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기

중국 천계산/왕망령/만선산/태항산/통천협/팔천협 여행 Day1,2

통영사람 이수영 2018. 7. 27. 20:54

중국 천계산/왕망령/만선산/태항산/통천협/팔천협 여행

2018.7.19~2018.7.23 (4박 5일) 노랑풍선

 

 

Day-1 7월 19일(목)

Day-2 7월 20일(금)

(인천~제남~신향~천계산~만선산~임주)

 

-4박 5일-
*제1일(목) 인천-제남-신향(1박)
*제2일(금) 신향-천계산-왕망령-만선산-임주(2박)
*제3일(토) 임주-통천협-왕상암-임주(3박)
*제4일(일) 임주-팔천협-요성(4박)
*제5일(월) 요성-제남-인천

 

태항산맥(太行山脈)은

 

중국 산시성(山西省)과 허베이성(河北省) 그리고 허난성(河南省)의 경계에 있으며 남북 길이 약 600km, 동서 길이 250km에 걸쳐있는 험준한 산맥이며 중국의 그랜드캐넌으로 불린다. 화베이 평야와 황토 고원의 경계를 이루며 북쪽은 우타산맥, 남쪽은 휘산산맥과 이어진다. 충추전국시대부터 험준한 산세로 인해 군사적인 요충지로 여겨졌던 곳이며 치열한 전투가 많이 벌어졌는데 이곳만 방어하면 중원의 모든 지역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新)을 건국한 왕망과 후한을 일으킨 광무제가 이곳에서 싸웠으며 중국 팔로군과 일본군이 이곳에서 싸웠다. 산동성은 이곳 태항산맥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며 우공이산(愚公移山) 이라는 고사가 태항산을 두고 생겨난 말이다. 19세기에 들어와 철. 석탄 등의 막대한 양의 지하자원이 개발되면서 지동차 도로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이번 일정의 주요 도시

 

제남시는 산동성의 성도인데 왜 이곳이 태항산 여행의 기점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하남성의 성도인 정주시에 비해 엄청나게 멀었기에) 가이드 오영준의 말을 듣고서야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그 까닭인즉 비행기때문이었다. 제남은 하루에 4번 비행기가 뜨는 반면 정주는 주 3회 중국기만 뜨고 항공료도 무척 비싸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여행자들은 태항산맥을 가려면 제남시에 내려 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야 했던 것이다.

일정: 인천-제남-신향(1박)-임주(2박)-요성(1박)-제남-인천

 

산동성 제남시 '야오키안' 공항에서 하남성 신향시 '천복호텔' 까지의 이동 궤적 (오룩스맵 거리 410.15km)

 

KE847기에서 내려다본 중국 산동반도

 

이번 중국 태항산 여행은 오후 출발이라 하루 전에 상경하여 아들가족과 딸부부를 만나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고 아들집에서 하루밤 자고 다음날 아침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9시 58분. (미팅 약속시간은 10시 30분) 단체비자라 함께 줄을 지어 출입국을 해야 하는데 하필이면 내가 1번으로 당첨되었다. 귀찮은 일이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은 일행들의 나이를 알 수 있어 좋았다. 쓰윽 훑어보니 52년, 54년생 다음으로 서열 3위다. 1위가 아닌 것이 다행 ^^

 

우리가 탑승한 KE847기 좌석은 날개 앞에 있었다. 늘 날개 뒤였는데 아마도 1번이라 좀 앞좌석으로 배정을 했나 보다. 그런데 KE847기는 무척 작은 비행기였다. 3열씩 2열 종대로 되어 있고 가운데는 복도며 비즈니스석도 겨우 8석이다. 13시 52분. 우리를 태운 KE847기는 창공을 날았고 14시 5분. 기내식을 제공하는데 샌드위치다. 그동안 대한항공을 평가하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먹는 것 하나 만큼은 "먹여 죽이는 항공이다."며 말하곤 했는데 이번에 보니 꼭 그렇지 만은 아닌 것 같다. 맥주 한 캔과 샌드위치로 허접한 점심을 먹다보니 어느덧 중국 땅이 보이기 시작헀다.

