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기

북유럽 일주 여행 Day3,4

통영사람 이수영 2018. 10. 7. 09:52

북유럽 일주 여행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

2018.9.20~2018.9.27 (6박 8일) 노랑풍선

 

Day3-9월 22일(토)

Day4-9월 23일(일)

(오슬로~비올리~게이랑에르~뵈이야~래드달)

 

-6박 8일 일정-
*제1일(목) 인천-헬싱키-코펜하겐-말뫼(1박)
*제2일(금) 말뫼-코펜하겐-D.F.D.S(2박)
*제3일(토) D.F.D.S-오슬로-비올리(3박)
*제4일(일) 비올리-게이랑에르-뵈이야-래르달(3박)
*제5일(월) 래르달-플롬-오슬로-칼스타드(5박)
*제6일(화) 칼스타드-스톡홀롬-바이킹라인(6박)
*제7일(수) 바이킹라인-투르쿠-헬싱키
*제8일 헬싱키(기내박)-인천

 

셋째날 오슬로~비올리 이동궤적

 

셋째날 오슬로 관광궤적

원 일정대로라면 노르웨이 왕궁, 비겔란공원, 아케르스후스요새, 국립미술관, 카를 요한거리를 관광했어야 했지만 태풍 때문에 일정이 틀어져 국립미술관과 카를 요한 거리만 보고 래르달을 향해 달려야 했다. 

 

아침식사 후 선창에서 거센 파도를 바라보며

 

2시 30분. 아내가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한 번 깨었다가 다시 자서 4시 25분. 꿈에서 깨어나 이층 침대 머리 위에 있는 전등불을 밝히니 아내도 함께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는데 오리털 조끼를 입고 있다. 그리곤 곧 꿈나라로 들어간다. 나는 완전 기상했는데 아직도 배는 여전히 흔들리고 가끔 쿠쿵! 하며 무엇엔가 받히는 소리까지 들려 불안감을 자아내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는 코까지 골며 세상모르게 잘도 잔다.

 

7시 옆방에 불이 들어와 아내를 깨웠지만 흔들리는 배 때문에 한참을 누워있더니 7시 32분에서야 몸을 움직인다. 이미 나는 면도와 세수를 마쳤고 샤워까지 할 계획이었으나 이런 상황에서 샤워는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세수를 마친 아내가 멀미가 나는지 얼굴이 노래지면서 도저히 아침을 못 먹겠다며 드러눕는다.

 

8시 아침식사를 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매우 차분한 어투라 다소 안도감을 느낌)  8시 26분. 아내와 함께 7층 식당으로 올라갔더니 한 분이 앉아 계시는데 (남편은 멀미로 드러누워 혼자 오심) 식당으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와 함께 들어갔는데 들어와서도 한참을 앉아계신다. 그리고 보니 멀미 때문인지 많은 분들이 결석을 한 것 같다.

 

우리도 처음엔 못 먹겠다가 나중에 야쿠르트에 견과류 넣고 소시지, 과일, 잼바른 빵, 치즈로 간단하게 먹었다. 청어조림 한 입 먹었다가 멀미가 나올 것 같아 중단하고 어제는 몰라서 못 마셨던 커피를 끝으로 아침식사를 마쳤다. 선창을 내다보니 이제 날씨는 맑은데 파도는 여전히 거세다.

 

객실로 돌아오자마자 아내는 컨디션을 조금 회복했는지 캐리어 정리까지 하더니 그것도 잠시 곧 드러눕는다. 잠이나 청할까? 잠도 오지 않고 참 할일 없는 DFDS의 오전이다. 10시 23분. 안내방송이 나온다. 오슬로에 오후 2시에 도착한다는.. (원일정은 오전 9시 30분) 10시 45분. 또 안내방송이 나와 7층으로 올라가니 박팀장이 보인다. 본인은 아침 6시 30분 부터 7시까지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아 모두들 고전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단다. 이제는 육지도 보이고 파도도 잠잠해져 배가 점점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12시 부터 점심식사를 하고 13시 50분까지 5층 중앙홀로 캐리어를 끌고 나오라고 한다. 이때 아침에 만났던 사모님이 또 혼자서 서성이고 있었는데 하시는 말씀이 남편이 "육지가 보이느냐?" "다음 배는 절대 타지 않겠다." 며 멘붕상태에 빠져 있다고 하면서 웃으신다. 마주 보는 앞 객석의 남자분(옷 잘 갈아 입었던)도 아침을 도저히 못 먹겠어 굶었다고 한다. 그나저나 빼앗긴 5시간은 무엇으로 보상을 받아야 하나..

