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일주 여행 Day1,2
북유럽 일주 여행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
2018.9.20~2018.9.27 (6박 8일) 노랑풍선
Day1-9월 20일(목)
Day2-9월 21일(금)
(인천~헬싱키~코펜하겐~말뫼)
-6박 8일 일정- *제1일(목) 인천-헬싱키-코펜하겐-말뫼(1박) *제2일(금) 말뫼-코펜하겐-D.F.D.S(2박) *제3일(토) D.F.D.S-오슬로-비올리(3박) *제4일(일) 비올리-게이랑에르-뵈이야-래르달(3박) *제5일(월) 래르달-플롬-오슬로-칼스타드(5박) *제6일(화) 칼스타드-스톡홀롬-바이킹라인(6박) *제7일(수) 바이킹라인-투르쿠-헬싱키 *제8일 헬싱키(기내박)-인천 |
첫날 이동궤적 (코펜하겐~말뫼)
인천공항에서 핀란드 헬싱키 반타공항까지는 약 9시간 정도 걸렸고 헬싱키 반타공항에서 코펜하겐 공항까지는 약 1시간 25분쯤 걸렸다.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하여 향한 곳은 코펜하겐 중심가에 있는 중식당이었고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왔던 길로 되돌아 나와 스웨덴 '말뫼' 라는 도시에서 숙박을 하였다.
가랑비가 내리고 있는 인천공항 (핀란드 항공기 AY0042기)
이번 북유럽 여행은 아내의 환갑을 축하하는 아들과 딸의 지원으로 가게 되었다. 여행 하루 전날 상경하여 고터옆 음식점에서 아들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다음날 5시 40분. 며느리와 딸의 배웅을 받으며 아들 집을 나와 (아들도 일찍 출근한다며 함께 나옴) 인천공항 T1에 도착,
공항에서 아침을 먹은 후 핀란드 항공기 AY0042기에 탑승했다. (보딩타임 9시 40분) AY0042기는 3-3-3-3렬 종대로 되어 있고 좌석 앞 포켓에는 생수 한 병씩이 꽂여있어 눈길을 끌었다. 10시 51분. 우리를 실은 핀란드 항공기 AY0042기는 가랑비가 내리는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약 9시간 비행이라 점심으론 비빔밥과 와인을, 저녁으론 잡채밥을 먹었다. 19시 50분. (헬싱키 시간 13시 50분) 맑은 날씨를 보이는 헬싱키 반타 공항에 착륙했다. 환승수속은 두 군데의 심사대를 통과했는데 첫 번째는 여권인식과 인물인식이었고 두 번째는 가방과 소지품 엑스레이 검사였다. 심사를 마친 후 셔틀로 이동하여 21시 18분 (헬싱키 시간 15시 18분) AY0955기에 탑승했다.
맑은 날씨의 헬싱키 반타공항과 대기 중인 갈아타야 할 AY0955기
AY0955기는 3-3-2열 종대로 되어 있는 중형 비행기였고 우리는 뒷줄에서 세 번째 좌석에 앉았다. 그런데 중국인 승객들이 많아 좀 소란스러웠다.
창가 좌석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아내가 창가에 앉았는데 뒤늦게 키가 큰 외국인 여인이 나타나 양해를 구해 외국인 여성을 복도에 착석하게 하였다. (외국인 여성도 복도가 편하니 흔쾌히 승락을 했다.)
22시 12분 (헬싱키 시간 16시 12분) AY0955기는 창공을 날았다. 이륙 직후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헬싱키 외곽 풍경이다.
이륙한지 10분 후 바다와 육지가 보인다. 잠시 후 음료 서빙을 해서 커피와 쥬스를 마셨다.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 도착 직전에 찍은 소금섬 (스웨덴 섬으로 자연섬)
덴마크 코펜하게 공항 도착 직전에 찍은 후추섬 (덴마크 섬으로 인공섬)
한국 시간 23시 37분. (코펜하겐 시간 16시 37분) 코펜하겐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 화장실에 들러 소변기에 서니 소변기가 높아 키 작은 사람은 까치발을 들어야 할 정도다. (헬싱키 공항도 그렇더니)
바깥으로 나와서 본 코펜하겐 공항
유럽연합이라 따로 입국수속은 없고 캐리어만 찾고 바로 밖으로 나오면 되니 참 편했다.
