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성제봉▲ 난테 아우와 함께 오른 악양 성제봉 능선 ..
[지리] 난테 아우와 함께 오른 악양 성제봉 능선 .. (140번째 산행기)
ㅇ일시: 2006년 05월 05일 금요일
ㅇ날씨: 오전은 흐리고 오후에는 한때 비
ㅇ산행자: 난테아우 그리고 우리부부
ㅇ산있는곳: 경남 하동군(河東郡) 화개면(花開面), 악양면(岳陽面)
ㅇ산행코스: 최참판댁-한산사-고소성-신선봉-신선대-성재봉-활공장-원강재-거사봉-삼거리-시루봉-회남재-동매마을
ㅇ산행시간
ㅇ07:37-최참판댁 입구 주차장에서 산행시작
ㅇ08:00-한산사 (寒山寺)
ㅇ08:25-고소성 (姑蘇城)
ㅇ08:58-통천문
ㅇ09:16-신선봉
ㅇ11:01-신선대
ㅇ11:18-철쭉제단
ㅇ12:09~12:13-작은 성제봉 (1,115M)
ㅇ12:19-큰 성제봉 (1,107M)
ㅇ12:50-활공장
ㅇ13:12-원강재
ㅇ13:39-거사봉 오름길에 만난 큰 바위
ㅇ14:03~14:19-점심식사 (거사봉오름길)
ㅇ14:33-삼신봉 갈림 삼거리 (직진은 삼신봉 오른쪽이 시루봉)
ㅇ14:49-시루봉 (돌탑이 있음.)
ㅇ15:06-큰 암봉
ㅇ16:00-중계탑이 있는 봉우리
ㅇ16:16-회남재
ㅇ17:15-고로쇠나무 밭
ㅇ18:05-동매마을에서 산행마침
ㅇ산행시간 10시간 28분
ㅇ산행거리 약 19km
ㅇ나의만보계 3.7810步
ㅇ일정시간표
ㅇ05:52 통영출발
ㅇ06:30~06:42 사천휴게소에서 콩나물해장라면으로 얼요기
ㅇ07:37~18:05 산행
ㅇ18:20~18:30 들머리로 돌아오다. (악양 택시를 불러야 한다.)
ㅇ18:35~19:03 평사리상회 (감자전과 도토리묵으로 동동주 한잔)
ㅇ19:44 하동IC
ㅇ20:13~20:38 공룡나라휴게소 (저녁식사)
ㅇ21:00 통영도착
성제봉 (형제봉) 1,115m 하동군 화개면, 악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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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참고 산행기 - [지리] 남부능선의 끝자락! - 지리 성제봉과 회남재.- 이영진 (click here!)
산행에 앞서..
이번주에도 지리산(특히 도장골)에 가려고 지리 99에 문의까지 했는데
또다시 험한 개척산행을 각오해야 하며 공단직원의 감시의 눈초리와 큰곰 등등으로
두려운 마음이 앞서는지라 백무동을 기점으로 작은새골이나 다녀올까 하는데
목요일 저녁 난데없이 난테아우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난테아우는 금요일 산행길을 같이 가기로 원했고
산행지는 몇 달전부터 같이가자고 했던 악양 성제봉으로 가자고 한다.
악양 성제봉은 철쭉 필때가 좋아 다다음주나 가려고 했는데
난테아우는 낙동정맥 때문에 다다음주는 기약하기 어렵다 하니 어쩔 수 없다.
저번 의령 국사봉산행 처럼 곁님과 함께 오기를 학수고대했지만
치매 어머님을 모셔야 되는 형편상 난테아우만 온다고 하니 처가 많이 서운해 한다.
5월 5일, 새벽 4시 50분경에 마치 알람처럼 난테아우로부터 또 전화가 걸려와 받으니
지금 합천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이크! 지금 출발하지 말고 한 30분 후에 출발하라고 말한 후..
