 했다.
증심사 입구에서 부터 증심사 까지의 거리도 1km는 넘을 듯하다.
휴일이라 광주 시민들과 여러곳에서 오신 등반객과 일반인들로 북적거린다.
만약, 우리가 증심사로 車를 가져왔으면 꼼짝없이 한시간은 허송세월 할뻔했다.
12:30 증심사
증심사 입구에 오니 안내판이 나오는데, 등산코스가 무려 10개코스가 넘는다.
증심사가 광주에서 제일 유명한 고찰이라 하니, 증심사를 거쳐 산행하기로 마음먹고,
증심교를 건너 제법 한20분가량 땀을 흘리며 들어서니, 증심사이다.
대웅전은 아름다웠지만 지붕은 물이새는지, 사진에 보시다시피 지붕의 몰골은 말이아니다.
좌우에있는 적묵당(寂默堂), 오백전(五百殿)은 보전이 잘되어 있고 아름다웠다.
그 많던 사람들(등반객과 일반인) 의 모습은 여기서는 찾을 수 없다.
아내는 오늘도 대웅전에 엎드려 치성을 다하는데, 보기에도 안스럽다.---아내는 산행기에
제발, 이것만은 빼라고 하였지만....
13:05 약사사 305m
증심사에서 다시 증심교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Y 字 이정표가 나오는데,
그왼쪽은 중머리재로 바로가는 길이고 오른편이 새인봉 가는 길이다.
약사사는 새인봉 가는 길목에 있었다.
대웅전과 운림선원(雲林禪院)등 사찰은 눈이 부실만큼의 광채를 띠면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여기서 바라보니 새인봉이 보이는데, 볼록하게 튀어나 한눈에 새인봉임을 눈치챈다.
약사암은 850년경에 처음 지어 人王寺라 불리어지다가,1360년 세번째 지었을때
약사암이라 고쳐불렀다 하는데, 현재의 이름은 약사사 이다.
625때 모두불타 1984년에서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보물 제600호인 석조여래좌상
과 창건당시에 세웠다는 삼층석탑등 문화재가 있다.
석조여래좌상은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통을 어루만져준 자비로운 약사불로 짐작된다.
13:35 새인봉 490m
약사사에서 좀 올라오니 새인봉 삼거리가 나오는데, 삼거리 자체가 안부 이다.
나무숲으로 그늘이 져 시원하였고, 군데군데에 벤치가 있어 사람들이 휴식도 취하고
식사도 하고 있다. 왼쪽은 중머리行이고 오른쪽은 새인봉 行이다.
무등산에 와서 느낀것이 있는데, 처음 증심사 입구에서 올라왔던 그많던 사람들이
각처에 흩어져 곰탁곰탁 마다 쉬고 즐기고 음미하고 산행하는 것이 너무도 아기자기 하다.
그만치 무등산의 품이 넓다는 뜻이 아닌가 쉽다. 새인봉 올라가는 계단은 아장아장 걸어야 될만큼
그 간격이 좁다. 아내가 말하기를--
우리 경상도 사람들 같았으면 성질이 급해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야 될 만큼.
간격을 넓게 만드는데 여기는 간격이 너무 좁다고 말한다.
실제로 절벽에서 내려가는 사량도 지리산 줄사다리의 간격과 폭은 너무 길어
숏다리는 다리가 닿지않을 지경이다.
계단하나를 놓고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의 기질을 다 말한다는 것이 우습지만,
어느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라 수긍이간다.
이곳의 계단은 그폭도 좁아 두사람이 교차하기에는 비좁아 몸을 비틀던지 양보해야 한다.
아뭏튼 새인봉 정상에 오르니 새인봉이 바로 절벽이다.
아래를 쳐다보니 고공 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머리가 쭈삣선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남녀 한쌍이 암벽타기를 시도하려고 하고 있다.
정말로 존경스러운 분들이다.(사진을 자세히 보면 절벽위에 두사람이 있음.)
13:50 새인봉 삼거리 415m
다시 back 하여 새인봉 삼거리로 돌아온 우리는 벤치에 앉아 가져온 도시락을 먹는다.
오늘은 아내가 주먹밥을 준비하였는데, 갈증이 많이 나서 그런지
그렇게 꿀맛이 아니다. 하지만 거의 다 처치함. 삼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이 벤치에 앉아서
식사들을 하시는 모습이 보인다. 선선하고 시원한 것이 참 좋타.
14:40 중머리재 586m
새인봉 삼거리에서 식사를 마친 우리는
잠시후 중머리재를 향하여 오르기 시작한다.
식사후라 일부러 천천히 올라간다.