17시 25분. (이제부터는 코펜하겐 시간을 쓴다) 버스에 탑승한다. 버스안에서 가이드 박동오님이 이번 투어 인원은 35명이며 이 버스는 스웨덴 스톡홀름까지 운행한다고 한다. (기사 이름은 빅여) 이곳 덴마크에서 조심해야할 것은 소매치기와 자전거라고 하는데 가방은 되도록 앞쪽으로 맬 것과 자전거는 부딪히면 무조건 보행자 과실이란다. 그리고 물 한 병에 2유로인데 기사님에게 사는 것이 제일 싸다고 한다.
우리 일행을 태운 덴마크 버스는 공항을 빠져나와 코펜하겐 시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는 우리를 코펜하겐 시내 중심가에 내려주었다.
2층버스가 보여 찍었다.
저녁을 먹었던 중식당 '한궁주가'(漢宮酒家)는 공항에서 버스로 약 25분 거리에 있었다. 말이 저녁이지 한국시간 새벽 1시에 먹는 것이니 오늘은 하루 네 끼를 먹는 셈이다. 그러니 입맛이 있을리 만무했다. 네 가지 요리가 나왔는데 (돼지, 닭, 오징어, 야채) 돼지고기는 특유의 향신료 때문에 비위에 맞지 않았다. (저녁식사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식후 경
이곳 덴마크는 국회의원도 심지어 여왕까지 자전거를 타는 나라라고 한다. 덴마크 인구는 약 570만 명이며 그중 코펜하겐 인구는 60만 명이라 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18시 48분. 버스에 탑승하니 박동오 가이드께서 현지 가이드가 따로 있으니 본인의 호칭을 '박팀장'으로 불러 달라고 한다.그리고 여태 본인이 받는 최대 인원이 31명이었는데 이번에 기록을 갱신했다고 한다. (35명을 9개조로 나누었다. 우리부부는 1조)
해저터널을 빠져나와 덴마크 후추섬에서 달리고 있는 버스에서 찍은 사진
그런데 코펜하겐에서 숙박할 줄 알았는데 스웨덴에서 숙박을 한다고 해서 믿지 않았는데 아까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서해대교 처럼 생긴 다리를 건너면 스웨덴 땅이라는 것이다. 즉 덴마크에서 해저터널로 들어가서 인공섬인 후추섬을 지나면 외레순다리가 나타나고 다리를 건너면 스웨덴 땅이라는 것이다. 후추섬의 이름은 가까운 스웨덴의 자연섬인 소금섬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즉 성경에 나오는 소금과 후추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외레순다리를 건너면서 본 스웨덴 땅
검문하는 스웨덴 경찰
외레순 다리를 지나 톨게이트를 통과하니 스웨덴 경찰이 올라와 검문을 한다. 박팀장 말로는 옛날엔 검문을 안 했는데 요즘은 한다고 한다. 여권을 보여주는 의례적인 절차를 마치고 '말뫼의 눈물'로 유명한 말뫼시로 이동했다.
[말뫼의 눈물]
현대중공업이 2002년 사들인 대형 크레인의 별명이다. 스웨덴 말뫼 지역에 있던 조선업체 코쿰스가 문을 닫으면서 내놓은 것으로 '코쿰스 크레인'이라고도 한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해체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코쿰스크레인을 1달러에 구매해 울산으로 이전했다.
1973년 건조된 1,500톤급 갠트리 크레인이다. 갠트리 크레인은 컨테이너를 싣거나 내리는 작업을 하는 항만용 대형 크레인을 말한다. 문틀 모양으로 되어 있어 아래쪽으로 차량 등이 지나갈 수 있으며 레인 위를 주행할 수도 있다. 골리앗 크레인이라고 불리는 코쿰스 크레인은 말뫼에서만 약 70척 이상의 선박 건조에 쓰였으며 1997년 외레순 다리 공사에서 마지막으로 사용되었다.