우리도 그덕분에 일찍 일어나 재빨리 준비를 마친 후 충무김밥 사러 시내에 나가니
강구안에 거북선이 떠있어 한 컷 촬영한 후 충무김밥 3인분 (시레기 국물 끊이느라 조금 지체) 산 후,
출발하는데 이상하게 배가 고파 아침밥 대신으로 먹으려고 가져온 떡으로 차안에서 대충 허기를 면하고
사천휴게소에서 들러 콩나물해장라면 한 그릇을 시켜 둘이서 나누어 먹으니 비로소 허기가 달아난다.
이번으로 3주 연속으로 하동으로 오는 셈이라 들머리인 외둔마을로 오는 길은 식은 죽먹기보다 쉬워
단숨에 평사리 최참판댁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초행길인 난테아우는 어디쯤 오는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난테아우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길을 가르쳐 주니 금새 주차장으로 올라온다.
난테 아우와 반가운 해후를 마친 후 최참판댁구경은 산행후에 보기로 하고
한산사 가는 길을 동네분께 물어보니 최참판댁 가는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물레방아길 쪽(左)으로 가면된다고 한다. 오늘따라 산행전 일기예보를 보지 않았는데
날씨가 우중충 한것이 아무래도 비를 만날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일기예보에 경남에는 비가 안 온다는 아내의 말에 안도하며 한산사로 향한다.
한산사 가는 길 어느 농가에 튼실하게 열려있는
청매실도 구경하면서 셋이서 휘적휘적 걸어가는데..
앞에서 오시던 웬 할머니.. 밑도 끝도 없이 대뜸
-"그래 입고선 틀릿다."
"???"
영문을 몰라 어리뚱한 세 사람에게 할머니 다시
-"옷 그리 입고서는 산에 몬간다 아이가."
과부고쟁이(난테아우 표현에 의하면) 길이 만한 착 달라붙는
난테아우의 반바지를 보시며 나무라시는 할머니 말씀이었다. ㅋㅋ
잠시 후 도착한 소박한 한산사에는 연등들이 나열되어 있고
보살들은 음식을 만드는지 불청객인 산객의 방문에는 관심조차 없다.
이젠 수험생도 없어서 그런지 부처님께는 관심조차 없고
석불옆에 키큰 종려수 이야기만을 주고 받으며 본격 산길로 접어든다.
날씨가 비가오려는지 후덥지근한 것이 땀이 몹시 많이 난다.
올라가다가 떡과 오렌지로 얼요기를 하고..
고소성 (姑蘇城)
하동군(河東郡) 악양면(岳陽面) 평사리(平沙里)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산성.
높이 300m 정도의 능선을 따라 5각형모양으로 쌓은 산복식석성(山腹式石城)으로,
둘레는 약 1500m이다. 성벽은 직사각형 가공석과 자연석으로
바닥나비 6m, 윗나비 2m, 높이 4∼5m의 단면 사다리꼴로 견고하게 축조하였다.
《하동군읍지(河東郡邑誌)》에 따르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리적 위치를 이용,
군사적 목적으로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남쪽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사적 제151호.
이곳에도 통천문이 있다.
배낭을 벗고 통과하셨다는 이영진 말씀에
한 사람식 테스트해 해보기로 하니
세 사람 모두 배낭을 벗지 않아도 통과가 된다. ^^
마지막으로 통과한 난테아우가 할리웃액션을 좀 취하긴 했지만.. ㅋㅋ
"형님! 이 소나무들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그래서 소나무를 쳐다보니 소나무가 두 그루가 길을 막고 서 있는데
미치 사이좋은 부부소나무처럼 생긴 Y字모양의 소나무들인데
히어리님의 산행기에서 보았다는 난테아우의 말씀이다.
그리고 보니 예습을 많이 해온 듯
나이 42살 난테아우가 모자를 쓰니 24살로 보인다며
엄청난 거짓말을 스스럼 없이 하고 있는 아내다. ㅋㅋ
신선봉 오름길에는 꽃송이가 큼지막한 철쭉(황매산及)이 활짝 피어있어
눈길을 끄는데 겨우 한 그루라 아쉽기 짝이 없다.
신선봉은 멀리서도 볼품없이 생겼더니 돌무더기 몇 개가 고작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높은 봉우리는 신선대다.
운무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가를 반복한다.