 

15시 7분. (중국시간 14시 7분) 제남 야오키앙 공항에 착륙했다.

 

제남 야오키앙 공항의 하늘은 맑았고 트랩에서 내리니 지열로 인해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번호 순서대로 줄을 서서 입국 수속을 하는데 예전에 비해 입국절차가 까다로워 시간이 많이 걸렸다. (2018년 부터 외국인에 한해서는 지문을 강화하였다고 한다. 지문 열손가락 찍음)

 

까다로운 입국수속을 마치고 빠져 나오는데 한 시간 넘게 걸렸다. 야오키앙 공항 내부는 우리 인천공항에 비하면 좀 허접했다. 면세품 가게에는 별로 살 것도 없다. 아내 "이러니 중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얼마나 사고 싶겠어요." 한다. 화장실에 가면 그 나라 수준을 알 수 있는데 이곳 야오키앙 공항의 화장실은 화장실 냄새뿐만 아니라 담배연기 냄새까지 났다. 옛날 청나라가 아편 때문에 망했다면 지금의 중국은 담배 때문에 망할 것 같다.

 

15시 37분. (이제부터는 중국시간임) 25인승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참고로 이번 팀원은 총 14명이었는데 4명씩 3팀, 그리고 우리 부부다. 3팀은 홍천에서 오신 부부 네분, 대전에서 오신 부부와 딸 그리고 손위처남, 마지막은 서울며느리 두 젊은 부인과 포천 시이모 두 사람이었다. 각각의 인물 소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기로 하자.

 

버스 이동 중에 본인 소개를 하는 오영준 가이드

 

나이는 32살 현재 사는 곳은 청도(칭따오 맥주로 유명한) 고향은 연길이며 몸무게는 비밀인데 내가 볼 땐 최소 120키로는 족히 나갈 듯 보였다. 솔직히 첫인상은 별로였다. 너무 뚱하고 얼핏보면 건달패 똘마니 같기도 하고,, 근데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고 마지막 날 내가 평가한 오영준 가이드 평점은 백점 만점에 90점이었다.

 

생긴 것하고는 딴판으로 중국 역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었고 태항산맥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점 만점을 주지 않은 것은 몇 군데 힘든 곳에는 함께 가지 않고 "다녀오세요." 하며 요령을 피웠기 때문이다. 본인 말로는 "뭉쳐야 뜬다." 는 프로그램에서 가이드 섭외까지 받았는데 본인이 고사 했다고 한다. (얼굴 팔리기 싫어서)

 

암튼 같은 개그도 고 김형곤이 하면 재미가 있듯이 같은 말을 해도 영준이 말하면 재미가 있었다. 참고로 하나 소개하자면 여행의 철칙에서 "화장실 다녀오세요.' 하면 화장실 가고 쇼핑은 살까말까 망설이면 안 사는 것이 맞으며 '여보'은 여권과 보따리를 잘 챙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ㅋㅋㅋㅋ

 

16시 36분. 잘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거북이 운행을 했다. 일전에 중국 장가계 여행길에서 겪었던 악몽(고속도로 추돌 사고로 인해 무려 3시간 43분 동안 고속도로에서 발이 묶였던 적이 있음)이 되살아나면서 사고임을 직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고가 났다고 한다. 사고의 원인은 2015년 장가계 여행길 처럼 화물차의 물건들이 고속도로에 널브러져 있고 기사는 그 잔해를 치우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바람에 약 40분 지체했지만 2015년 장가계에 비하면 조족지혈)

 

저녁을 먹기 위해 들린 고속도로 변의 한국식당 '백성장원'

 

40분 지체 되는 바람에 오히려 저녁 밥시간에 맞춰 17시 32분. 도착한 백성장원 이라는 한국식당의 김치찌개(라면 사리 넣은)는 한마디로 형편 없었다. 그런데 밥을 다 먹은 후 물을 마셨는데 물맛이 좀 이상했다. 해서 두 모금만 마셨다. 이때 함께 저녁을 먹은 분들은 며느리, 시이모 팀이었다. 