 

DFDS의 조식권, 식권 검사를 하지 않아 프리패스했고 멀미 때문인지 식당에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반면 점심 때는 사람들로 들끓었다.

 

점심식사 후 맑은 날씨의 DFDS의 갑판에서 밝은 표정의 아내

 

폭풍우이 지나간 다음날이라 그런지 이제 바깥풍경은 눈부시게 밝은 하늘아래 요트가 떠다니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뀌었다.

 

DFDS 갑판에서 바라본 오슬로

 

오슬로 항으로 입항 전 맞은편 섬에 보이는 요트군

 

오슬로 시민에게 요트는 선망의 대상이라고 한다. 요트를 타고 즐기기도 하지만 요트를 타지 않아도 요트 안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며 낭만을 즐긴다고 한다.. 하지만 일 년 주차비는 1,5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만큼 북유럽의 물가는 비싼 편이다. 

 

DFDS 오슬로 대합실

 

13시 45분. 오슬로항에 입항하였지만 접안하는데 20분 정도 소요되어 14시 5분. 배에서 나와 버스 나오기를 기다린다. (버스 나오는데도 20분 걸림)

 

구명정이 매달려 있는 칸이 6층이고 우리들 객실은 5층이었다.

 

14시 29분. DFDS에서 빠져나온 버스를 타고 출발이다. 이때 오슬로 가이드가 버스에 올라탔는데 뜻밖에도 외국인이다. 그런데 의외로 한국말을 잘했다.

 

 

오늘은 국립미술관과 카를 요한 거리 두 곳만 방문하고 나중에 내려오면서 못 본 곳을 본다고 박팀장이 말한다.

 

부두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국립미술관은 아무런 간판이 없어 모르는 사람은 여기가 국립미술관이라는 것을 절대로 알 수 없을 것 같다. 어제 덴마크 시청사 처럼

 

관람시 주의사항을 설명하는 오슬로 가이드

시간이 급해서 그런지 다른 방은 패스하고 19번 방 뭉크의 방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뭉크의 '절규'

 

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 (1863~1944)

독일 표현주의 발전에 기여한 노르웨이의 화가로, 주요 작품은 '절규'와 '죽음의방'이다. 그가 어렸을 때 부모와 동생이 죽었기 때문에 평생을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사로 잡혀야 했고 이는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주제를 강렬하게 다룸으로서 보는 사람에게도 똑 같은 감정을 자아내게 하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그의 작품 '절규'는 실존의 고통을 형상화한 초상으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다음백과에서-

 

뭉크가 사랑했던 여인 '마돈나'

 

이 그림은 계단 위에 설치한 대형 그림인데 그린란드를 처음 발견한 순간을 그린 아이슬란드 화가 '힌랙'의 작품이라고 한다.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국립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카를 요한 거리로 향했다.

 

카를 요한 거리에서

멀리 보이는 건물이 노르웨이 국왕의 거처인 왕궁이라고 하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가지 못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카를 요한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벼룩시장에는 싸게 물건을 팔고 있어 관심이 가는데 시간이 촉박하니 그림의 떡이다.

 

국립미술관

 

15시 30분. 버스출발이다. 오슬로 가이드와 그야말로 1시간 동안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이별했는데 본인 이름조차 말하지 않고 떠났다. 나중에 비올리 하이멘 호텔에서 박팀장에게 들었는데 '제임스킴' 이라고 하며 노르웨이인이 아닌 카자흐스탄인이라 했다. 한국어가 유창한 것은 13년을 한국에서 보냈기 때문이란다.