좀 올라가니 새인봉의 두개의 낙타등 같은
얼굴이 발아래 산자락 사이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기 때문에 애초부터 조우
하는 사람들끼리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가
필요없다. 등반을 하면서 이런 경우도처음이다.
제법 한 30여분을 땀을 흘리며 오르자 하늘이
툭 트이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중머리
같이 맨들맨들하여 풀이 나지 않아
중머리재 이다. 보시다 시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아 피곤하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이곳에 약수터가 있어
목도 축이고 세수도 함. (사진에서 풀이없어 흙이
보이는 곳이 바로 중머리재 이다.)
15:25 장불재 900m
중머리재에서 장불재로 가는 길이 오늘의 하이라이트 이다. (경사가 제법 세다.)
누가 무등산을 둔덕과 같은 산이라 했던가..
소금땀을 흘리며 올라가는데, 우리도 제법 건각이 되었는지 추월은 당하지 않고
제법 여러명을 추월하면서 올라간다. 그래도 이코스는 힘들어서 두번 쉬었는데,
쉬는 동안에 단물(식혜)을 먹으니, 이세상에 이 물보다 맛있는 물이 있을까 쉽다.
(냉동시켜 놓았다가 여기서 먹으니 얼음이 약간 언 상태의 식혜가 그야말로 꿀맛이다.)
그런데, 웬 사람 한명이 우리를 추월하였는데...(나중에 이분과 함께 끝까지 같이 산행을 하게됨)
장불재에 올라오니, 가까이에는 거대한 송신탑이 있고 ---아마도 TV 송신탑인 모양
저 멀리 정상부근 왼편으로는 서석대가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입석대가 보인다.
주저 할것도 없이 우리는 입석대로 향하여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올라가는 도중에 오른편에 펼쳐진 산의 곡선이 너무도 부드러워 한컷 촬영 한다.
15:45 입석대 1,017m
장불재에서 한10여분 올라가니 입석대 이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원기둥 모양의 거대한 돌들이
마치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세운 것 같은 형상이다.
이것은 사람의 작품이 아니고 신이 빚어놓은 예술품이다.
감탄 또 감탄을 하면서 아쉽지만 오래머물수 없어 서석대로 향한다.
어떤 바위는 누군가 힘을 가하면 떨어질것 같이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아! 몇억년후면 이 바위들은 모두 사라지겠지..
16:05 서석대 1,100m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서석대로 향하여 계단을 올라가는데, 오른편에 뾰죽나온곳이
규봉암인가 하여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아무 봉도 아니라면서
여러가지 설명을 해주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면서 하는말..
"아까, 장불재로 올라오는 도중에 두분을 보았는데, 산을 잘 타시데요."
그러면서 무슨 인연이 될라고 그러는지, 친절을 베푼다.
서석대에 올라오니 제일먼저 눈에 띄는 것이 삼팔선 철책이다.
비무장지대도 아니건만 이곳 천왕봉(1,187m)은 미사일 기지로서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며
매년1월1일에 한하여 개방시켜 준다고 한다. 아! 분단의 아픔이 이곳에까지 미칠줄이야..
이곳까지도 개방한지는 불과 몇년 안된다고 하니, 우리는 어쩌면 행운아 일지 모른다.
서석대 정상에 서기도 전에 이분이 우리를 안내한다. ---채희선 님으로 광주 분이신데
이시간 이후부터 산행끝까지 우리와 함께 했으며 가이드를 하셨고
그 덕택에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 그야말로 진국코스를 답사하게 되었다.
"서석대 사진을 찍으려면 나를 따라오세요."
하여 약간의 경계심도 가지면서 그사람을 따라 서석대 정상에서 다시 다른길로 내려가니
아!
그곳에 서석대의 우람한 돌의 병풍들이 나열해 있었다.
도대체 이런 웅장하고도 거대한 직벽의 병풍들은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그 거대한 돌병풍 앞에 선 우리는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있는 정성를 다하여 이 자연의 예술품울 사진속에 각인 한다.
다시..
서석대 정상으로 올라와 저멀리 광주시가지를 쳐다보니 가슴이 확 트인다.
하지만 벼랑 아래를 쳐다보니 천길 낭떠러지 이다.
어지러워 도저히 가까이 서기에는 다리가 떨려 좀 뒤로 나 앉는다.
"제가 매일 이곳에 오는데, 오늘같이 광주시가지 전경이 보이는 것은 처음 입니다."
멀리서 경상도 손님이 찾아와서 그런지 오늘만큼은 무등산이 우리를 포용하는 것같아
너무도 상쾌하여 여기서 정상주 한잔 하고..(채선생님과 둘이서 나누어 마심)
채선생님은 우리에게 떡과 배를 권한다.