코쿰스 크레인이 '말뫼의 눈물'로 불리게 된 것은 울산으로 옮길 때 말뫼 시민들의 반응 때문이다. 당시 수많은 말뫼 시민들이 항구에 나와 크레인의 해체와 운반을 지켜봤으며 스웨덴 국영방송은 장송곡과 함께 '말뫼가 울었다.' 는 내용의 뉴스를 보도했다. 20세기 초 스웨덴은 세계 조선업게의 선두였으며 그 중심에 있던 코쿰스의 파산과 크레인의 이동은 세계 조선산업계의 몰락으로 상징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다음백과에서 발췌-
말뫼 굿모닝 호텔 501호실
19시 32분. 말뫼 굿모닝 호텔에 도착, 기사에게 4유로 주고 물 두 병을 샀다. 엘리베이터 허용 무게가 300키로라 3명 이상은 함께 탈 수 없고 객실카드를 신용카드처럼 굵어야 이동이 가능해 처음 타는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501호실에 입실하니 비누와 샴푸만 있었다.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아무 것도 없는 호텔이었다. 그래도 와이파이 하나는 잘 터졌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프론트로 내려가 박팀장께 가이드비와 옵션비를 전달한 후 샤워하고 인터넷을 하는데 눈의 피로도가 극심해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21시 30분 (한국시간이면 새벽 3시 30분) 길었던 31시간의 하루를 마감했다.
다음날 (9월 21일 금요일)
둘째날 이동궤적 (말뫼~코펜하겐)
말뫼에서 외레순다리와 해저터널을 건너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들어와 코펜하겐 관광을 한 후 DFDS 선착장에서 크루즈를 탔다.
둘째날 코펜하겐 이동궤적
아마리엔보궁전~뉴하운 항구(운하투어)~계피온 분수대~시청사~인어공주~DFDS 순
화재 경보가 울려 모든 투숙객을 튀쳐나오게 만든 말뫼 굿모닝 호텔
3시 26분, 꿈에서 깨어나 어제의 일기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아내가 깨어 시간을 물어 3시 44분이라고 하니 그것 밖에 안되었냐며 말하더니 다시 잠을 잔다. 해외여행을 하면 항상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사람이 아내고 나는 그 반대다. 5시 44분. 딸이 남편이 있는 독일행 비행기를 탄다며 카톡이 들어와 잠시 카톡을 했다.
그런데 이곳은 해가 늦게 뜨는 모양이다. 6시 10분인데도 컴컴하다. 6시 11분. 갑자기 요란한 경고음이 울려 모두들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고 소방차 두 대가 긴급 출동하는 광경이 있었다. 이때 슬리퍼와 반소매 차림으로 황급히 나왔다가 쌀쌀한 날씨 바람에 추위에 떨었다. 착오인지 장난인지 몰라도 그 바람에 똥개 훈련 한번 잘했다. (뷔페에서 만난 박팀장왈' 누가 화재신고를 했단다.)
굿모닝 호텔 501호실 창가에서 바라본 말뫼의 아침
한바탕 화재소동 해프닝 후 7시 호텔뷔페에서 아침을 먹었는데 분위기도 좋고 음식 맛도 좋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남녀가 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중국인들이 싸우나? 했지만 발음을 들어보니 중국어가 아니고 듣보잡 언어다. 아마도 주방에서 싸우는 모양이다. 화재소동에다가 쌈질소동까지 오늘 참 다양하게 경험한다. 조식 후 501호실로 돌아오니 아침 해가 객실로 비친다. 일기예보에는 비 온다고 하더니 현재는 날씨만 좋다. 캐리어를 정리하고 약 1시간 동안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다시 외레순 다리를 건너 덴마크의 인공섬 후추섬을 달리는 버스
반대편 창밖 풍경
9시 47분. 버스에 내려 아마리엔보 궁전으로 향했다. 이때 덴마크 가이드 최영희씨가 나타나 수신기를 이용하여 이어폰으로 설명을 듣는데 발음을 잘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했다. 아마리엔보 궁전이 있는 광장은 팔각형으로 되어 있고 말 타는 동상(프레드릭 5세 동상)은 14년 만에 만들었다고 한다.