각시붓꽃이다. 이꽃을 처음 본 솔나루님께서는
어찌나 기쁜지 "심봤다!"를 외치셨다고 한다. 물론 수 년전의 이야기겠지만
오늘 우리가 본 각시붓꽃이 바로 "심봤다!'를 외칠 수 있을 만치 싱그러웠다.
이렇게 싱그러운 각시붓꽃은난생 처음 본다.
모두들 탄성을 자아낸다. 화!!!!!!!!!
지지난주에 올랐던 칠성~분지봉 라인이다.
분지봉 오름길엔 고사리와 각시붓꽃 세상이었고
분지봉엔 노랑제비꽃과 얼레지가 많았다.
먹점재로 떨어졌다가 힘들게 오른 구재봉엔 멋진 암봉과
양면에 뜻이 다르게 새겨진 정상석이 있었으며..
삼화실재로 떨어졌다가 다시 고도를 높힌 등로엔
무수히 떨어진 소나무가지 잔해가 널려 있었고..
고생끝에 오른 칠성봉 정상에서 우리가 본 것은
뜻밖에도 '히어리'아우의 노란 리본이었고..
칠성봉에서 동점재로 내려오는 하산길에 들은
귀신 울음소리을 방불케하는 울부짓는 바람소리는
지금도 귀에 쟁쟁한데..
성제봉 능선은 산거북이아우 말씀대로 품격이 다르다.
아름다운 분재 소나무와 멋진 암릉이 이어지고
암봉에 앙징스럽게 피어있는 작은 철쭉은
아리따운 처녀의 머리에 꽂은 꽃송이를 보는듯 신선하다.
난테아우 말씀대로 등로는 가파른 암릉에는 쇠사다리가 걸려있고
위험구간은 우회로가 좋아 가족 산행에 적격인 명품 구간이
줄줄이 사탕으로 이어진다. (컨닝 ^^)
11시 01분.
가파른 너덜 오름길을 올라서니 신선대인가 보다.
신선대에 올라가 희미한 조망을 한번 바라보니
거침없다는 조망은 안타깝게도 운무에 가려 실망스럽다.
다시 구름다리를 건넌다. 구름다리는 상상했던 것 보다는 작아
긴장도가 떨어지는데 막상 다리를 건너니
흔들흔들 하는 것이 제법 아찔하다.
구름다리를 건너면 긴 철계단이 이어진다.
철계단을 내려오면서 서쪽 산사면을 바라보니
연둣빛 신록이 황홀감에 빠질 정도로 아름답다.
다시 오른 암봉에서 바라보는 신선대는
운무가 덮혔다가 일순간에 사라진다.
아직 만개하지 않은 철쭉 군락지를 지나면서부터
가는봄을 조상하는 지리산의 슬픈 눈물이 기여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헬기장이 좋은 1054봉에 오른지만 슬픔에 겨운 지리산은 조망을 허락하지 않고
완만한 성제봉 오름길엔 슬픔에 싸인 구름만이 가득하다. (난테아우의 산행기에서..^^)
헬기장에서 난테아우를 첨병으로 먼저 보내고
그틈을 이용해 우리부부 볼일좀 본 후..^^
헬기장을 지나 걸어가는 등로는 한마디로 비단길이다.
평지나 다름없는 굴참나무길이 죽 이어진 후 다시 성제봉 오름길인데
산객 여러명이(특히 뇨자분들이..) 내려오시면서
난테아우의 말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곧이곧대로 전달해 준다.
"위에서 반바지 입은 놈이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 달랍니다." 하고..
한 뇨자면 말을 안해요. 내려오는 뇨자들 모두 한결같이 말하니
난테아우! 너무 뇨자들에게 인기 있는거 아니우? 흐흐흐..
우리 경상도는 형님을 성님이라 부르기도 한다.
특히 나이가 많은 형님을 좀 더 친숙하고 존경하는 의미가 담긴 것이
바로 성님이다. 성제봉은 형제봉의 경상도 사투리다.
그렇다면 성스러운 황제란 '聖帝' 는 얼토당토 않는 말이다.