 

시이모하고 며느리가 함께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좀채로 보기 힘든 케이스 같아 "남편들은 어떡하고요?" 하니 이구동성으로 "남편들은 돈 벌어야지요." 한다. "그럼 아이들은 누가 돌봅니까?" 하니 시어머니께서 보신다고 한다. 와~~시상에! 나 같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

 

별채로 떨어져 있는 백성장원의 화장실

 

중국 화장실의 특징 중의 하나라면 남녀가 들어가는 문은 같고 일단 들어가면 남녀로 갈리게 되어 있는 구조다. 해서 들어갈 때는 남녀가 함께 들어간다. 나는 들어가지 않았는데 들어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화장실 모양이 가관이었다. 무슨 이야긴고 하면 화장실에 들어가니 변기 구멍이 네 개 뚫여 있었는데

 

칸막이가 없어 서로 궁둥이를 까고 앉은 모습을 보며 용변을 본다는 것이다. 시상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그래도 급하니 까고 눈다는데 진동하는 똥냄새를 맡으면서 화장실을 함께 쓰고 나면 나빴던 사이는 오히려 사이가 돈독해 진다는 오가이드의 익살스런 해설이 왠지 그럴 듯하다. ㅋㅋㅋ

 

달리는 버스 차창에서 찍은 화북평야의 일몰

 

18시 7분.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화북평야가 펼쳐졌다. 그리고 19시 30분. 버스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하남성으로 들어섰다. 20시가 되자 해는 서산에 저물고 달리는 차들은 헤드라이트 불을 밝혔다.

 

잠시 들렀던 내황휴게소

 

20시 25분~20시 35분 동안 매미소리 요란하게 울어대는 후덥지근한 내황휴게소에서 10분간 쉬었다 갔다. 다시 버스는 달리는데 한 시간 쯤 흘렀을까? 앞좌석에 앉아 있던 며느리가 다가오더니 좌석을 좀 앞으로 앉아 주실 수 없냐고 한다.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시이모님 중 한 분이 배탈이 나서 죽기 일보 직전이라고 한다. (아까 식당에서 마셨던 물이 이상하더니만)

 

얼마나 급했던지 뒤에서 용무를 볼 생각까지 했을까! 해서 자리를 바꾸고 오룩스맵을 보니 신향이다. "여기가 신향이니 조금만 참으세요." 하여 극적으로 신향휴게소에서 007 위기일발 상황을 모면하게 되었다. 휴~~~~우리까지 십년감수를 한 느낌.

 

신향 원윤 천복 대주점 931호실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22시 16분(한국시간 23시 16분)이니 인천공항에서 중국 신향까지 오는데 10시간이나 걸린 셈이다. 일단 커피부터 한 잔 타 마시고 잠시 행장을 추스리는데 가이드 영준이 노크를 하더니 점검을 해주고 나서 "혹시 설사약 없어요?" 해서 지사제 두 알을 주고 샤워 마치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전송했더니 중국에 자주 출장가는 아들이 하는 말 "제가 중국에 묵었던 호텔과 똑같이 생겼네요." 한다.  나중에 보니 임주와 요성의 호텔도 이처럼 침실에서 욕실이 보이는 구조였다. 24시 (한국시간 1시) 길었던 첫날의 일정을 마쳤다.

 

 

 

다음날 (7월 20일 금요일)

둘째날 신향 천복호텔~천계산~만선산~임주 클라우드 호텔 이동 궤적

 

위 궤적 사진 중 천계산과 만선산의 궤적만 확대하여 시계방향으로 살짝 돌린 궤적

궤적을 설명하자면 좌(남) 우(북) 이며 좌→우로 이동함.