아마리엔보 궁전은 4채의 로코코양식의 덴마크 왕실 주거지로, 초기에는 귀족이 살았던 건물이었으나 왕궁화재 이후 현재까지 이곳을 덴마크 왕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리엔보 궁전의 근위병들
프레드릭 5세 동상 앞에서..
아마리엔보 궁전
아마리엔보 궁전 옆 프레데릭 교회 Frederick's Church 를 배경으로
뉴하운 항구에서
오후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에 아마리엔보 궁전 관광을 마치고 바로 뉴하운 항구로 왔다. 뉴하운 항구에서 출발하는 운하투어는 옵션(30유로)인데 35명 전원이 투어에 나섰다. 이번 여정에 옵션 3가지가 있었는데 뉴하운 운하투어, 스톡홀름시청사, 플롬산악열차탑승이 그것이다. 내가 볼 때 세 코스는 모두 필수코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옵션으로 선택하게 만든 것은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여행사의 얄팍한 상술 같았다.
좌측 두 번째 회색 지붕의 노란색 집이 안데르센이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맞은편에도 회색 지붕의 노란색 건물이 보이지만 안데르센이 살았던 집은 아니다 라고 한다.
운하투어를 하기 위해 유람선에 승선했다.
좌측 끝에서 두 번째 흰 건물도 안데르센이 살았던 집이라 한다. (최영희 가이드 말)
운하는 300년 전에 죄수를 이용하여 만들었으며
건물들이 색색으로 된 이유는 문패 대신 색깔로 구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야외 움악당이라고 한다.
인어공주 동상으로 오니 많은 관광객들이 보인다. 나중에 운하투어를 마치고 우리도 인어공주 보러 갔다. 유람선은 여기까지 왔다가 유턴한다.
프레데릭 교회와 아마리엔보 궁전
유람선에는 한국인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만원이었고 히잡을 쓴 젊은 여성이 유람선 가이드인데 다리 밑을 통과할 때는 '수구리' 라는 한국말을 하기도 했다.
다시 뉴하운 항구로 귀환했다. 이미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보았기에 덴마크 뉴하운은 큰 감흥은 없었지만 이번엔 아내와 함께 하니 좋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나홀로여서 많이 쓸쓸했는데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라 즐거웠다.)
운하투어를 마친 아내의 얼굴에는 만족감이 묻어있다.
운하투어를 마치고 버스로 돌아가면서 건너편 야외음악당을 배경으로
아마리엔보 궁전
우리 버스가 주차한 곳
다시 버스를 타고 계피온 분수대로 왔다.
계피온 분수대 The Gefion Fountain
1908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덴마크 선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 졌으며 분수대에 있는 4마리의 황소를 몰고 있는 여신은 계피온이다. 북유럽 전설 중에서 계피온이라는 여신이 스웨덴 왕과 내기를 했다고 한다. 소를 몰고 하루 동안 일구는 땅만큼 가지기로. 그래서 계피온 여신이 자신의 아들들을 소로 변신시켜 채찍질하고 있는 모습이 이 계피온 분수에 있는 동상이다.
계피온 분수대 옆에 있는 성 알반스 안겔리칸 교회 St Alban's Anglican Church
계피온 분수대에서 가이드 최영희시가 내 사진을 찍어 주셨는데 (오줌을 발사하는 포즈) 마음에 들지 않아 휴지통에 버렸다. 이곳에는 소매치기가 많아 최영희씨가 "똥파리 떴다." 하면 소매치기들이 떴다는 것인데 다행스럽게도 똥파리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계피온 분수대 보고나서 점심먹으러간 식당이다. "델라벨라' 이 식당은 코펜하겐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당으로 건립하는데 8년이 걸렸다고 한다.
