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기

지리산▲ 거대한 함정.. 피아골/왼골

통영사람 이수영 2012. 6. 29. 09:46
[18]

◁지리 피아골-왼골 산행기▷

 

 

 


삼홍소





 

 



☞ 일시: 2003.08.31 일요일

 날씨: 흐림

☞ 산행자: 나와 아내

 車의 길: 통영-사천ic-하동ic-연곡사-직전마을

예정 산행코스: 직전마을-삼홍소-피아골산장-질매재-질등-문바우등-느진목재-왕시리봉-단산마을(九山里)

실제 산행코스: 직전마을-삼홍소-피아골산장-피아골삼거리-노루목-삼도봉-화개재-토끼봉-의신마을(벽소령에서 내려오면 이 마을이 나옴)

 산행시각

06:18 연곡사(燕谷寺)
07:20 직전마을
08:10 삼홍소
09:45 피아골 산장
11:40 피아골 삼거리
11:50 임걸령 샘터
12:20 노루목
12:40 이정표
12:45 삼도봉
12:50 551 계단
13:05 화개재
14:05 토끼봉
18:30 의신마을

<산행거리 약18km 산행시간 11시간10분(나) 11시간40분(아내)>

☞ 산의 내력:

   피아골은 노고단과 반야봉 사이에 자리잡은 계곡이다.
   가을날의 피빛 단풍으로 지리산 10경의 반열에 든다.
   기실 홍염에 불타는 단풍이 워낙 유명세를 타고 있어 그렇지
   피아골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곳이다.
   봄날에 피어난 철쭉은 명경 같은 계곡에 얼굴을 비추고
   여름날엔 한올의 햇살도 허락치 않을만큼 녹음이 우거진다.
   가을의 단풍은 두말할 나위 없고, 겨울엔 인적 드문 호젓한 설국의 산길을 선사한다.
   계곡 초입에 지리산 제일의 거찰이었다는 연곡사와 국보급 문화재가 있어 찾는 이들이 많다.
   피아골은 가을철을 제외하곤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 지리산 등산로 중 호젓한 곳에 속한다.
   그러나 계곡안에 들어서면 단번에 뛰어난 흥치에 압도당한다.

   연주담, 삼홍소 등 속을 알수 없는 심연과 집채만한 바위들이 어울려 풍치가 뛰어나다.
   매표소부터 피아골 산장까지 6km는 그런계곡을 건너다니며 오르는 길이라 눈이 즐겁다.
   계곡 또한 가파르지 않아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다.
   피아골 산장에서 임걸령까지 2km는 계곡에서멀어져 가파른 산등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소금땀을 흘려야 한다.
   여름철에 물놀이 하기에 좋은 곳은 연곡사에서 직전마을까지, 직전마을에서 피아골 산장까지다.
   계곡입구부터 삼홍소까지가 특히 아름다운데,
   가을이면 삼홍소란이름에 걸맞게 온 골짜기를 붉게 물들인 단풍과
   붉은 빛에 젖은 계곡물과 삼홍소 바닥의 바위까지 붉어 장관을 이룬다..

 





    ▲ 산행기 ▲

    꿈에..
   本家(아버지 사시는 집)에 물이 가득차 아래밭에까지 물이 흥건하다.
   놀라 잠에서 깨어나니 새벽3시,
   고이자고 있는 아내와 쿠키(강쥐 수놈으로 밍키(암놈)가 새끼를 낳았으므로 우리와 함께 잔다.)
   를 깨워 산행준비를 하니 4시18분에 통영출발-> 5시30분 하동ic->국도19호 

  선을 따라 올라가니 이른 아침에 차창에 비치는 섬진강변의 풍경은 너무도 아름답고,고요해서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다시 865번지방도를 따라 6시18분, 연곡사에 도착하였습니다.
   연곡사에서 국보와 보물등을 보고 사진도 찍고 하니 한50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사진이 너무 많아 국보, 보물 사진은 생략합니다.
   탑2개와 거북모양의 석상이었는데 사진도 어둡게 나오고 해서요.)

 



 


연곡사 일주문

 

 




대적광전

 

 




뒤에서 본 대적광전 - 보물,국보등 시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연곡사 입구에 자라고 있는 토란들..

