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트래킹기

몽골 체체궁산/테를지 트레킹 Day3

통영사람 이수영 2018. 5. 26. 14:24

몽골 체체궁산/테를지 트레킹

2018.5.18~2018.5.22 (4박 5일) 혜초여행사

 

 

Day3-5월 20일(일)

(울란바토르~테를지~엉거츠산트레킹~게르숙소)

 

-4박 5일 일정-
*제1일(금) 인천-울란바토르(1박)
*제2일(토) 울란바토르-체체궁산트레킹-호텔(2박)
*제3일(일) 울란바토르-테를지-엉거츠산트레킹-게르숙소(3박)
*제4일(월) 테를지-울란바토르관광-호텔(4박)
*제5일(화) 울란바토르-인천

 

7시. 오늘도 어제처럼 조식이 호텔뷔페라 5층 식당으로 내려오니 가이드 히시게가 대기하고 있다. (지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음) 히시게와 지나의 집이 울란바토르에 있어 둘 다 집에서 자고 오는 모양이다. 특히 히시게는 매우 부지런한 청년으로 하루 4시간 이상을 잔 적이 없다고 한다. 내가 "센베노" 하니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는다. 센베노는 몽골어로 '안녕하세요' 이다.

 

그런데 함께한 일행 중 가장 연배이신 서울에서 오신 분이 어젯밤 고열이 나고 아파서 의사가 왕진까지 왔다고 히시게가 말한다. 히시게 녀석 집에서 편하게 쉬고 왔는줄 알았는데 어젯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오늘 식당은 어제와 달리 손님이 적어 비교적 한산하다. 계란 후라이, 커피 등을 여종업원이 서비스로 날라다주기도 한다. 통유리로 되어 있어 그런지 5층 식당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11층 1105호실 보다 오히려 더 좋은 것 같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케이블 선을 따라 달리는 궤도 버스도 보인다.

 

셋째날 라마다 호텔~테를지(국립공원) 이동 궤적

 

이태준 선생 기념관 (9:12~9:30)

 

오늘 일정의 첫 방문지는 이태준 선생 기념관이다. 1883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1911년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한 선생은 1914년 울란바토르로 이동하여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운반하고 의열단 활동을 하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또한 선생은 인술을 베풀어 당시 몽골에 만연해 있던 질병을 퇴치하여 1919년 몽골 정부로부터 '에르덴 오치르' 훈장을 받았다.

 

선생은 1921년 러시아 백군에 의해 피살 당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운동가이며 위대한 의사인 이태준 선생의 고귀한 삶을 기리기 위해 2001년 7월 이 공원을 조성하였다. (안내판에 적힌 내용이다.)

 

몽골의 슈바이츠 故 이태준 선생 초상화 (1883~1921) 몽골에 이런 훌륭한 한국인이 계시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느끼게 해주신 이태준 선생께 감사드린다.

 

두 번째로 들린 곳은 전승기념관이다. (9:40~10:00분) 전승기념관은 언덕 같은 높은 곳에 위치해 계단을 많이 걸어 올라야 했다.

 

몽골이 구 소련과 힘을 합쳐 일본군을 물리치는 그림들이 원형으로 그려져 있다. 히시게가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몽골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 밖이라 홀로 나와 울란바토르 시내 풍경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한 바퀴 돌려 보았다.

 

전승기념관에서 바라본 울란바토르 시가지 파노라마

 

전승기념관 계단의 노점상, 가죽에 그린 그림과 자질구레한 잡화를 팔고 있었는데 한국어를 곧잘 구사했다. "이거 한쿡돈 오천원" (가죽에 그린 그림 한장에)

 

전승기념관을 내려오며, 자연스러운 아내의 표정에 비해 내 표정은 내가 봐도 너무 오버했다. ^^;;

 

다시 달리는 미니버스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왼쪽에 서 있는 이가 가이드 히시게)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코바까지 연결되는 긴 열차가 달리고 있었다.