 

먼저 천계산 입구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회룡괘벽을 통과한 후 천계산 주차장에서 전동카로 갈아타고 운봉화랑을 시계방향으로 돈 후 천계산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왕망령(고도 1,560m)까지 올라가 전망대까지 도보로 이동한 후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와서 지프차로 갈아타고 비나리길을 달리다가 비나리길 중간지점에서 지프에서 하차한 후 비나리길을 도보로 이동한 후 다시 지프차를 타고 만선산 북문으로 이동한 후

 

오픈카로 갈아타고 만선산 풍경구를 감상한 후 오픈카로 흑룡담폭포가 있는 계곡으로 이동한 후 흑룡담폭포와 일월성석을 도보로 이동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근처 중국인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고나서 임주로 이동했다.

 

나중에 버스에서 가이드 영준이 "우리가 오늘 차를 몇 번이나 갈아 탔을까요?" 하며 퀴즈까지 내었을 정도로 차를 많이 갈아 탔던 일정이었다. 나는 일정을 일일이 꼼꼼하게 적었기에 알 수 있었다.

 

신향 원윤 천복 대주점 931호실에서 내려다본 신향시가지 모습

 

하남성의 성도인 정주시의 위성도시인 신향시는 인구가 600만 명이나 되는 큰 도시라 한다.  5시 15분. 꿈에서 깨어나 바깥을 내다보니 아파트촌들이 밀집해 있고 웃통을 벗고 걸어가는 사람, 웃통을 벗고 운전하는 사람도 보인다. 늘 하던 버릇대로 호텔을 찍기 위해 5시 40분. 밖으로 나왔다.

 

신향 원윤 천복 대주점의 전경과 내 앵글에 딱 걸린 웃통 벗은 중국 아저씨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이 있다고 이곳 중국에서 웃통을 벗고 돌아다니는 것은 아무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데 유독 한국인인 내 눈에만 좀 이상해 보였다. 신향 원윤 천복 호텔은 겉보기에는 그럴사 하나 오래된 호텔로 보였고 특히 수건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낡은 수건을 걸어 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물 끓이는 전기포트 역시 지저분해서 어젯밤 모르고 끓여 마셨던 커피가 다시 나오려고 했다.

 

6시 30분. 아침 먹으러 4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뷔페식인데 그 수준이 매우 낮았다. 일정을 위해 먹긴 했지만 입맛에는 영 맞지 않았다. 야쿠르트는 제조일자가 15일이나 지났고 커피는 뜨뜻미지근했고 맛도 별로였다. 어제 저녁밥, 오늘 아침밥 모두 엉망이다. "다음엔 하나투어로 갑시다." 아내 

 

4박 5일 동안 우리를 태우고 다닐 25인승 미니버스 (기사님은 유씨 성의 중국 한족 출신)

 

아침을 먹고나서 7시 34분. 호텔을 떠나 천계산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천계산 주차장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기에 중국의 차번호판에 대한 가이드 영준의 입담이 쏟아졌다. 먼저 번호판 색깔이다. 일반 승용차-청색, 버스나 화물차-황색, 군용차-흑색, 국가기관차-백색 이라고 한다. 

 

그리고 차번호 앞에 한자를 넣는데 길림성은 길, 흑룡강성은 흑, 산동성은 노, 하남성은 예 를 써서 차번호판만 봐도 어디에서 온 차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산동성의 노는 공자의 고향이라 노자를 쓴다고 한다.  또한 중국인들은 8자를 좋아해서 888888번 번호판이 60억원에 팔린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 번호판을 산 사람은 차에다 번호판을 붙이지 않고 집에 모셔놓고 값이 오르기를 기다렸다는 실로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는 만약 청색 888번호판을 발견하는 사람에게는 아교대추 한 봉지 시상을 해주겠다며 선심공약을 하기까지 했다. (좀체로 보기 힘든 모양이다.)