 

 



왼쪽 사진(표교막터) - 오른쪽사진(삼홍소)
 


   7:20 직전마을

   산아래 첫 집 (거꾸로 말하면 직전마을에서 맨 마지막 집)에 車를 주차
   (주인에게 양해 구함)를 하고 피아골 계곡초입(표고막터) 에 들어서니 ,
   계곡물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아내와 조금만 떨어져도 대화가 잘 안 될 지경입니다.

   어제 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말하자,

   아침부터 꿈이야기 는 하지 말라며 제지해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우렁찬 계곡을 보려고 꾼 꿈이었을까..하며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피아골계곡은 계곡전체가 仙景이었습니다.
   카메라는 쉴새없이 돌아갔으며,
   우리의 두 눈도 황홀경에 취해 어디에 시선을 고정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피아골 계곡 전체를 전세 얻은 듯 이 광활한 계곡에는 우리 두 사람만
   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둘만의 산행은 언제나 그렇듯이 쓸쓸하면서도 오붓하기 마련입니다.


 


왼쪽 사진(연곡사 범종) -- 가운데사진(피아골 철다리)--오른쪽사진(삼홍소)


 


 


계곡1


 


 


계곡2


 


 


계곡3(연주담?)


 


 


계곡4(통일소?)


 


 


계곡5



   8:10 삼홍소 

   삼홍교(내가 붙인 이름)를 지나니 이정표가 나옵니다. 
   그이정표에는 삼홍소라 쓰여져 있습니다. 
   다리아래 바위에 앉아 저번 산행 때와 같이 카스테라와 믹스기로 갈아만든 쥬스로 
   아침을 대신 합니다. 가을이 아니어서 그런지 삼홍소 다리아래의 풍경은 그런데로 좋았지만 , 
   仙景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오기전 연주담? 통일소?--지도에 기재되어있는데 이곳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았음. 
   --이 더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식사후 조금 올라가 보니 仙景이 나타났습니다. 

   아, 이래서 삼홍소로 구나.. 

   연신 카메라를 찍기 바쁩니다. 디카를 사고 나서 산행기 쓰는 일이 더욱 힘들어 졌습니다.
   옛날에는 글만 쓰면 되었는데 이제는 사진까지 찍고 또 올리고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신이 났으면 났지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계곡의 물소리는 더욱 우렁차 귀가 떨어져 나갈지경입니다.



 


삼홍교

 

 




구계포다리 - 3인 이상은 건너지 말라는 안내문이 있음



    9:45 피아골 산장

   몇 개의 다리를 건너고 계곡을 건너자, 뿌연 안개 속에 자그마한 집이 나타났습니다.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지만,뿌연 안개 때문에 식별이 불가능 하였고,
   피아골 산장임을 눈치챈 나는 재빨리 사진을 찍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온 아내는 화장실이 너무도 깨끗하다고 말합니다. (냄새 하나 안난다고 함)
   산장에 다가간 우리는 앉아있는 주인공이 산장 직원임을 알았습니다.
   (염소 수염을 길렀는데, 나이는 한30대 초 중반 정도)

   "말씀 좀 물어보겠습니다. 여기서 왕시리봉을 갈라고 하는데요?"
   "그곳은 휴식년제 기간이라 갈 수가 없습니다. 1990년부터 출입금지 구간입니다."---직원

   아니, 이럴 수가..

   얼마전에 한넷티즌이 나녀온 글도 읽었는데, 금지구간이라니..
   그럼, 그분이 금지구역을 산행하시고 그렇게 인터넷에 올렸단 말인가!

   아..

   오늘계획은 왕시리봉으로 가서 단산마을로 내려오는 코스로 작심을 하고 왔는데..

   "어떻게 안될까요?"---너무도 허탈한 나머지 통사정을 합니다.

   "제가 허락해서 될 일도 아니지만, 그 길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두분 께서 가시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릅니다. 보세요 이렇게 gas가 자욱해 앞도 잘 보이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피아골 산장에서 좌측길인 곳으로 올라가니 수도가 있어 ,
   얼굴을 씻고난 후, 왼편을 보니 울타리로 막아놓은 문이 보입니다.
   울타리로 문을 막아놓아 그곳을 뚫고 들어가기도 힘들 뿐 아니라,
   등산로가 아니라는 말에 포기하고 다시 산장으로 내려옵니다.
   (등로가 없는 길로 갔다가 2번 혼난 적이 있음)
   직원에게 내가 다시 말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어떻게 갔을까요?"