델라벨라 식당에서 바라본 바깥풍경
이 나라는 자전거를 얼마나 많이 타던지 자전거 전용도로는 물론이고 자전거 신호등도 따로 있었다. 우선 순위는 차도-자전거도로-인도 순이다. 그래서 자전거에 받혀도 자전거 운전자 잘못이 아니고 보행자 잘못이라고 한다.
델라벨라 식당의 부페식
한창 점심을 먹고 있는데 박팀장왈' 지금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아니나다를까! 점심을 먹은 후 식당 밖으로 나오니 세찬 바람이 불어댄다. 일기예보에는 오후에 비가 온다더니 갑자기 태풍이 올라 온다니 이 무신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란 말인가!
점심을 먹고 나서 코펜하겐 시청사로 향했다.
코펜하겐 시청사와 안데르센 거리
코펜하겐 시청사 앞에서
코펜하겐 시청사 광장과 주변 건물들
코펜하겐 시청사 광장의 벼룩시장,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옷들이 날아갈 판이다.
코펜하겐 시청사 옆 안데르센 동상에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
미운 오리세끼, 성냥팔이 소녀, 백조 왕자, 눈의 여왕, 벌거숭이 임금님, 인어공주, 이 동화들은 아동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사랑 받고 있는 안데르센의 작품들이다. 안데르센은 기존의 민화적, 교훈적요소가 강했던 동화 창작 방식에서 벗어나 불행하고 소외된 계층을 휴머니즘적인 시각에서 다루고, 단순한 이야기 구조에서 탈피해 일상적인 구어와 관용구를 과감히 도입하는 등 동화 창작 문야에 있어 혁신을 일으킨 작가이다. 동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소설가이자 시인이기도 하다. -다음백과에서 발췌-
안데르센 동상 맞은편에 티볼리라는 간판이 보이는데 티볼리는 한국에선 쌍용 자동차 이름이지만 이곳에선 어린이 공원이라 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마지막 코스인 인어공주 동상으로 향한다.
비 내리는 인어공주 동상 앞에서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서 동기를 얻어 1913년에 만든 약 80cm의 작은 동상이다. 우중 임에도 불구하고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빈다. 비도 오고 해서 얼른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하는 말 "우리도 참 출세했다. 인어공주도 다 보고." 하며 웃었지만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 인어공주와의 만남은 너무나 짧은 시간에 끝났다. 다시는 못 올 길인데..
우중의 DFDS
14시 55분. 비가 내리는 와중에 버스에 내려 DFDS를 타러갔다. 이때 캐리어는 버스에서 빼서 각자 끌고 갔다. (버스도 함께 DFDS에 승선하지만 버스는 맨 아래층에 주차하기 때문이다.)
DFDS 티켓
대합실에서 티켓을 각자 받았는데 이 티켓이 카드 역활을 했다. 객실 문 열 때도 쓰고, 쇼핑할 때도 쓰고, 식사할 때도 쓰였다. 종이 재질 같아 보이지만 의외로 질기고 단단했다. 이곳에서 최영희 가이드와의 이별이 있었다. 비록 짧은 인연이었지만 조용조용한 목소리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최영희 가이드는 박팀장이 본인도 모르는 별명이 있다며 가르쳐 주었는데 바로 '선비'였다. 그만큼 점잖다는 이야기다. 가이드 점잖으면 재미 없을 것 같은데..
5층 선실의 중앙 홀이다.
미로처럼 복잡한 복도다.
우리가 묵은 5331호실 화장실이다. 세면대 위 선반은 실패작 같았다. 세수할 때 얼굴을 앞으로 숙이기 힘들었다. 이 배에서 유일하게 잘못 만든 선반이다. 옆쪽에 설치하는 것이 옳았다.
5331호 침실 (아내의 머리 위에 또 하나의 침대가 있다. 현재는 접어놓은 상태로 내가 잤던 이층침대다.)