 

호텔을 떠난지 약 1시간 20분 후 8시 55분. 천계산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다시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아스콘도로를 따라 구불구불한 말티고개와 괘벽공로를 돌아 돌아 약 20분 정도 올라가니 하나투어 현수막이 걸려있는 산 위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셔틀버스를 타고 산 위의 주차장에 도착한 후

 

잠시 걸어가면..

 

곧 천계산 운봉화랑 입구에 다다른다. 좌측 봉우리는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고 우측 봉우리는 사찰건물이 보이는데 사찰 이름은 '노야정'이다. 두 곳 다 올라가고 싶었지만 일정이 운봉화랑을 한 바퀴 도는 것이라 눈으로만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운봉화랑 전동카에 올라탔는데

 

세 팀 모두가 4명씩이라 자연히 우리는 맨 뒷좌석(거꾸로 가는)에 탈 수밖에 없었다.

 

운봉화랑 설명판과 간략지도

 

처음 들린 곳은 노자가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귀진대' 였다.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아찔한 절벽 전망대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귀진대'다. 귀진대 옆으로는 아슬아슬한 돌계단이 보이는데 이곳이 또 다른 전망대로 가는 길이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나서야 땅을 쳤지만 날아간 화살이요, 떠나간 버스였다.

 

귀진대에서 바라보는 태항산맥의 첫 인상은 한마디로 웅장하고 장엄하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현기증이 날 정도로 까마득한 절벽이라 오금이 저렸다. 다만 옥에 티라면 시계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과 돌발 상황은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귀진대에서 바라본 운봉화랑의 단애

 

생명줄 하나에 매달려 잔도 공사를 하고 있는 잔도공들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존경스럽다. 나는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못할 일이다. 저런 분들 덕분에 나 같은 바위치도 이런 비경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내는 귀진대 옆으로난 아슬아슬한 돌계단으로 내려갔다가 내가 위험하니 올라오라고 고함치는 바람에 다시 올라왔는데 볼멘 기색이 역력했다. 전망대 가는 길을 하산길로 오인한 나의 무지함과 위태로운 절벽으로 난 길에 대한 공포에서 부른 것인데 결과는 귀진대 전망대 올라서지 못하는 엉둥한 결과를 낳았다. 물론 이 와중에도 나의 급변 상황이 크게 작용한 것도 있었으니.. 화장실이 급해서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설사가 쏟아졌다. ㅠㅠ 어제 그 백성장원 한국식당의 물 때문으로 보인다. (내가 이상하다고 해서 아내는 마시지 않았다.)

 

귀진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시계만 좋았더라면 금상첨화였을텐데..

 

다음으로 들린 곳은 유리잔도다.

 

유리잔도 위에서 여유를 부리는 아내, 겉은 웃지만 속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벌벌 떨며 가장자리로 걷는 조경옥씨(어젯밤 배탈로 식겁 쌌던)와 가운데 유리를 밟고 지나가는 아내의 모습이 재미있다.

 

문금대(聞琴臺)에서.. (촬영: 오영준)

 

곳곳에 이렇게 장사를 하는 곳이 있었고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아이스케키를 사먹었다. 물건을 갈아줘서 그런지 주인장의 표정이 한층 밝아 여행객이 보기에도 좋았다.

 

이곳은 시담대라는 전망대인데 협곡을 향해 공중에서 10미터 연장되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아찔한 절벽이 겹친 회룡대협곡과 안개에 휩싸인 '쌍불와 태항'이 보인다. 이곳에서 시이모&며느리 팀들의 단체사진을 찍어주었더니 답례로 부부사진을 찍어준다. ^^

 

운봉화랑 관광을 마치고 점심 먹으러 한국식당으로 갔더니 이곳도 베트남 처럼 신나는 한국 가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포천 이동막걸리와 함께 점심으로 먹은 산채비빔밥은 먹을만 해서 이제 조금씩 마음에 든다. 우리는 며느리&시이모 팀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포천 이동막걸리를 본 시이모들이 하는 말 "어머! 우리 동네 술이네. " 하며 반가워 했다. 설사를 했지만 이동막걸리 두 잔 마셨다.