   "네에, 왕시리봉 아랫마을 입구에 출입금지라는 표시를 해놓았지만 간혹, 없는 구간도 있는데,
   아마도 그분은 그곳으로 올라온 것 같습니다. 그런사람들은 소위 말하자면, 산꾼들이지요.
   사모님을 동행하고 그런 금지구역은 무리이며, 조난우려가 있습니다."
---직원

   포기를 하고 여기서 커피2잔을 시켜 마시고 계획에 없는 지리산 주능선쪽인
   오른쪽문(열려있었음)으로 올라 갑니다.
   가면서 생각하기를 오늘 산행기를 쓸 때 제목은-- (우리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마음속으로 정한 오늘 산행기 제목입니다.
   하지만 오늘 산행기 제목은 거대한 함정입니다.
   (여태까지만 해도 몇시간 후에 일어날 재앙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피아골 산장에서 피아골삼거리(지리산 주능선) 까지의 거리는 2km 이지만 ,
   말 그대로 소금땀을 내게 합니다.

   오늘따라 바람도 한 점 없고..


 


선녀교 - 이곳을 지나 좀 올라가면 피아산장이 나온다

 

 




피아골 대피소 (앉아 있는분이 산장직원)

 

 




피아골 대피소 입구에 서있는 돌탑들



    11:40 피아골 삼거리 

   소금땀을 흘리며 올라온 피아골 삼거리..일주일전에 올랐던 곳이라 눈에 익습니다.
   처음에는 화엄사로 내려가려 하였으나,
   화엄사는 올라와야지 내려가는 것은 기분에 들지 않습니다.
   아내에게 의향을 물어 천왕봉 쪽으로 가다가 시간이 되면 벽소령 산장까지 가서 내려오고,
   시간이 안되겠으면 토끼봉까지 갔다가 칠불암쪽으로 내려가자고 했습니다.
   안내도에도 버젓이 토끼봉에서 범왕교(4.9km)로 갈 수 있는 표시가 되어 있어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 내 등산지도에도 토끼봉에서 칠불암까지 2시간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11:50 임걸령 샘터

   일주일전에 마셨던 물을 오늘 다시 마셔보니 오늘은 그때보다 물맛이 좋습니다.
   아마도 피아골에서부터 올라오느라 땀을 많이 흘려 그렇게 물맛이 좋게 느껴지리라 생각됩니다.

   12:20 노루목

   반야봉을 오르기 위해 앞서 갔던 남자3분(60대)이 잠시 쉬고 있으면서 하는 말씀.
   "사모님은 띠가 토끼띠인가 보네요."---우리가 빨리 뒤따라 왔다는 뜻.

   12:40 이정표

   "아, 찾았다. 저번주 우리가 삼도봉에서 반야봉을 갔을 때 노루목까지 오지말고
   이곳에서 바로 반야봉으로 갔었어야 했다."

   ----이정표를 보니 이 방향에서는 반야봉 가는것은 표시가 보이는데
   반대편 삼도봉 쪽에서 보면 가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가 못보고 그냥 지나친 것입니다.

   다음에는 절대로 실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12:45 삼도봉

   저번주에 못해본 3도 왔다 갔다 하기를 아내와 하면서 깔깔 웃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양의 사진을 찍어봅니다.
   삼도봉을 내려오는데, 지난주에는 못 느꼈는데
   좌측에 거대한 바위가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버티고 있습니다.


 


삼도봉표시물 - 위에서 내려다 보고 찍은상태



   12:50 551계단

   지난주에는 올라가는 길이라 ,
   그 숫자를 세워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젊은이에게 물어보았더니
   558계단이라 하여 산행기 에도 그렇게 썼었는데,
   오늘은 내려가는 길이라 아내와 둘이서 동시녹음으로 외치며 그 수를 세워보니,
   놀랍게도 551 계단이었기에 정정합니다.

   13:05 화개재

   화개재에 오면 벤치모양으로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이 식사하기에 안성맞춤이라 ,
   이곳에서 전을 펼칩니다.
   시장이 반찬이라 아내가 손수 준비한 여러 가지 반찬과 캔맥주 한잔 하니 살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는 그리도 선명하게 보였던 불무장등이 안개에 싸여 전방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토끼봉으로 향합니다.(처음으로 가는 길)

   "지리산도 별 것 아니네."---(지리산신이 들었을까요? 지리산신이 노할 일입니다.)
   "네"---동조하는 아내
   "그러니까 작은오빠(아내의 둘째오빠)가 우리더러 지리산을 누비고 다닌다고 하지, 허허"--

   자화 자찬 에 빠진 우리는 기고 만장 합니다.
   마치 앞으로의 고난을 예고하는 예고편의 시작 같습니다.