달리 한자로 쓸 수 없어 부득이 이 한자를 쓴 모양인데
이곳만은 한글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점점 시계는 흐려져 이미 조망은 포기한 상태지만
성제봉 정상에 오른 우린 즐겁기만 하다. ^^
정상을 내려서 또 다른 성제봉에 오른다.
이름 그대로 성제봉이니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성제(형제)처럼 솟아 있다.
먼저 오른 성제봉이 1,115m 이고 윗쪽의 또다른 성제봉은 1,107m이니
아랫쪽의 봉우리가 "성(형)"이고 윗쪽 봉우리가 "제"인 셈이다.
표지석은 아랫쪽의 봉우리에만 있고 윗쪽에는 국기게양대가 서 있다.
회남재는 7,7km의 거리다. (이영진님의 산행기에서..)
12시 50분.
활공장이다. 임도길엔 진주00교회 승합차가 눈에 띈다.
이제 운무는 더욱 자욱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 가야할 등로를 몰라 잠시 헤맨 후
2시 방향으로 내려가니 길은 산죽길과 우거진 잡목을 지나는 내림길이다.
잠시 후 임도가 나타난다. (원강재 도착)
원강재에 이르자 그동안 반소매로 진행했던
난테아우가 옷을 갈아 입노라며 고개를 돌려달라고 한다.
그래서 아랫도리도 갈아입는 줄 알았더니 웃도리만 갈아 입는다나
웃도리 갈아입는 것을 가지고 내외를 하다니 아내와 나 한번 웃고.. ㅋㅋ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어느지점에서 임도는 끝이 나고 다시 산길로 이어지는데
이제부터 산길은 본격적으로 산죽길이 이어지면서 험로가 이어진다.
물먹은 산죽길을 선등하는 나의 바지는 1분도 안되 흠뻑 젖어 버린다.
아니! 어느분은 산죽길이 그리도 좋다고 하더니
운무속의 산죽은 한마디로 넘버 텐이었다.
이 지점에서는 좌측 내림길이 나타나는데
아마도 화개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더 가서 먹자는 난테아우의 의견에 따라
다시 산죽길을 헤치며 올라가는데 나오라는 휴식처는 안 나오고
산죽만 줄줄이 사탕으로 이어지고 한 술 더 떠서
황금능선급 산죽터널도 나타나니..
참말로 죽을 지경이다. 끙끙..
"암릉의 거사봉에 오르니 누군가 작은 돌무더기를 쌓고 그 중앙에 막대기를 꽂아 놓았다."
(이영진님의 산행기속에서..)
하지만 오늘은 운무속이라 어디가 어딘지 구별을 할 수가 없고
힘들게 암봉에 오른다 한들 시계제로 인데 구태여 힘들게 암봉을 오를 이유도 없다. (거사봉을 놓침.)
끝없이 이어지는 산죽길이라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두 사람 정도 앉을 만한 작은 바위에서 점심으로 싸온 충무김밥을 펼친다.
대수롭지 않게 가져온 뚱보할매 김밥집의 따뜻한 시레기국물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다.
하지만 추워서 난테아우 말씀대로 오디 따먹은 아이들 입술마냥 시퍼렇다.
덜덜덜..떨면서 충무김밥 3인분을 해치운다.
거사봉을 지나자 삼신봉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시계제로 운무속이라 여기가 어디쯤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우측길을 접어드니 잠시 후
질주산악회의 작은 표시기가 보여 시루봉가는길임을 알려준다.
(지지난주 칠성봉에서 질주산악회의 종주표시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반가운 돌탑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시루봉이다. ^^
시루봉을 지나면 길은 왼편으로 급전직하 떨어진다.
하지만 길은 다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존경하는 광주 산꾼 백계남님 리본이 보이는 암봉에 이른다.
지지난주 신성리에서 바라본 칼날능선 부근이
이곳이 아닌가 하며 지레짐작을 해 본다.
내려온 후 바라본 거대한 암봉은 운무속이라
더욱 신비스러워 보인다. 포즈좀 잘 취하고 오올치!!