 

차창으로 보이는 오슬로 시청사

 

차창에서 바라본 오슬로 대학, 이 사진을 찍고나서 버스는 바로 해저터널로 들어갔다.

 

차창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노르웨이 도로에는 속도계 같이 생긴 카메라가 보이는데 통과세를 받는 카메라 라고 한다. 이렇게 자동으로 찍어서 차주의 구좌에서 빼간다고 한다. (차주는 구좌를 등록해야 한다고 함)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은 한때 덴마크 왕이 3국을 다스리다가 스웨덴이 먼저 독립을 하고 이후 노르웨이가 독립하여 서로가 매우 가까운 나라라 한다. 언어도 거의 비슷하단다. 잠시 후 박팀장은 노르웨이 영상을 보여 주었다. 노르웨이는 원래 가난한 나라였는데 60년대 북해 석유가 발견되는 바람에 오늘날 부국이 되었다고 한다.

 

17시 33분. 큰 호수를 건너는데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메사호수' 라고 한다.

 

메사호수를 건너온 후

 

메사호수 휴게소에서 30분간 쉬었다 간다. 17시 35분~18시 5분

 

잔디밭이 보이기에 궁금했는데 목초밭이라고 한다.

 

목초는 말이나 소 등 가축의 먹이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런 평지에 농사를 짓지 않고 목초밭을 일구는 것이 이방인의 눈에는 생소하기만 하다.

 

차창에서 본 릴레함메르

 

차창으로 바라보는 메사호수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18시 25분. 메사호수 건너편으로 1994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릴레함메르 마을과 스키점프대가 차창을 스쳐 지나간다. 아내가 보더니 마을이 아름답다고 감탄한다.  하지만 무심한 버스는 스치고 지나간다.

 

메사호수를 지나 해가 서산에 지는 로스나호수가 나타난다. 댐도 보이고 얼마쯤 달렸을까? 터널 수개를 통과하자 어느덧 어둠이 내렸다. 돔바스를 지나 비올리로 가는 도로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21시. 비 내리는 비올리 '하이멘' 호텔에 도착했다. (비올리의 는 오슬로에 비해 고도가 무척 높다. 고도 587m)

 

비올리 하이멘 호텔의 저녁식사 (다 맛있었지만 특히 스프와 양고기가 일품이었다)

 

비올리 하이멘 호텔은 프론트를 중심으로 우측이 객실이고 좌측이 휴게실 식당 순이다. 프론트에는 곰, 여우, 족제비 박제가 함께 있어 눈길을 끌었다. 또한 프론트에는 나이든 남자 한 분이 앉아 계셨는데 귀가 잘 들리지않는 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말은 곧잘 했다.

 

프론트에 전시되어 있는 곰, 여우, 족제비 박제

 

비올리 하이멘 호텔 102호실

왼족 탁자에 놓인 열쇠고리가 나무를 휘어 만들었는데 인상적이었다.

 

저녁 식사하고 102호실로 돌아오니 22시. 어느새 비가 그쳤다.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하고 싶었지만 캄캄한 시골이라 산책도 할 수없다. 오늘 저녁식사는 맛있었다. 특히 스프와 양고기가 맛있어 양고기에 대한 선입견을 날렸다. 소고기는 짜고 맛이 별로인데 반해 양고기는 약간 딱딱하면서도 맛있었다. 치즈는 갈색치즈가 가장 한국인의 입맛에 맞고 계란은 완숙과 반숙 두 가지가 있는데 계란받이에 올려 계란 윗부분을 톡톡 쳐서 껍질을 벗긴 후 베이컨과 함께 먹어야 제격이라고 한다.