 

점심을 먹고나서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와 왕망령 안내판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셔틀버스가 멈추었다.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왕망령 남문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대협곡의 모습 또한 장관이라면 장관이었다.

 

위 사진 아내가 서있던 곳에서 바라본 대협곡 풍경, 가운데는 계곡이 흐르고 있는데 사진으로 표현하기에는너무나 미흡하다.

 

왕망령 안내판이 보이는 왕망령 남문, 다시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달려야 왕망령에 올라갈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왕망령 주차장이다. (고도 1,560m)

 

이곳은 고도가 높아 그늘만 가면 시원했지만 복사열 때문에 땡볕은 더웠다.

 

이곳은 전한시대의 왕망이 적군에게 포위되어 더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 이곳에서 스스로 자신의 목을 베었다는 곳이라 하여 왕망령으로 불린다. 이곳에서 가이드 영준은 몇 장의 사진을 찍어준 후 자신은 기다릴 테니 전망대까지 다녀 오라고 한다. (이것은 가이드로서 빵점이다. 가이드라면 함께 가야 하는 것이 맞다.) 더구나 우리는 초행길이라 전망대가 어디쯤에 있는지 모르는데 말이다. 나중에 봤더니 전망대는 무척 멀리 있었다. 어디까진지 몰라서 거의 다 가서 다시 빽하는 바람에 전망대를 놓쳤다. (아내는 계속 고를 외쳤지만 내가 잘랐다.) 결국 가이드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왕망령에서 내려다본 천주쌍봉과 기암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들

 

촬영: 오영준

하나씩 어깨에 둘러맨 것은 아까 운봉화랑에서 두 개에 한국돈 오천원 주고 산 스마트폰 크로스백이다. 수시로 스마트폰으로 여행일기와 오룩스맵 장소를 적어야 하는 나에겐 참 유용한 것이다.

 

왕망령 전망대 가는 길에서 본 풍경

 

저기 빨간 지붕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다가 철수했는데

 

이번에도 끝까지 가자고 했던 아내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끝까지 고를 외치며 갔던 홍천 부부 팀의 꽁무니를 열심히 쫓아가다가 돌아가자는 나의 부름에 어쩔 수없이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을 해도 약속시간까지 저 멀리 건물이 보이는 곳까지 돌아가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들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가이드가 따라와야 맞았다.

 

이제는 아까 보다 시계가 훨씬 맑아졌다. 아까는 시계가 흐려 미련없이 돌아섰는데 우리도 끝까지 갈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생기기도 했지만 약속시간이 더 급해 돌아섰다. 우리가 돌아온 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홍천 부부 팀이 돌아와서 하는 말씀이 "전망대에 섰더니 풍경이 끝내 줍디다." 한다. 놓친 고기는 크고 떠난 여인은 미인이라고 아쉬워 입맛을 다시는데 아내는아내대로 이번에도 포인터를 놓쳤다며 원성이 자자했다. ㅠㅠ 하지만 약속시간에 쫓겨 들고 뛰는 바람에 옷이 다 잦었다는 홍천 큰 사모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그제야 조금 위안이 되었다. 참 사람의 심보란..

 

돌아온 후 다시 한 번 바라보니 거북이 처럼 생긴 기암도 보인다. 현재 서있는 곳은 지붕 위다.

 

왕망령 파노라마 사진 

이렇게 왕망령 관광을 마치고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굽이 굽이 고갯길을 돌고 돌아 다시 산 아래로 내려왔다.

 

산 아래로 내려와서 지프차로 갈아탔다. 그 이유는 비나리길은 대형차가 다닐 수없기 때문이다.