   이번 산행기는 존칭어로 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라도 써야 지리산신이 저를 용서해 줄 것 같아 이러는 것입니다.

   토끼봉으로 가는 도중에 한 지인을 만나 내가 먼저 알아보고 인사합니다.
   (옛날에 예비군 중대장 하시는 분인데 남자2명 여자2명으로 가족끼리 오신 듯 합니다.)


 


왼쪽사진(임걸령 샘터 이정표)-가운데 사진(삼도봉에서 바라본 풍경)-오른쪽사진(토끼봉 이정표)



   14:05 토끼봉 (1534m)

   토끼봉입니다. 여럿명이 앉아 있는데,
   아내가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안내판을 보러 갑니다. 그러고 나서 하는 말,

   "토끼봉에서 범왕교는 산행금지 구역이랍니다."

   이 무슨,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란 말입니까?
   분명히 피아골 삼거리에서 본 안내도에는
   토끼봉에서 범왕교 까지의 거리가 4.9km 이고 그림까지 그려져 있는데,
   막상 이곳에 도착해서 보니 산행금지 구역이라니요.
   산행금지구역이라면 안내판에도 산행금지 구간이라고 적어놓았으면
   아예 이곳으로 오지 않고 피아골 삼거리에서 화엄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것 아닙니까.
   안내판 하나 새로 고쳐놓지않다니, 대한민국이 이렇게도 후진국이란 말입니까.
   이로 인해 조난등 사고가 생기면 국립공원이 책임져 줄 겁니까?

   정말,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생각만 하면 분을 삭이지 못하겠습니다.
   물론 금지구역으로 내려간 저에게도 책임 있습니다.
   하나. 지도상 2시간, 거리 4.9km 라는 안내판을 보고서는 back를 하고픈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무조건 되돌아 내려왔어야 했습니다.

   " 조심해서 내려 가이소."---앉아 있는 다른 등산객이 걱정 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조금, 내려가다가 길이 영, 없으면 도로 올라오면 되지 뭐."---되돌아오기는 더 힘드는 줄 알면서 내려갑니다.

   내려가니, 그런 대로 걸을만 했습니다. 내려가는 길이라 더욱 안심을 했었지요.
   금지구역의 길이라 아무도 없고 우리 둘만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지리산을 전세 얻었다, 그치,
   아까 피아골로 올라 올때도 거의 등반객을 못만나고, 지금도 우리뿐이네."


   제법 내려가니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기 위한 흰플라스틱 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관을 따라 내려오기도 하고 간간이 달려있는 리본을 등대삼아 내려오는데,
   길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이제부터 슬슬 후회와 걱정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내려가면서 땀을 이렇게 흘린적은 처음입니다.
   나침반을 보니 남쪽으로 내려와야 맞는데 이상하게도 동쪽으로 더 많이 가는 것 같습니다.
   이상한 예감이 들긴 했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산이란 거대한 자연이 하자는대로 할뿐, 인간의 의지대로 할수가 없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인간은 한낱 티끌에 불과 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면서 산이 시키는대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발에 닿는 땅은 흙은1% 였고 99%는 바위였습니다.
   그 바위는 미끄러워 도저히 빨리 내려올 수는 없었습니다.
   앞으로 엎어지고, 뒤로 자빠지고, 빠지고,
   (앞으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돌에 부딪쳐 찧었는데 다행히 팔목만 긁힘)

   아, 다리라도 삐끗하여 걸음이라도 못 걸으면 그대로 조난입니다.
   그래도 아내는 나 이상으로 잘 버티고 있습니다.
   아까, 피아골에서 피아삼거리 2km 구간을 오를 때 아내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체력이 보통이 아니네요."

   지금 내가 아내에게 말합니다.

   "당신도 체력이 보통이 아니네." 