 

달리는 미니버스 차창으로 본 묘지

 

미니버스를 달려 '어워'에 왔다. (10:50~11:05)

 

'어워'는 언덕 같이 생긴 구릉지인데  우리나라 성황당처럼 신을 모시는 곳이라 한다. 돌무더기 위에 깃발이 걸려 있는데 정작 사람들의 관심은 돌무더기 보다 독수리를 이용하여 관광객에게 사진 촬영을 하게끔 하여 돈을 버는 이에게 쏠렸다.

 

이렇게 손에 독수리를 올리고 사진 한 번 찍는데 2달러다. 한국돈 2천원을 줘도 오케이다. 모두 세 마리가 묶여 있었는데 그중 이 대머리독수리가 가장 컸다.

 

영악한 인간들에 의해 길들여진 야생의 독수리들이 왠지 불쌍해 보인다. 마음대로 창공을 훨훨 날지 못하고 묶여서 모델 노릇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는 아내다. 물론 이렇게 하면 공짜다. ㅋㅋ

 

어워 아래에 제법 많은 가옥들이 보인다. 어워를 지나면 테를지 국립공원 지역에 다다르는데 경치가 참 좋다. 달리는 버스 안이라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

 

11시 30분. 드디어 테를지 게르 숙소에 도착했다. 전방에 보이는 산이 엉거츠산이다.

 

캐리어를 끌어주는 서비스를 해주는 게르 직원들이다.

 

히시게 말로는 이곳 게르에 캐리어를 정리해 놓고 도시락을 지참하고 엉거츠산 트레킹을 한다고 한다. 참고로 이번 트레킹은 부부3팀, 母子팀, 여자2명, 남자2명 총 12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게르는 3명씩이라 부부팀 남자 세 명 여자 세 명은 자연히 헤어지게 되었다. 나머지는 각각 두 명씩 게르 하나에 잔 모양이다. 게르가 여유가 있었다면 부부끼리 자고 싶었는데 여유가 없어 어쩔 수없이 헤어졌고 우린 3호실, 여자들은 바로 옆 4호실로 배정받았다.

 

엉거츠산 보다 더 멋지게 생긴 맞은편 산이다. 히시게에게 산 이름을 물어보니 이름이 없는 산이라고 한다.

 

캐리어를 정리하고나서 다시 모인 일행들

 

12시 5분. 도시락 하나씩 지급 받고 엉거츠산으로 향한다.

 

가면서 본 산장식 건물들과 주변 풍광

 

이렇게 빙 에돌아 가는 이유는 사유지라 울타리가 쳐져 있기 때문이다.

 

오룩스맵의 시작점을 저 건물이 보이는 언덕배기에서 찍었다.

 

오룩스맵으로 그린 엉거츠산 트레킹 궤적

 

고열로 의사까지 부른 서울서 오신 부부(좌측 붉은 색)께서도 잘 따라 오신다. (처음엔 포기하려고 했으나 우리들의 응원에 힘입어 도전하심)

 

조금 올라가다가 점심 도시락을 풀었다. 점심 먹은 장소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이다. 이곳의 소들은 코뚜레를 하지 않고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어 행복해 보였다. 히시게 말로는 이 소는 세 살쯤 되는 아직 어린 소라고 하면서 다섯 살이 성우라고한다.

 

식후 경

 

아내 옆에 계신 분은 서울 이촌동 사모님 (최연장자이신 이길선님 부인)

 

이 풍경화는 마치 아무런 화장을 하지 않은 시골 여인의 얼굴 같이 순박하다.

 

어느새 사면길로 접어든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제 편안한 사면길을 유유자적하게 걷는다.

 

사방팔방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위에 점점이 박혀있는 게르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일행들

 

쿠션 좋은 산길에는 노랑제비꽃이 만발하다.

 

낙엽송 등산로는 쿠션 좋은 솔갈비가 깔려있다.

 

개활지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념촬영을 한다.

 

개활지에서 일행들이 무심하게 보고 지나친 엉거츠산의 요정들(할미꽃)이다.