거대한 크루즈선이라 구조를 몰라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찾아 입실하니 공간이 매우 협소하여 캐리어 두 개가 들어가니 꽉 찼다. 캐리어 두 개를 펼치면 사람이 서 있는 공간도 없을 것 같은 약 2평 정도의 넓이다. 영화에서 보았던 그런 화려한 크루즈 여행은 결코 아닌 것이다. (물론 돈 많이 내는 일등실은 창문도 있고 바다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지만) 대충 행장을 수습한 후 객실을 빠져나와 DFDS 탐색전에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으로 올라가니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 있어 들어가니 일행들이 몇 사람 보였다. 갑판은 쏟아지는 비 때문에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 11층 부터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걸어 내려가면서
8층에서 내려다본 7층
7층은 식당과 바 그리고 면세점이 있어 제일 볼거리가 많았다.
6층은 오픈 되어 있어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5층까지 걸어서 내려 갔는데 선미로 가는 바람에 잠시 길을헤매기도 했다. 다시 7층으로 올라가 중앙 계단을 찾으니 그제서야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자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가 생각났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헤매는데 이런 배가 거꾸로 뒤집히면 어떨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7층 바에서.. 이곳에서는 술도 마시고 카드놀이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외국인들이 많이 보였고 이곳을 통과하면 면세점이 나온다.
면세점 구경하기
16시 45분. 면세점 오픈하여 우의 각 각 한 벌씩과 맥주 등을 사서
5층 휴게실에서 맥주 한 캔 마시고 방으로 돌아오니 18시 25분. 시원하게 에어컨이 들어왔다. 이제는 비교적 쉽게 방을 찾아 올 수 있을 정도로 선박 구조에 익숙해 졌다. 익숙해 졌다지만 5층 우리 부분(船首) 만이다. 그런데 아까 맥주를 조금 얻어 마신 아내가 침대에 눕더니 곧 잠이 들었다. 배 엔진 소리가 자장가로 들리는 모양이다.
이곳은 비록 2평도 되지 않는 협소한 공간이지만 화장실도 있고 충전도 할 수 있다. 와이파이도 가능했지만 유료라 사양했다. 19시 30분. 배가 조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큰 배가 이정도로 흔들릴 정도면 파도가 센 모양이다. 2층 침대에 누워있으니 더 느낌이 강하게 왔다. 마치 술 취한 상태 같다. 과연 오늘밤 견딜 수 있을지 심히 걱정스럽다.
크루즈 여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동경이 사라졌다. 태풍이 분다는데 이렇게 운항을 해도 괜찮은 것인지?? 괜찮으니 운항했겠지.. 별 별 생각이 다 든다. 걱정이 되는지 잠에서 깨어난 아내가 구명복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난들 아나? 구명복은 객실에는 없다. 나중에 7층 식당에서 만난 박팀장에게 물으니 그도 몰랐다. 그도 승무원에게 물으니 6층 아웃코너에 구명정과 함께 있다고 하면서 입을 일이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란다.
7층 식당에서 박팀장에게 구명복을 물어보는 아내
흔들리는 DFDS 7층 식당에서
20시~21시 05분 7층 식당에서 뷔페식 저녁을 먹었다. 테이블에는 내일 아침 조식권이 놓여 있었고 한 장씩 챙기라며 박팀장이 말했다. 서비스로 제공 되는 것은 와인(레드, 화이트)과 맥주 그리고 생수 세 가지인데 아내는 레드와인을, 나는 맥주를 시키니 칼스버그 330ml 짜리 한 병을 주었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배가 흔들려 멀미를 하며 황급히 식당에서 튀어나가는 중국인 여인도 보였다. 함께 식사를 한 분은 서울에서 오신 제일 연세가 많은 분 내외였다. (따님도 의사, 사위도 의사라 손자를 돌보고 계신다 하심. 연세는 올해 일흔이시고 성함은 이동규님이다.)
홍합이 보였지만 안 가져 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무릎 관절에 좋은 초록잎홍합이라 많이 가져와 먹었는데 살이 탱글탱글한 것이 먹을만 했다. 21시 30분. 방으로 돌아와 양치질하고 대충 얼굴만 씻고 샤워는 생략했다. (내일 아침에 하려고 했는데 결국 못 함) 이층 침대에 누우니 21시 55분. 배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맥주 한 캔 더 마실까말까 고민하다가 그만 두었다.
잠시 후 소등했다.
1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