 

비나리길 입구로 들어가는 지프차 행렬

 

왕망령 풍경구에서 만선산의 곽량마을(郭亮村)로 가기 위해서는 '비나리길' 이라고 불리는 곤산 괘벽공로(掛壁公路)를 지나게 된다. 비나리길은 절벽 위에 위치한 곤산마을에 갇혀 결혼도 제대로 못하며 외부와는 단절된 상태로 살던 마을 청년들 13명이 외부로 나가기 위해 삽과 곡괭이로 21년 동안 동민들의 도움을 받아 절벽을 뚫어 만든 길이 1,250m의 동굴도로이다.

 

이 도로가 나기 전에는 곽량촌에서 외부와 통하는 길은 오직 협곡과 절벽 위를 이어주는 '천제(天梯) 라고 부르는 절벽길 뿐이었기에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재산을 팔아 장비를 사고 힘을 모아 기계없이 이 거대한 절벽에서 2만 6000㎥의 돌덩어리를 캐냈고, 정 12톤을 마모시켰고 8파운드짜리 쇠추 4,000개를 소모했다고 한다.

 

태항산에는 모두 9개의 절벽 장랑이 있는데 비나길은 그중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촬영: 오영준

 

촬영: 오영준

 

비나리길이란 이름은 2009년 이 길을 처음 발견하고 관광상품으로 만든 우리나라 비나리 여행사의 상호를 그대로 사용하여 특별한 이름 없이 괘벽공로라 불리던 것을 비나리길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잠시 비나리길을 걸은 후 다시 지프차에 올라타고 만선산으로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만선산 북문이라 한다.

 

여기서 다시 오픈카로 갈아타고 만선산 풍경구로 올라갔다.

 

전동카를 타고 올라가면서 달리는 전동카에서 찍은 만선산 풍경

 

만선산 풍경구에서..

 

만선산 풍경구에서 전동카를 타고 내려왔는데 일행 중 한 분인 오수영님이 스마트폰을 아까 지프차에 두고 내리는 바람에 근 40분을 기다리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 불평을 늘어 놓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그럴 수도 있다며 느긋하게 기다려 주었고 40분 후 스마트폰을 돌려받고서야 흑룡담계곡으로 내려와 지금은 흑룡담 폭포를 보기 위해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도착한 흑룡담 폭포

 

촬영: 이은주 (서울팀 작은 며느리)

 

일월성석

 

17시 59분~18시 20분 까지 저녁을 먹었던 계곡의 중국식당

 

커다란 민물 생선요리는 징그러워서 나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오히려 여인들(아내 포함 5인)은 잘 먹었다. 여덟가지 반찬 중 그래도 숙주나물이 그런대로 입에 맞았지만 나머지는 입에 전혀 맞지 않았다. 사실 뱃속이 좋지 않아 (설사) 많이 먹기도 부담스러웠다. 대충 먹고 먼저 일어섰다.

 

임주 클라우드 호텔 560호실

 

18시 46분. 저녁을 먹고나서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데 888로 된 소형 승용차를 며느리 팀이 발견하여 가이드를 당황케(?) 만들었다. 과연 약속대로 선물을 줄지? 우리를 태운 25인승 미니버스는 임주를 향해 달렸고 한동안 옥수수밭이 이어지더니 서서히 어둠이 내렸다. 앞좌석에 앉은 아내는 세상 모르게 졸고 있었고 버스는 어둑어둑해진 도로를 쉼없이 달려 21시 5분. 임주 클라우드 호텔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대충 캐리어를 정리한 후 커피 부터 한 잔 마셨는데 저녁을 적게 먹어서인지 배가 출출해 초코파이, 버터와플, 치즈샌드 간식으로 군것질을 한 후 샤워하고 보이차 한 잔 하니 살것 같다. 그런데 이 클라우드 호텔은 가이드 말마따나 시진핑 주석이 잤을 정도로 좋은 호텔이라고 자랑쳤는데 와이파이는 되지만 인터넷은 되었다 안 되었다 했고 티비 채널 돌리는 것도 까다로웠다. 할일이 없으니 자연히 잠이나 잘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나도 모르게 꿈나라로 들어갔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