 

그리고 함께 피어있는 설앵초도 데리고 왔다.

 

전망 암봉에 올랐다.

 

건너편 암봉이 더 높은데 저곳은 험해서 가지 않는다고 한다. 아내와 지나 그리고 동해에서 온 아들과 이길선님 내외가 앵글에 잡혔다.

 

촬영: 지나

 

전망암봉 지나 개활지, 자세히 보면 많은 할미꽃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짧은 휴식을 하고 간다.

 

이어지는 낙엽송 등로

 

우측 1시 방향 둥그스럼한 동산이 엉거츠 정상이다.

 

엉거츠는 몽골어로 '비행'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로 이 산에 오르면 비행기에서 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엉거츠산이라고 한다.

 

동해 소년과 지나는 둘이 대화가 잘 통한다. 실은 지나는 어느 누구와도 대화가 잘 통했던 다정스러운 성격이었다. 동해 소년과 지나의 대화를 엿들으며 뒤따라 오른다.

 

망루가 나타나고 망루 바로 너머로 돌탑이 보이는 정상이다.

 

엉거츠산 정상에서 (촬영: 히시게)

 

엉거츠 정상에서 (촬영: 히시게)

 

엉거츠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스마트폰으로 당겼더니 우리 숙소(게르)가 잘 보인다.

 

이제 하산한다.

 

확 트인 개할지라 하산길은 무척 편안해 보인다.

 

오른쪽 무릎이 좋지 않은 지나다. 스틱도 없이 나무 지팡이를 짚고 내려가는 모습이 애처롭다. "저 나이에 벌써 무릎이 안 좋으면 안 되는데" 하며 아내가 걱정을 한다. 아내도 나도 무릎은 안 좋다. 아마도 동병상린의 아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뒤따라 내려오는 수원의 전재황님 내외

 

갈림길에서 동해 母子에게 이리로 오라며 손짓하는 지나

 

야생화 산길을 따라 내려간다.

 

엉거츠산의 암벽

 

날머리가 지척이다. 울타리 문을 지나니 우리를 태워줄 미니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12:05~17:05 엉거츠산 트레킹 5시간 소요됨)

 

게르에 도착해 배낭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게르의 내부는 중앙에 난로가 있고 탁자와 의자 그리고 침상 네 개가 있다. 지붕 중앙은 환기를 위해 개폐식으로 되어있고 둥그런 원형으로 생겼는데 이 게르를 몽골인들이 짓는데는 2시간, 해체하는 데는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출입구 문이 너무 낮아서 두 번이나 머리를 찧어 머리에 혹이 다 생겼다. ㅠㅠ

 

엉거츠산 트레킹 후 승마체험 하러 가면서 본 건너편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방금 막 소를 잡았다. 나중에 한 점 얻어 먹을 기회가 있었다.

 

소젖으로 만든 야쿠르트를 따라주는 지나

 

약간 시큼한 맛이었으나 인공 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진한 야쿠르트였다. 한 컴씩 마시고 나서 모두들 더 달라고 할 정도로 맛있었다.

 

18:35~19:16 약 41분  동안 말을 탔다. 우리도 난생 처음으로 이런 폼나는 모자 한번 써봤다. 승마하면 정유라가 생각난다. ㅋㅋ

 

몽골의 말은 야생에 풀어 놓았다가 봄이 되면 다시 데리고 와서 야행성이 강해 주의를 해야 한다며 말타는 법을 강의하는 히시게다. 실제 타보니 중국 말에 비해 체구가 작아 좀 불안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져 탈만 했다. 우리가 말에 올라탄 사진을 히시게가 찍었는데 보내준다는 약속을 어기고 감감 무소식이었다. (내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우리는 말 위에서 촬영을 못하게 했는데 그 이유는 사진 찍는 행위가 말을 놀라게 하기 때문이다.