 

박팀장에게 노르웨이어로 '맛있다'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몰랐다. 영어만 할 줄 알았지 노르에이어는 모르는 모양이다. 그런데 아내는 멀쩡한데 오히려 내가 가멀미를 한다. 어지럽고 울렁거려 중심이 흔들린다. 인원이 하도 많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도 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그렇다. 이들을 다 알려면 마지막 날 쯤일까?

 

샤위 하고 자리에 드니 22시 55분이다. 이곳 하이멘 호텔 역시 비누만 달랑 있다. 고로 북유럽 여행시는 샴푸 린스 치약 칫솔 드라이기 슬리퍼는 필수로 보인다. 샴푸 정도는 있겠지 하고 안 가져왔는데 실수다. 별 수없이 비누로 감고 린스로 헹구었다. 여긴 티비도 없고 와이파이는 비번을 찍어야 하는데 시간도 늦고 귀차니즘 때문에 생략한다. 말이 호텔이지 별장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DFDS 객실에 비하면 호텔이다. 

 

 

다음날 (9월 23일 일요일)

넷째날 비올리~래르달 이동궤적

원 일정대로라면 비올리에서 조금 북진하다가 좌측 산악지대로 올라가야 했는데 '요정의 길'이 폐쇄되는 바람에 반대로 왔던 길로 되돌아 내려가다가 다시 유턴하여 최북단 바닷가 마을까지 올라갔다가 1차 (선착장~에이스달) 2차 (게이랑에르~헬레쉴트) 3차 (포드네스~만헬레) 피오르드 횡단 배를 타고 건너 래르달로 이동하였다.

 

버스 출발하기 전 비올리 하이멘 호텔 프론트

 

꿈에서 깨어나 시간을 보니 3시 23분. 한번 잠에서 깨어나니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리는데 4시경에 아내도 깼는지 시간을 물어온다. 어젯밤 늦게 잤는데도 이렇게 일찍 깨는 이유는 아마도 시차 때문일 것이다. 어젯밤 바깥온도계는 영상 3도를 가리켜 쌀쌀했던 날씨인데 히터 덕분에 방은 전혀 춥지 않고 오히려 이불을 걷어찰 정도다. 너무 이른 새벽이라 다시 잠을 청해

 

꿈에서 깨어나니 5시 38분. 아까 깨여 있었던 아내는 코까지 골며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이제는 잠자기에 글러 완전 기상이다. 6시 35분. 세수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오니 어둑어둑한데도 설경이 보인다. 그런데 비가 내리고 있다. 흐미~

 

7시에 아침을 먹는데 이집 음식은 숫자는 적어도 맛있다. 반숙 계란에는 '캐비어' 라고 적혀있는 치약처럼 생긴 것을 짜서 소금 대신 계란과 함께 먹는다. 청어조림에는 야채도 들어있어 빵과 함께 싸서 먹으니 괜찮다. 어젯밤에 비해 스프도 없고 고기도 없었지만 잘 먹었다. 우유는 시리얼과 함께 먹었고 앙증맞게 작은 사과는 당도가 높다. (약간 새콤했지만) 커피까지 마시고 식당을 나왔다.

 

실비 내리는 비올리 하이멘 호텔을 떠나며

 

비올리 하이멘 호텔은 호텔이라기 보다 별장에 가깝다.

 

차창으로 보이는 추색이 완면한 마을 풍경

 

버스에 탄 박팀장왈'  눈 때문에 '요정의 길'이 클로즈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며 양해를 구한다. 그래서 요정의 길이 아닌 우회 길로 게이랑에르까지 간다고 한다. 요정의 길에 눈이 내려 멋진 비경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잔득 기대를 부풀게 만들더니..

 

참고로 요정의 길은 라우마 지역에 빙하가 만든 협곡에 해발 2,000m 꼭대기까지 11번의 지그재그로 심하게 굽어있는 험한 길로, 트롤스티겐이라 불리는데, 이는 요정의 길을 뜻한다. 이 길을 지나면서 Stigfossen 폭포도 감상할 수 있다.