   " 위급한 상황이면 더 힘이 생기는 것 같네요."---아내

   나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해주는 아내에게 고맙고, 동지의식마저 느낍니다.
   만약에 이런 상황에서 아내마저 나를 원망하고 응석을 부리면 어떻게될까 생각하니
   아내가 너무도 고맙습니다.
   (아내는 벽소령까지 가기를 원했었고 내 생각에 그곳 까지가서 그 아래마을로 내려가면 너무멀고
   힘들 것 같아 토끼봉에서 범왕교로 가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지금 와서 이야기이지만 벽소령까지 갔으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말에 대한 답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위험하고 험한 등로는 타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디선가 사람소리가 나서 보니 사람들 몇 명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만 금지구역으로 내려오는 줄 알았는데, 그시각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본 분들은 어찌나 빨리 내려가는지 야속하게도 그들만 먼저 내려갑니다.

   "아, 저런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산꾼인가 보다."---짐작

   나중에 알고보니 수원인가 어딘가에서 오신 산악회 회원님들로 그이름이 에델바이스회 인데,
   한 오십명이 노고단에서부터 출발하여 14:30분에 토끼봉에서 내려온 것인데
   그들도 뿔뿔이 흩어져 칠불암이 그들의 목표지점(車가 대기) 이었다 합니다.
   그러니, 그들은 우리도 그들 회원 중 일원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분들 덕분에 조난을 면한 것 같아 너무도 이분들이 고맙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우리가 무사히 계곡을 건널 수 있게 도와주신
   이름 모를 두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하지만 그들역시 모두다 무사히 귀환 했는지는 알수없습니다.
   우리앞에 가는 한아주머니는 우리하고 같이 가다가 ..
   도중에 그분은 길을 올라갔고,우리는 내려갔는데 무사히 귀환 하셨는지..

   오늘 우리가 산행하는데 간과한 3가지가 있는데,

   1.산행시 여럿이 산행하라.(이것은 할 수 없습니다. 항상 부부산행 이므로.)
   2.정상등로가 아닌 길을 가지 마라.(앞으로는 절대로 등산로 아닌 길은 안다니기로 맹세함)
   3.비온후 계곡을 건널 때 조심하라.
   (당일, 비가 안 왔으므로 방심하였는데, 몇일전부터,이곳 하동에 비가 많이 내렸다 함.)

   계곡을 좌우로 건넌지 몇 차례일까?
   수는 세어보지 않았지만 한 10번 정도는 좌우로 왔다 갔다 한 것 같습니다 
   ---이유는 길이 끊기므로 건너지 않을 수 없음.
   17시가 넘은 시각. 어느 계곡지점입니다.
   에델바이스 회원인줄 알고 한 남자분이 반대편에서 기다리면서 말합니다.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건너고 보니 만만치가 않아서요. 건너오십시오 손을 잡아 드릴께요."

   하필이면 제가 먼저 건넜습니다. 항상 앞서가는 습관대로..
   실족하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물살이 빨랐고 수심도 깊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물살에 떠밀려내려가면 한5m 높이의 폭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아내의 차례입니다.
   갑자기 아내가 손을 흔듭니다. 겁이나서, 못 건너 오겠다고요.
   그러자 그분은 가버렸고, 나는 좀더 위로 올라가 스틱을 내밀어 봅니다.

   "이걸 잡고 건너오라."

   아내는 겁이나서 여전히 건너오지 못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한무리의 일원(에델바이스 회원인 모양)이 반대편으로 내려가자,
   아내가 나에게 손짓을 합니다. 각자 내려가자고요.
   계곡물 소리 때문에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손짓으로 의사를 전달한 우리는,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의 계곡 미로산행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아내가 그사람들과 같이 잘 갈 수있을까?
   --여기오기전 , 왼쪽 슬관절이 아파 소염제연고를 바르고 탄력붕대를 붙힌 상태 인데..
   하지만 조금내려가면 같이 만나겠지..(그때의 생각)

   아내도 아내지만, 내가 탈출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막상 계곡을 건넜지만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된 이상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되겠다 싶어 물속으로 발을 내려 놓았습니다.
   이제는 신발에 물들어 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려오다가 앞으로 숙여져 디카에 물이 닿았습니다.
   얼른 디카를 케이스에서 빼어내 비닐봉지에 넣습니다.
   60만원씩이나 하지만, 생명이 더 소중하므로 길 찾는 일에 더 열중합니다.
   그래도 수심이 제법 얇게 보이는 곳이 나와서 길을 발견하고 땅에 발을 내려놓으니 안심이 좀 됩니다.

   하지만 아내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는 아내의 안부가 걱정입니다.
   아내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습니다.