 

승마 후, 아내와 나의 두 필의 말을 끌어준 몽골 아낙네와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팁 1인당 2달러) 이 여인은 양기가 얼마나 좋던지 우리는 바람막이를 입어도 쌀쌀했는데 민소매 차림이다. 몽골 사람들 대부분이 양기가 좋은 것은 확실했는데 이유가 뭘까 궁금하다.

 

사진을 보면 멀리 뒤에 소년이 새끼말을 타고 한국인 일행 한 분의 말고삐를 쥐고 말을 끌고 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소년은 조금 전 아낙의 아들이며 남편도 두 필을 끌었으니 오늘 이집은 가족이 1시간 동안 10달러를 번 셈이다. 노력에 비해 소득은 그리 많지 않은 듯 싶지만 몽골에서 일반 월급쟁이가 한 달에 우리돈 50만원 정도 번다고 한다.

 

승마를 마치고 돌아오니 아까 잡은 소를 육회와 불고기를 먹고 있는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보인다. 광주에서 온 이분들이 어찌나 기마이가 좋던지 소주도 권하고 육회며 불고기도 권했다. 나는 처음 이곳이 우리 식사 인줄 착각했다. 육회는 안 먹고 소고기 불고기 한 점을 얻어 먹었는데 약간 질긴듯하면서도 맛이 기가 찼다. 더 얻어먹고 왔어야 했는데 히시게의 성화(석식시간 늦겠다며)에 미니버스를 타고 게르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기 위해 커다란 게르 식당으로 들어왔다.

 

게르의 기둥마다에 걸린 늑대 모피다. 딱 하나 보이는 여우 모피와 달리 그 크기가 크고 흉측스럽다.

 

몽골 전통음식인 양고기로 만든 '허르헉' 이다.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 기대 이하였다. 아까 얻어먹은 소고기 한 점이 어찌나 그립던지.. 이럴줄 알았다면 아까 양껏 얻어먹고 올 걸 그랬다. 히시게 말로는 손님들이 거부감 없이 잘 자신다고 하더니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맛이 없다고 했다.

 

죄없는 히시게와 지나만 머쓱할 수 밖에 없어 억지로 밀어 넣었지만 아까 그 소고기 생각이 간절해 소 한마리 잡으면 얼마냐고 물으니 한 마리에 약 100만원 정도 한단다. 아까 그 광주팀들 통 컸다. 암튼 국립공원 테를지의 석식은 이렇게 부실하게 끝났다. 아~~경치는 너무 좋은데 먹거리는 부실하구나! ㅠㅠ

 

다시 돌아온 게르, 현재 시간 20시 45분. 꽤 어두웠는데 스마트폰 사진은 그런대로 밝게 나왔다. 남녀 찢어져 각자의 게르로 돌아갔다.

서울 이길선님이 가져온 보드카는 무맛, 무취였고 가격은 의외로 쌌다.

 

어둠이 내린 게르 (3호실)

 

어느덧 게르에는 어둠이 내리고 남자 셋이 있는 게르에는 이길선님의 보드카와 전재황님의 보이차로 이야기꽃이 피었다. 이길선님은 73세(본인 말로는 74세)이고 전재황님은 59세라 내가 중간이었다. 이길선님은 서울에서 의류 매장을 하시는 분이고 전재황님은 수원에서 제조업을 하시는 분인데 주로 두 사람이 대화를 많이 했고 나는 듣기만 했다.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23시 30분 경에 잠자리에 누웠는데 무슨 이야기 끝에 강원도 이야기가 나왔고 두 분이 강릉상고 선후배임이 밝혀졌다. 이길선님이 23회 전재황님이 37회 이니 14년 선배인 것이다. 그러자 이길선님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고 두 분의 이야기꽃은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24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소등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쌩쌩거리는 바람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 두 분은 잘도 주무신다. (잠시 후 코고는 소리가) 세석의 잠 못 이루는 밤에 이어 몽골 테를지 게르에서의 잠 못 이루는 밤이 나를 괴롭혔다. 아~~~ 죽겠다.

 

 

 

2편   끝