 

버스는 왔던 길로 빽하다가 곧 다시 유턴한다. 박팀장 말로는 구글에서 다른 우회 길을 인도했다고 한다. 다시 버스는 비올리를 지나 북서쪽으로 달렸다. 위 사진은 유턴하여 비올리를 지나 북서쪽으로 달리면서 차창으로 본 눈 덮인 산과 마을 풍경이다. 이 부근에 오따 (노르웨이어로 여덟이라는 뜻)라는 마을이 있는데 중세 흑사병이 돌때 모두 죽고 8명만 살았다고 해서 오따라 불린다고 한다. 아까 유턴하지 않고 그대로 달렸으면 돔바스를 지나 오따에서 '독수리의 길'을 따라 게이랑에르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박팀장이 말한다.

 

달리는 버스 차창으로 본 폭포들은 마치 뉴질랜드 밀포드의 폭포처럼 산정에서 물이 떨어진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은 의사들이라고 한다. 수입의 80%까지 내는 이도 있단다. 옛날엔 의사들을 독일에서 모셔왔다고 한다. 즉 독일인 의사가 많다는 뜻이다. 그리고 세금에 대해서는 아주 철저한 나라이며 과외 일을 시키면 반드시 팁을 주어야 한단다. 예를 들면 조금 일찍 아침밥을 부탁하면 팁을 주어야 부탁을 들어준다고 한다.

 

9시 29분. 미국의 유명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최고의 산악영화 '클리프 행어'에 나오는 캐나다의 랜들산(2,980m)과 빼닮은 산이 나타난다. 비로 인해 급조된 폭포가 흘러내리는 풍경만을 본다면 뉴질랜드 밀포드와 흡사하다. 가장 폭포가 많이 흘러내리는 계절은 눈이 녹아내리는 봄이라고 한다. 여름엔 오히려 수량이 준다고 한다.

 

날씨가 점점 흐려지더니 비가 많이 내린다. 특히 피오르드가 보이는 곳은 더욱 많이 내린다. 잠시 후 9시 45분. 긴 터널을 통과한다. 그런데 터널을 통과하자 또 날씨가 바뀐다.

 

긴 터널 통과 후 (비가 그치고 푸른 하늘도 보인다.)

 

긴 터널을 통과한 후 9시 57분. 두번째 터널 9시 59분. 세 번째 터널을 통과한 후 10시 12분. 다리를 건넜다. 이동 궤적을 보니 저 다리가 투어 코스 중 최북단에 위치한 곳이다. 이제부터는 남하한다.

 

10시 22분. 화장실이 있는 휴게소에서 20분간 쉬었다 간다.

 

화장실 갈때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차창으로 보이는 피오르드에 눈길이 빼앗긴다. 이 바다는 '스토르피오르드' 로 보인다.

 

11시 28분. 이곳 선착장에서 에이스달로 배를 타고 건넌다.

 

스토르피오르드를 배경으로

 

에이스달에서 우리를 태우기 위해 배가 오고 있다.

 

11시 45분. 배에 승선하여 '스토르피오르드'를 건넌다. (10분 소요) 갑판에 올라가서 아내의 사진 한 장 찍자마자 비가 또 내리기 시작한다. 참 변화무상한 날씨다.

 

에이스달 지나 달리는 버스 차창으로 바라본 산골마을 풍경

 

에이스달 지나 높은 고갯길을 올라가면서 차창으로 본 풍경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길이미끄러워) 고갯길을 내려오니 폭포수가 도로위로 떨어지는 게이랑에르 전망대에 도착했다. (이 폭포가 Stigfossen 폭포 인가??)

 

이 바다가 게이랑에르피오르드(Geirangerfjorden)인데 나중에 배를 타고 건너게 된다.

 

멀리 게이랑에르 마을이 보인다.

 

약 15분간 전망대에서 머물다가 버스로 향한다.

 

게이랑에르 마을로 내려가는 지그재그 길

 

12시 35분. 게이랑에르 마을에 도착했다. 점심시간 막간을 이용하여 쇼핑가게에서 선물용으로 쵸코릿과 카라멜을 샀다.