오히려 우리가 얻어먹는 격이다. (배만 잘라서 나누어 먹음.)
16:50 장불재
다시 back 하여 장불재로 내려와 규봉암으로 향하는 길을
이제는 두사람이 아닌 세사람이 걸어간다.
채선생님은 서울에서 생활 하시다가 광주에 내려오신지 한달 정도 되었는데,
매일같이 이곳에 등반을 하여 몸무게가 5kg 이나 감량 하였으며,
처음에 입석대에 올라오고 나서 몸살이 다 날정도 였는데, 이제는 반 산꾼이 되셨다 한다.
역시 운동은 꾸준히 하는 것이 최고인 것같다.
17:15 석불암
채선생님의 인도를 받아 이곳에 도착하니, 바로 옆에 샘터가 있다.
그리고 보니 중머리재 위에도 샘터가 있었고 이곳에도 있으니,
무등산 등반에는 팻트병 하나만 딸랑 지녀도 될성싶다.
무등산에서 제일로 물맛이 좋다는 이곳에서 목도 축이고 세수도 한다.
아쉽지만 석불암은 문이 안으로 잠겨있어 바같에서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곳에서 조금 걸어오니 너덜지대가 나타나는데, 세번째 너덜지대가 바로 지공 너덜이다.
이너덜에서 채선생님은 점심을 주로 먹는다고 했다.---과연 식사 하기에도 명당자리 같다.
우리가 증심사,새인봉을 거쳐 중머리재, 장불재,입석대,서석대, 로 왔다고 하니..
그렇게 등반하면 무등산 등반 90%는 하는 것 이란다.---채선생님 말씀
다시한번 정코스를 등반하게된 것에 대해 기분 좋아한다.---우리
17:25 규봉암 850m
무등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말하라 하면 이곳이라 한다.
과연 와서보니 입구에 서있는 현판문 부터가 범상치가 않다.
현판문을 올라가 규봉암을 보니 마치 금강산의 풍경과 같은 절경이 전개된다.
왜 무등산을 無等으로 하였는지 이곳에 오니 알것 같다.
무등이란 아마도 최상급과 같은 뜻으로 쓴 것 이리라..
여기에서 바라본 아래마을 풍경도 아름다워,
신선의 위치에서 속세를 바라보며 한장의 사진을 찍었다.
저멀리 보는 호수는 담양호 인가??..
18:25 꼬막재 640m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규봉암을 떠났다.
그런데 한사람이 따라온다. 자세히 보니 아까 서석대에서 부터 보던 사람이다.
이제는 네사람이 걸어가고있다.---이흥연 님으로 공무원 이신데 휴일을 이용하여 등반오신 모양으로
아까 규봉암 암자안에서 절을 하고 계셨다고 하였다. 우리는 바같에 있었으므로 이분을 못 보았는데,
이분은 우리들의 목소리(경상도사투리 )를 듣고 우리인줄 알고 우리따라 온 것이다.나중에보니
두분(채선생님,이선생님) 모두 헤드랜턴도 없었다. 오히려 우리도움을 받아 내려옴.
꼬막재 못가서 억새밭인데 석양에 물든 억새가 너무도 아름답다.
내려가는 도중에도 채선생님의 재담을 들으며 지루하지않게 내려올수 있었다.
(채선생님은 활발한 성격이셨고 이선생님은 차분한 편인데, 존함도 나중에 같이 식사를 하고난 후에
알게 되었다. 물론 공무원이라는 직업도..)
19:15 원효사 주차장
11시 25분에 왔다가 19시 15분이니 근 8시간이 지난후에야, 다시 우리車와 재회한다.
이제는 깜깜하여 벌써 한 20여분을 헤드랜턴을 켜고 내려왔었다.
아쉽지만 원효사는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오늘 가이드를 멋지게 해주셨으니 제가 저녁한그릇 사겠습니다."
"그래요 동서화합의 장도 만들겸.."---아내
그래서 네사람이 車를 타고 지산유원지를 간다.
그곳에서 맛본 열무에 싸서 먹는 보리밥은 한마디로 짱이었고,---무친 나물 하나하나 감칠맛이 있었음.
흔들지 않고 위에있는 맑은 술만 마시는 광주 동동주는 새로운 경험이었으며,
처음에 가볍게 몸푸는 산 쯤으로 생각한 무등산은..
한마디로 말해서
가벼히 볼 산은 아니었고,
규봉암.
서석대.
입석대.
새인봉.
을 생각하면 슬며시 웃음이 피어난다.
정말로 좋은 산이었다.
.
.
.
.
.
.2003.09.21 무등산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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