사실 저 두사람의 포즈는 나의 연출에 의해
이루어진 인위적인 포즈다. ㅋㅋ
15시 15분. 산죽길..
우측으로 길 같은 것이 보여 혹시나 싶어 살펴보니
리본이 하나도 없는 것이 길이 아닌가 벼..
아~~ 정말 지긋지긋한 산죽길이다.
산죽 좋아하는 산사랑방님께 이 코스를 꼭 추천하고 싶다. 특히 물먹은 산죽길을..
산사랑방님 같은 백여시(?)가 비오는 날에 산죽길 탈지 모르지만.. ㅋㅋ
애시당초 계획은 1차목표가 회남재이고
여력이 있으면 칠성봉까지 가려고 했는데
불청객 바람에 비에 젖은 생쥐꼴로 칠성봉까지 가는 것은 무리다.
난테아우도 여기서 회남재까지만 가자고 한다.
내심 회남재까지를 바랬던 우린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짐짓 끝까지 가야 한다고 난테아우에게 떼를 쓴다. ㅋㅋ
16시 00분.
중계탑이 있는 봉우리에서 회남재까지는 계속되는 내림길.
내림길엔 활짝 핀 철쭉이 군데 군데 피어있어 얼 눈요기 하고..
한 15분 내려오니 회남재가 나타난다. (고도 740M정도)
회남재는 지리산의 입산 거점으서 이용이 가장 빈번한 경로중 하나이며
지대가 험준하여 정규전의 형태보다는 매복중 습격하는 게릴라 전을 벌인 곳으로..
한국전쟁 당시에 산청쪽에서 보급 활동을 하던 빨치산들이 청암면 묵계리 삼거리와
회남재로 넘나들어 토벌대와의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라 적혀있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도 되지만 우측 급경사길에 국제신문의 노란색리본이 보인다.
리본이 새것인것으로 봐서 얼마전에 달아놓은 리본이다.
머지않아 국제신문 근교산에 이 코스가 소개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국제신문 노란리본이 달린 우측 급경사 길로 쏟아져 내려간다.
국제신문 리본을 따라 내려오니
급경사에다가 거친 등로는(등로라 할것도 없지만) 끊어질듯 이어진다.
이 거친 하산길을 내려가는데 어디선가 꽃향기가 진동하는데..
아~~ 이곳은 바로 야생화 천국이다!
하산길은 때묻지 않은 야생화 천국길이라
접사사진 찍느라 세월아~ 네월아~ 하며 내려간다.
난테아우는 아직까지 금낭화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산에서 금낭화를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소박한 난테아우)
한참 벌깨덩굴을 찍느라 낮은포복을 하고 있는데
저 아래서 난테아우의 외침이 들린다.
"심봣심더! 형님! 퍼뜩 내려오이소!!"
그래서 무슨 산삼이나 봤는지 놀라 쫓아 내려가니
난테아우가 그토록 보고파 했던 바로 금낭화였다.
너무기뻐 난테아운 금낭화앞에서 기념촬영도 하고 (사진 게재는 안함.)
인공으로 재배하는 고로쇠나무 단지를 지나니 아스콘 도로가 나타나고
사실상의 산행은 끝이 난다. 하지만 아스팔트 도로와 만나는 동매마을까지는
근 50분이 걸렸다. (바로 택시를 부를걸 후회함..)
결국 동매마을에서 택시를 불렀는데 택시 부르자마자
승합차 한대 내려가면서 "태워드릴까요?" 하니 고맙지만 사양하고. 흐미..
하필이면 악양택시가 아닌 하동택시를 불러 별 수 없이 따따불요금을 내고
최참판댁에 도착하여 평사리상회에서 뒷풀이 동동주 한잔하는데
기어코 소나기가 쏟아진다.
이 비를 맞으면서 칠성봉으로 올랐다면
지금쯤 죽을 고생을 하며 오름길을 올라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산욕심을 버리고 회남재로 하산한 것이 참으로 천만다행으로 여겨진다.
평사리상회에서 마신 동동주는
예상 외로 도수가 쎘던가보다
딱 석잔 밖에 안 마셨는데
차 핸들이 가벼워지니 말이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