 

쇼핑 가게에서 나와 포즈를 취한 아내

 

소고기 미트볼과 감자 그리고 완두콩으로 점심을 먹었던 '올레부다 레스토랑' (2층에서 식사함)

 

중식 후

식당 앞 가게의 지붕에 풀이 나 있는데 노르웨이 정통 지붕이라고 한다. 자작나무 껍질로 지붕을 씌운 후 그 위에 흙을 덮어 풀이 자라나게 만든 지붕이다.

 

여러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다가가니 모두 달아났는데 유독 이 아이만은 남아서 모델이 되어준다.

 

우리가 타고 갈 유람선

탈 때는 걸어서 들어가고 나중에 내릴 때는 버스를 타고 내려야 한다. 유람선 좌석은 지정 좌석은 없고 이동하면 남의 좌석이 된다. 14시. 유람선 출발 

 

유람선 내부 분위기

 

시즌 막바지라 유람선은 텅텅 비었을 것이라는 박팀장의 말과 달리 승객들로 가득차 좌석이 없을 정도다. 이렇게 승객이 많은 이유는 요정의 길이 클로즈 되는 바람에 이곳으로 관광객이 몰린 탓이라고 한다.

 

유람선에서 뒤돌아본 게이랑에르 마을

 

7자매 폭포

 

맞은편의 구원자 폭포

 

뒤늦게 갑판으로 올라온 아내 (바람이 불어 모자를 잡는다)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오랜 시간 갑판 위에 머물 수 없었다.

 

7자매 폭포와 구원자 폭포 그리고 표주박 폭포 이야기

 

구원자가 7자매에게 청혼을 하였으나 모두 거절 당해 속이 상한 나머지 술을 퍼마시다가 죽었다는 전설이다. 7자매 폭포 맞은편에 구원자 폭포가 있으며 구원자 폭포 아래에 표주박 폭포가 있다고 한다.

 

유람선을 타고 도착한 헬레쉴트 마을

 

달리는 버스 차창으로 내려다본 헬레쉴트마을

 

날씨는 여전히 흐리고 무정한 비는 오락가락 내린다.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한결같이 그림이지만 주마간산이라 담을 수 없어 안타깝다.

 

이곳 노르웨이는 홍수는 없지만 산사태는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특히 '로엔' 이라는 도시는 산사태가 많이 일어난 곳으로 유명한데 16시 11분. 로엔을 지나간다. 척 봐도 이곳의 지형이 급사면으로 되어 있다. 현재의 집들은 모두 안전지대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한번 산사태가 나면 복구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경치가 좋아 전망대로 올라갈 수 있는 케이블카가 있는데 박팀장 말에 의하면 너무 비싸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16시 17분. 올덴마을 지난다. 빙하수라는 뜻을 지닌 곳이다. 이제는 점점 빙하와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말이다. 올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수의 이름이라고 박팀장이 말한다.

 

16시 39분. 올덴을 지나 지그재그 언덕길에서 내려다본 인빅피오르드 Innvikfjorden 와 유빅 Utvik 마을 풍경이다.

 

지그재그 언덕을 넘으면 피오르드와 이별하고 산길로 이어진다. 16시 51분. 올라선 산길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다시 버스는 내리막길을 달려 스케이 마을에 멈춰 섰다.

 

화장실이라 해서 갔더니 가게 안에 있는 화장실이다. 조금 의아했지만 그러느니 하고 들어갔는데 주인 노부부의 표정이 안 좋다. 그러더니 15분간 화장실 사용을 허락할테니 30분간 쇼핑을 하라고 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시간에 쫓기는 박팀장이 난색을 표하자 화를 내면서 그러면 일인당 1유로씩 내라고 한 것이다.

 

나를 비롯한 몇몇은 들어갔다가 서슬이 시퍼런 두 내외가 인상을 쓰는 바람에 걸음을 멈추었다. 결국 박팀장이 20유로를 주고 위사진속 기념품 가게를 빠져 나왔지만 참으로 수악한 동네다. 하지만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예 처음부터 그렇게 흥정을 보고 들어 갔어야 했다.

