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이야기..
장모님께서 퇴원하셨지만 격주로 문안인사 드리러 가는 것이 어느덧 일상사가 되었다.
지난 주 부산 다녀왔기에 이번 주는 산행을 떠나는 날이라 소풍가는 아이처럼 마음이 설레는데
막상 닥치니 어디로 가야할지 즐거운 고민에 빠진다. 모처럼 가는 산행 허접산 가는 것도 그래서 지리산
아니면 덕유산으로 가기로 하는데 지리산은 하산루트(엥골)가 부담스러워 덕유산으로 낙점한다.
막상 덕유산으로 정했지만 이번에는 코스가 또 문제다. 산님들로 북적이는 북덕유산 보다
남성미가 넘쳐흐르는 개골산 남덕유산이 여러모로 좋을듯 했다. 문제는 어디로 어떻게 오르느냐는 것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토옥동 계곡을 원점회귀하는 코스도 생각했으나 눈덮힌 겨울산 비등을 오르내리는 것이
자신이 없어 (여름철 산행으로 찜함.) 결국 거창 황점을 기점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타기로 한다.
마침 한국의산하 이성우님의 산행지도를 보면 월성계곡에서 영각재로 선이 연결되어 있어
이리(영각재)로 올라 남덕유산 찍고 삿갓골재대피소에서 황점으로 내려오면 멋진 코스일 것 같았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7년 전에 실린 한 네티즌의 산행기를 보는 순간 겨울철 코스로는 죽음(?)이라는 것을 눈치 챈다.
(그분의 산행기에는 2시간의 사투 끝에 영각재로 올라섰다고 적혀있었다.) -- 어떤 때는 모르는 것이 약인데..
5시에 알람이 울리고 5시 57분. 집을 나서는데 날씨가 전혀 춥지 않는 것이 마치 봄날씨 같다.
산청휴게소에서 해물순두부와 김치찌개로 아침을 때우고 서상IC로 빠져나오니 예상했던 대로 남덕유산은
눈으로 덮인 설산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눈의 량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아 조금 실망스럽다. 남령에서 바라보는
무소의 뿔 수리덤은 언제 봐도 멋있고 조심스럽게 거북이 운행을 하며 내려오니 월성계곡 들머리가 나타난다.
들머리 황점매표소에 도착하니 한무리의 산님들이 내려온다.
왜? 도로 내려오시냐고 놀라 물으니 들머리를 잘못 알았단다.
그들은 모두 삿갓골재 들머리로 떠나고 덕분에 우리 부부만의
호젓한 산행이 이루어 진다. 고도계를 보니 640m를 가리킨다.

황점매표소 입구 국립공원 덕유산 안내도 → 사진에 대고 클릭! 하면 큰 사진 나타난다.
뽀드득, 뽀드득,
참 오랜만에 뽀드득 소리를 들으며 산판길을 걷는다.
남령으로 이어지는 등날이다.
이곳에서 저 등날 치고 올라가면 되겠는데
하지만 마음뿐, 몸은 편한 산판길로 가고 있다.
첫 번째 나무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이 아름답다.
남덕유산과 움푹 들어간 월성재 그리고 삿갓봉으로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이정표가 1.2km황점마을-월성재2.6km-남덕유산4.0km을 가리킨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지만 이미 러셀이 잘 되어 있어 슬슬동풍길이다.
이정표 월성재1.8km
이 지점이 바른골(영각재) 갈림길이다.
초입은 전방에 보이는 출입금지표시판 이다.
한번 들어가서 동태나 살펴보자.
산사태 발생지역 (출입금지) 표지판
들어가서 보니 전혀 러셀이되어 있지 않은 심설계곡이다.
도저히 헤치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깨끗하게 단념한다.
바른골 갈림길 지나 두 번째 나무다리
두 번째 나무다리를 지나면 나무계단 길이 나타나고
나무계단길이 끝나면 본격 된비알이 이어져 아이젠을 착용한다.
된비알 오름길에서 바라본 영각재
저기 허옇게 보이는 사태지역을 올라야 영각재다.
과연 우리가 저 눈덮인 바른골을 갈 수 있었을까?
자꾸만 바른골로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름길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운해
뒤를 바라보니 운해인지 운무가 자욱하게 깔린 것이 참으로 장관이다.
어서 빨리 올라가서 저 장관을 담아야 할 텐데 마음만 급하다.
오름길에서 내가 아내에게 말한다.
"산이 조치요?" 하고
그러자 아내는
"산이 조아요" 한다.
산이 왜 이렇게 점점 좋아지는지.. ^^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는 아내
산행 1시간 54분 만에 올라선 월성재
월성재에 오르기 전 이름모를 작은 새가 제일 먼저 객을 반긴다.
근접거리에서 새를 담았지만 광각렌즈라 실리지 못함이 안타깝다.