   숲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온지 얼마후 뜻밖에도,이현상유적지가 나타났습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현상유적지는 우리가 가려고 한곳과 전혀다른 길이였기에..)
   그 와중에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디카가 이상이 있나 확인도 할겸.

   잠시후 임도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이제 고행길에서 벗어났습니다.
   여기서 보니 계곡 반대편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소리를 지릅니다.

   "심 영남"~~ "이 종석" ~~"심 영남"~~"이 종석"~~

   이종석은 아들이름입니다. 계곡물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다시 가지고 다니는 호루라기를 불러봅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 했습니다.
   이상한 예감이 들면서 주체할수 없는 눈물이 흐릅니다.

   앞에 부부인 듯한 두사람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두분이 너무도 다정해 보입니다.
   아내를 보호해서 같이 내려온 그분이 너무도 훌륭해 보입니다.
   나는 졸지에 짝잃은 외기러기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람들이 몇몇 걸어가므로 물어봅니다.
   반대편 계곡에서 아래로 내려올 수 있냐고 말입니다.
   모두들 고개를 설래설래 흔듭니다.

   어떤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기를 보세요, 산에서 물이 저렇게 쏟아 지는데, 저기를 어떻게 갑니까?"

   하여 쳐다보니 반대편 산이 시커멓게 보이는 것이 악마의 모습같다 ,
   아,
   아내가 만약 저길로 내려간다면 무사히 내려 갈수 있을까?

   어떤분은 또 말합니다.

   "산에왔으면 같이 행동해야지요."

   그말을 듣는 나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집니다.
   아,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행동해야 하는건데.
   만약에 아내에게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이세상을 무슨 낯짝으로 살아 갈 것인가..
   더구나 헤드랜턴과 판쵸우의는 내베낭에 두 개가 함께 들어 있으므로

   아내는 헤드랜턴도, 판쵸우의도 없는 상태입니다.

   아침에 꾼 물꿈이 생각이 나면서 아내가 조난 당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아니, 무리하게 계곡을 건너다가 급류에 밀려 생명을 잃지 않았을까?
   하는 방정 맞은 생각이 자꾸 들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럴수록 냉정을 찾아야 하지만, 나는 이미 이성을 잃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휴대폰을 빌려 전화를 해 보았으나,
   빌어먹을 지리산은 전화 통화가 불통입니다.

   "이제는 할수 없다. 마을까지 내려가 계곡이 합쳐지는 부분에서 기다리든지 구조를 요청하자."
   --나의 생각입니다.



 


작은 폭포 - 고행길 내려오면서 찍은 폭포

 

 


   18:30 의신마을(벽소령에서 하산하면 만나는 마을)

   삼정 마을(그때는 마을 이름도 몰랐습니다.)에서 한 30분 내려가니,
   마을이 나와 제일먼저 눈에 띄는 식당에 들어가 주인장을 찾습니다.
   그리고 말하길..

   "도와주십시오, 제 妻가 저와 함께 등반을 하다가 계곡을 건너지 못하고 ,
   계곡 반대편 산을 내려오고 있는데, 조난 된 것 같으니 제발 좀,119를 불러주십시오.
   돈은 달라는대로 드릴께요."
--울먹이며 애원조로 말합니다.

   남자주인이 TV를 시청하고 있다가 내표정을 보고 심상치않다 싶은지 일어나면서
   119뿐만아니라 국립공원 관리소에도 연락하라고 합니다.
   119는 내이름과 지금 위치등을 묻고 곧 전화를 끊었고 국립공원에 전화하니.,
   대번에 금지구역산행에 대한 질책부터 합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세상 살면서 이같은 말은 처음 해보았습니다.

   사실 우리잘못도 있지만,
   안내표시판 하나 고치지않은 국립공원의 책임도 그에 못지않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주인(이름도 성도 모릅니다. 산행기를 쓰기 때문에 항상 묻곤 했는데
   오늘의 상황은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이 말합니다.

   "한번 같이 올라 가봅시다. 저쪽 계곡에서 보면 이곳마을 이 보이는 곳이 있는데
   그곳으로 한번 가보십시다."