 

스케이마을을 떠난지 14분 후 17시 44분. 7km의 긴 터널을 통과한다.  이 터널을 통과하니 곧 뵈이야 푸른빙하가 나타난다.

 

17시 49분. 뵈이야 푸른빙하에 도착하니 높은 빙하산맥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푸른 빛의 빙하가 나타난다. 이 빙하는 점점 두께가 얇아져 22세기엔 다 녹는다고 한다. 녹기 전에 본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푸른빙하 Jostedal Glacier

 

요스테달 빙하는 낮은 기온 보다는 주로 고산지역의 많은 적설량에 의해 유지되고 있으며 쌓인 눈의 압력으로 다져져 육지의 일부를 뒤덮고 있다. 여름철에는 주변지역의 얼음은 계절에 따라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요스테달렌(Jostedalen) 계곡을 향해 천천히 흘러내린다. 빙하에서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 1,957m 의 '획스테 브레쿨렌'이며 얼음으로 덮이지 않은 주변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2,083m의 '로달스코파'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지척에 있는 빙하박물관으로 왔다.

 

빙하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북극곰과 함께

 

이곳에 오니 암반을 뚫어 수력발전을 시키는 모형물이 있는데 모두를 감탄시킨 것은 암반을 뚫는 기술이다. 이곳엔 기념품가게와 매점 그리고 빙하 상영관이 있어 잠시나마 영상을 즐기기도 했다. 빙하박물관은 피얼란드라는 빙하산맥의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어 양쪽에 터널을 뚫은 것이다. 병풍처럼 둘러친 빙하산맥의 높이는 2,000m가 넘는 산들로 되어 있다.

 

빙하박물관에서 본 풍경

 

18시 49분. 빙하박물관을 지나 송네피오르드가 보이는 풍경이다.

 

19시 4분. 다리를 건너면서 바라본 송네피오르드와 마을 풍경

 

19시 14분. 통과하는데 2분이나 걸리는 긴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포드네스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만헬레로 이동한다. 페리 두 대가 번갈아 가며 운항하는데 앞뒤가 따로 없어 차를 그대로 직진하고 나올 때도 그대로 직진한다. 시속 17키로의 속도로 저속 운항을 하는데 이 바다가 유명한 송네피오르드다. 만헬레에 도착해선 곧 긴 터널로 연결되는데 터널을 빠져 나오니 곧 래르달이다.

 

송네피오르드 Sogne Fjord

 

총 길이 204m 깊이 평균 700m로 가장 깊은 곳은 1,300m에 달한다.노르웨이에서 가장 긴 협만이며 예전부터 이곳을 중심으로 농사와 목축업이 발달하였다. 현재는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으면서 관광업이 가장 발달한 관광지이다.

 

래르달 린드스트롬 호텔의 매장

 

19시 45분. 래르달 린드스트롬 호텔에 도착하여 캐리어를 프론트에 모아놓고 저녁식사 부터 한다. 배가 고파서인지 맛있게 잘 먹었는데 문제는 배가 너무 불러 객실에 입실하자마자 소화도 시킬 겸 바깥으로 산책길에 나섰다.

 

래르달 린드스트롬 호텔 216호실

 

하지만 일요일이라 그런지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고 마을도 어두침침하고 너무 작아 한 바퀴 휘~ 둘러보니 끝이다. 21시 38분. 객실로 돌아와 보니 객실의 침대는 너무나 허접하고 작아서 자칫 잘못하면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여태 여행을 숱하게 다녔어도 이런 허접한 침대는 처음이다.

 

와이파이도 문자메시지만 들어오고 인터넷은 안 된다. 커튼은 세 토막으로 이어놓았고 세면대 수도꼭지는 온수와 냉수를 따로 돌려야 하는 구식 꼭지라 매우 불편하다.

 

23시 15분. 오늘의 일정을 정리하는데 피로가 쓰나미처럼 밀려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2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