올라선 월성재에는 동쪽(황점마을 방향)으로 황홀한 조망이 터지는데
수도산, 단지봉, 가야산, 의상봉, 장군봉, 비계산, 두무산, 오도산, 미녀산, 숙성산까지의 산군과
양각산, 흰대미산, 보해산, 금귀산, 치우령(아홉산), 현성산, 금원산 등의 산군이 뚜렷하게 보인다.
월성재에서 바라본 황점마을 방향 조망
월성재에서 바라본 황점마을 방향 조망
조망을 즐긴 후 아내의 의사를 타진한다. (찬바람이 불어 다소 추움)
여기서 아내가 그냥 삿갓봉으로 가자고 하면 삿갓봉으로 갈 수도 있었다.
아내의 대답은 아직 시간이 충분하니 남덕유산을 찍고 오자고 한다.
그래야 내가 쉼에 찬다나. ^^
월성재에서 남덕유산으로 오르면서 바라본 삿갓봉 서릉
이곳에서 바라보는 삿갓봉에서 이어지는 서릉도 꽤 길어 보인다.
토옥동계곡에서 이곳으로 올라 삿갓봉 찍고 저 서릉으로 하산하면
멋진 원점회귀 코스가 될것 같다. 이젠 산을 보면 이런 연구만 나온다.
남덕유산 오름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홀한 조망
저기 보이는 봉우리 하나 하나에 우리 부부의 땀과 추억이 서려 있다.
꿈의 종주인 수도~가야종주, 거창의 용아릉을 찾아 헤맨 금귀산~보해산
어느 비오는 날에 오른 시코봉~양각산~흰대미산, 개미에게 뭐 물린 두무산
산하가족들과의 첫 만남의 장소인 의상봉, 섹시한 미녀와 함께한 미녀산~오도산 등등..
아직도 진행중인 나의 산행여행의 종착역은 과연 어디일까?
이곳에서 빵과 유자차로 간단한 얼요기를 했다.
실로 감탄사가 절로 나는 황홀한 조망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군을 추천하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이곳 산군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다.
위 사진을 광각으로 담아 보았다.
조망터에서 바라본 남덕유산
어서 빨리 올라 남덕유산에서 바라본 지리산과 전라도의 산군을 보고 싶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말인가!
점점 날씨가 변하더니 헬기장에 오르니
급기야 싸락눈까지 내리기 시작한다.
세상에! 금방 이렇게 급변할 수가!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남덕유산 아래 헬기장
이미 약삭빠른(?) 아내는 남덕유산 등정을 포기한지 오래다.
다시 빽해야 되니 굳이 힘들게 남덕유산에 오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내를 뒤로 하고 남덕유산 정상에 오르니 황홀한 조망 대신
보이는 것은 영각사에서 올라온 우글거리는 단체 산님들 뿐이다.
조망은 형편 없고 날아오는 싸락눈만 얼굴을 세차게 때린다.
꺼내 보지도 못하고 무용지물이 된 배낭속 망원렌즈가
바보 주인을 원망한다. ㅠㅠ
싸락눈이 내리는 남덕유산 정상에서 바라본 중봉
그래도 남덕유에 올랐다는 전리품은 있어야 했다.
싸락눈이 내리는 남덕유산 정상에서 바라본 삿갓봉과 무룡산
구름이 내려앉아 무룡산 이후는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싸락눈이 내리는 남덕유산에서 바라본 서봉
이곳에서 전라도의 산군을 혜찰하려고 했는데..
남덕유산 내림길에서 바라본 눈덮인 사면
저렇게 눈이 많이 쌓였는데 영각재로 오른다는 것은
한마디로 자살행위다. 아마도 몇 십미터 진행하다가
곧 포기하고 되돌아 왔을 것 같다.
월성재로 빽하면서 바라본 서봉(장수덕유산)
남덕유산의 단체산님들은 대부분 저리로 향했다.
2시간 5분 만에 다시 돌아온 월성재
아까 2시간 전에는 산님 한 두 사람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제법 많은 산님들로 북적거린다.
뒤돌아 본 월성재와 서봉(남덕유산)과 동봉(장수덕유산)
여기서 바라보니 월성재에서 남덕유산 오르는 길이 무척 가팔라 보인다.
남덕유산 정상은 좌측의 뾰족한 봉우리가 아닌 그너머로 보이는 둥그스럼한 봉우리다.
전망 봉우리에서 바라본 가야할 삿갓봉
명당장소인 전망 봉우리에서 그의 아내는 라면을 끓이는
불을 쬐고 있고 막간을 이용하여 그는 사진을 찍는다.
그 막간을 이용하는 나는 그와 그의 아내를 담는다.
물론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폭설로 덮인 등로에서..
여기서 조금 더 전진하면 허당이니
추락의 위협이 도사리는 곳이다.
하지만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등로에서 바라본 바른골과 남덕유산
당겨 본 바른골의 사태지역
Y자 형태의 사태지역 오른쪽 끝이 영각재다.
놓친 고기는 언제나 크고 미답지는 언제나 신비롭다.
아쉬움과 안도감이 뒤섞인 심정으로 다시 (광각으로) 바라본다.