   하고 후레쉬 한 개를 딸랑 손에들고 고물트럭 에 시동을 겁니다.
   물에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일단 아저씨 트럭에 올라 탑니다.
   하지만 마음은 어둡기만 합니다.
   반대편 저쪽산에서 홀로 오들오들 떨고 있을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니
   눈앞이 캄캄하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11시간10분을 죽을 고생하고 산행 하고 내려왔지만,
   아내를 찾아야 겠다는 일념에 다시 차를 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제 얼마 있으면 어두워지고 헤드랜턴도 없는 아내를 무슨 수로 찾을 것인가..
   어두운 산속에서 홀로 추위와 공포로 떨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어른 거립니다.

   고물트럭을 타고 올라가는데 몇 명의 등산객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아..
   .
   .
   .
   그 속에서 아내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급히 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부둥켜안고 소리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옆에서 같이 내려온 한 아주머니는 내가 운다고 처음에는 웃었지만,
   곧 그 아주머니 얼굴에도 눈물이 전달되었습니다.
   어느 누군들 아내가 소중하지 않겠읍니까만은,
   저는 여태 아내와 살면서 한번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살갑게 대하는 남편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내 아내가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도 삼정마을에 와서야 휴대폰이 터져 집에 연락해보니, (집에 딸이 있었으므로)
   나한테서 온 전화가 없다고 해서 아내는 아내대로
   나의 생사를 걱정하면서 울먹이고 내려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부모님과 아들딸, 쿠키,밍키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온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아내에게 나중에 들어보니, 그 계곡으로 일행들과 죽으나 사나 동행하면서 내려갔는데,
   잠시후 길이 없어졌고,
   결국 다시 그 무서운 계곡을 건넜다 합니다.
   (에델바이스 회원중 힘쎈 남자분 몇 명의 도움으로 건널수 있었다 합니다.)
   계곡을 건너다가 남자 한분이 물에 빠졌는데 다행히 무사하였고,
   그들과 함께 행동한 아내는 죽음의 계곡을 탈출 할 수있었던 것입니다.
   아내를 만났을 때 시간을 보니 19시 입니다.
   만약에 아내 혼자서 지금까지,그 계곡에 홀로 남아 있었다면, 생각하기조차 끔찍합니다.
   이런 상황을 당하자. 저에게 아내에게 교훈이 생겼습니다.

   1. 절대로 헤어지지 말자.
   2.헤드랜턴, 판쵸우의는 각자 배낭에 한 개씩 지참하자.
   3.휴대폰 각자 지참할 것.(지리산에서는 대부분 필요 없지만요.)


 


이현상 유적지 표시판 (빨치산 총두목 이현상 유적지)

 

 




피아골 삼거리에서 찍은 안내판

 

 



    이 이정표에 대로라면..
   직전마을-피아골삼거리-노루목-삼도봉-화개재-토끼봉-범왕교 까지의 거리는 15.2km 이다.
   하지만 토끼봉에서 범왕교로 내려가는 길은 등산 금지구역 이었고,
   이를 무시하고 내려간 우리에게 내린 형벌은 잔혹했습니다.
   4시간 30분(처는 5시간)이라는 사투를 벌인끝에 범왕교가 아닌,
   이현상(빨치산)유적지를 거쳐 내려간곳은
   벽소령 대피소에서 내려오는 길인 의신마을 이었습니다..

   지리산이라는 거대한 산을 우습게여긴 우리에게 지리산신이 내린 경고였습니다.

   집에와서 생각하니 우리가 거대한 함정에 빠진 것을 알았습니다.

   지리산을 가벼이 여긴 우리를 보고,지리산신은 거대한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 입니다.
   .
   .
   .
   .
   .
   .2003.08.31 피아골에서 토끼봉을 거쳐 의신마을 에 다녀와서..





My Heart Will Go on / Celine Dion






후일담.

119와 국립공원에 다시 전화를 걸어 조난 해제 신고를 하였고,
식당주인 아저씨에게 이왕 이렇게 신세 졌으니, 우리 車있는 직전 마을까지 우리를 태워달라 부탁하고 ,
수고비 조로 일십만원을 드리니 아저씨가 많다고 펄쩍 뛴다.
하지만 아내의 생명을 구한 이 기쁜날에 일십만원은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기름티켓 있는 것까지 드리려고 하였으나 그분의 사양으로 돈만 드렸습니다.
그분이 비록 크게 한일은 없었지만, 그때 그상황에서 나에게는 구세주 같은 분이었고,

후레쉬를 들고 나서시는 모습을 생각하면, 천만원 인들 아깝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