삿갓봉 가는 길에 본 귀여븐앙마님 부부 리본
이런 눈 덮인 덕유주릉을 육십령에서 삼공리까지 두꺼비
파리 채듯 단숨에 꿀꺽 삼킨 무서븐앙마님 부부의 리본이
내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에 달아서 그런지 아주 싱싱하다.
삿갓봉 가는 길
우측 삼각형 형태의 봉우리가 삿갓봉이려니 했는데
삿갓봉은 우측 두 번째 희미하게 보이는 봉우리다.
오름길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능선
졸지에 앉은뱅이가 된 이정표
스틱을 찔러 눈의 깊이를 측정해 보는 아내
자루 끝까지 들어가고도 아직 여유가 있다.
이런 길을 러셀해 놓은 선답자가 참 고맙다.
인간은 다 함께 살아야 하는 동물이 틀림이 없고
나뭇가지에 떡처럼 붙어 있는 눈도 좋은 눈요깃감이다.
삿갓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과 남덕유산
20-30 산악회 회원들이 점령하고 있는 삿갓봉
삿갓봉에 올라오니 젊은 산님들이 정상을 장악하고 있다.
자식 같은 젊은 산님들께 정상석을 양보하지만
대신 공짜 젊은 모델을 얻는다.
참 물 좋은 삿갓봉 정상이다.
삿갓봉 정상에서 바라본 무룡산
보이지는 않지만 푹꺼진 곳이 삿갓골재다.
농으로 "우리 무룡산 찍고 올까?" 하니
"당신이나 찍고 오소 나는 기다릴테니" -예상했던 답변이다. ㅋ
삿갓봉 내림길에서 삿갓봉 서릉으로 연결되는 등로를 확인한다.
이 서릉은 많이 애용하는지 러셀이 되어 있다.
흠~~ 염화시중의 미소를 짓는다. ^^
삿갓봉 지나 삿갓골재 가는 길
삿갓봉 지나 삿갓골재 가는 길
삿갓골재 가는 길에서 바라본 삿갓봉의 동릉
풍력발전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삿갓골재 대피소
몇 년 전에만 해도 없었던 풍력발전기
삿갓골재 대피소에 오니 전에는 없었던 풍력 발전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고 산님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점심을 자시고 있다. 우리도 여기서 컵라면으로 허기를 면하는데
우연히 한 전라도 산님이 말동무를 걸어온다. 나이는 49세 용띠라는데
칠성계곡에서 동엽령으로 올라 왔단다. (칠연계곡을 칠성계곡이라 함)
곶감 하나와 밀감을 건네자 화답으로 사과 하나를 주는데 이 산님의 말씀이 가관이다.
육십령까지 가서 걸어서 원점회귀한다고 기염을 토하는데 (야간 산행도 불사한단다.)
육십령까지 가는 것도 장난이 아닌데 안성매표소까지 걸어서 갈것이라고 한다.
그러지 마시고 월성재에서 토옥동계곡으로 하산할 것을 권유하지만
술 취한 이 산님의 표정은 마이동풍 우이독경이다.
그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우리 먼저 황점으로의 하산길을 내려간다.
2003년 12월 28일 아들과 셋이서 올랐던 황점으로의 하산루트는 나무계단길만 생각나고
다른 것은 모두 생소하다. 제법 급경사라 이리로 올라도 참 힘들었겠구나 싶다.
그리고 보니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구나!
바로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의 길] 덕유종주길에서
이 삿갓골재 대피소에서 토끼잠을 주무시던 윤도균 형님의 얼굴이다.
그 시절 그 사람들은 모두 다 떠나고 없지만 윤도균 형님만 유일하게
아직도 나와의 끈끈한 연을 이어가고 있다.
겨울 삿갓골은 별 볼것이 없다. 세 번째 나무계단이 보이는 풍경이다.
하늘로 쭉쭉 뻗은 낙엽송이 나타나면 거의 다 내려온 지점이다.
뒤 돌아본 삿갓봉과 무룡산
가운데 움푹 들어간 곳은 삿갓골재 대피소다.
황점마을에서 바라본 수리덤과 남령 그리고 남덕유산 동릉
황점마을로 내려오니 산악회 버스들과 많은 산님들이 보인다.
늘 히치를 하던 입장에서 한 산님을 픽업하여 영각재에 떨어뜨려 주니
좀 묘한 느낌이지만 그동안에 입은 신세를 조금이나마 갚은 느낌이다. 이 산님이
권유하는 '딸부자집' 이라는 서상의 한 식당에서 추어탕으로 비교적 이른 저녁을 먹고
서상IC를 빠져 나오는데.. 갑자기
함양, 지곡 / 장수분기점, 무주 두 갈래 선택 길이 나타난다.
장난 삼아 아내에게 어디? 하고 급선택권을 주니 아내의 대답이 걸작이다.
장수분기점으로 가야지요. 한다. -그럴 줄 알고 물어 봤다. ^^
그 바람에 또 한번 웃음 보따리가 터진다. ㅋㅋㅋㅋ
<End>
남덕유산 오름길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